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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 | 특집 [저널의 눈]
64세 동갑내기 세 주인이 지켜내는 전주 동문거리 터줏대감
헌 책방 이야기②
문동환(2015-10-15 13:46:45)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서점 간판을 찾아볼 수 없는 지가 꽤 됐는데 헌책방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어찌 보면 동문거리 일대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마지막 3인방의 생존이 오히려 낯설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헌책방의 몰락을 별 수 없는 현실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이 변했는데 어쩌겠냐며, 변해가는 현실에 던지는 무미건조한 시선은 그대로 옳은 것일까.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또 어쩌란 것인가.
동문거리에는 세 곳의 헌책방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 때 많은 헌책방들이 성업하던 거리였던지라 남아 있는 세 곳의 헌책방은 그간 명멸해간 헌책방들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비록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책들로 가득한 헌책방의 풍경은 그대로다. 입구 입간판이나 창유리에 '헌책 사고팝니다'를 써 붙여놓은 것도 다르지 않다.

 

 

 

 

 

 

영인본, '빨간 책'까지 책들의 보물창고
이 일대의 헌책방은 애초에 미원탑 사거리에서 풍년제과 사거리까지 팔달로 대로변에 밀집해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 전주전국체전을 앞두고 거리정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미원탑이 철거됐고, 덩달아 헌책방들도 구 남노송동 파출소 부근으로 옮겨갔다. 그 일대에는 남중과 영생고, 전주여상, 전주대 전신인 영생대학, 전주공전 등, 학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홍지서림을 중심으로 헌 책방들이 서진(西進)하면서 가장 근래의 헌책방 골목을 형성하게 되었다. 여전히 한 집 건너 헌책방일 정도로 그 수가 많았지만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면서 한 해에 10%씩 매출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헌 책 방 을 찾는 발길이 뚝 끊기다시피 하면서 하나둘씩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헌책방의 주된 아이템은 단연 참고서였다. 먹고 사는 게 여의치 않던 시절이고 책도 귀했기 때문에 참고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새
로운 학기를 앞두고 부모님 손을 잡고 찾아온 학생들로 책방이 북적거리던 시절이었다. 혼자 오는 학생들 중에는 새 책을 산다며 부모님에게 돈을 받고 실제로는 헌책을 구입해서 차익을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른 바 '삥땅'이었다. 어쨌든 일 년에 두 번 있는 신학기는 헌책방 골목이 사람들로 붐비는 최고 성수기였다. "헌책방은 원래 신학기가 대목이었죠. 신학기 때 벌어서 1년 버티는 셈이었으니까" 신학기철이 지나면 그 때부터는 이거저거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이 팔려나갔다. 참고서만큼은 아니지만 영한사전도 인기가 높았고, 소설과 같은 문학서적을 찾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가끔씩 절판된 책을 찾으러 헌책방골목 일대를 뒤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헌책방을 가득채운 책들을 살펴보니 무릎 높이만큼 쌓여있는 '창작과 비평' 영인본이 눈에 들어왔다. 한 때는 창비 영인본
을 구하러 다니는 게 지식인의 호사로 여겨질 때도 있었는데, 헌책방이 없었다면 지식인의 치기 어린 지적 허영은 물거품이 됐을 것이다. 이 외에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기 드문 스페인어판 성경, 서예사, 영문 소설 등, 교과 참고서와는 딴판의 책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정치경제학 개론과 비교공산주의 서적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책 제목부터가 노골적으로 '빨간 책'이어서 비판적 의식과 지식에 목말라 있었다던 '운동권의 무용담'이 떠올랐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와중에도 의식적 무장을 위해 헌책방을 뒤지고 다녔다는 그런 무용담. 일반 서점에서는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책이었으니 진열대에서 구경하기는
아예 기대난망이었다. 하지만 헌책방은 달랐다. 한두 명이라도 찾는 이가 있다면 언제든 운명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는 책들로 그득했다.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들에도 차별과 구분이 없었고, 새로운 누군가의 소유가 되어 헌책방을 빠져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헌 책을 품은 64세 동갑내기 주인들
동문거리의 최후의 3인방은 모두 64세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모두 헌책방을 연 지가 30년이 넘었고, 한가네서점은 2대째 헌책방을 운영 중이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헌책방을 하게 됐는데 그래도 옛날에는 이걸로 애들 다 키우고 공부시켰지. 지금은 뭐... 일단 책을 안 읽잖아요. 인터넷 보느라 바쁘지 뭐. 사전도 뭐 전화기(스마트폰) 몇번 두드리면 딱하고 나오는데, 뭐 하러 사전을 봐" 화면이 활자의 지위를 앗아간 지 오래. 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은 마우스 스크롤이나 화면 터치를 하느라 바빠졌다. 손가락만 바삐 움직이면 체감할 수 없는 어떤 선을 따라 지식정보의 바다에 닿을 수 있다. 이들이 내쉬는 탄식은 한숨인 동시에 읽지 않는 풍토에 대한 뼈있는 일갈이다.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나. 그냥 꺼내서 보면 되는데" 잘 될 때는 서울 청계천이나 연신내, 심지어는 경기도 파주까지 책을 구하러 다니곤 했다. 용달차를 끌고 가서 실어오기도 했고, 양이 많으면 화물로 붙이기도 했다. 헌책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나까마'로 불리던 수집상들과 를 했다 . 오동나무 궤짝에 들어있던 책이 수백 만 원에 팔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주어 듣곤 했지만 어디까지나 전문 나까마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책을 사고파는 게 헌책방이므로 헌책방으로 책을 팔러 오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모아지는 책들은 진열대에 꽂기도 하고, 끈으로 묶어 쌓아놓기도 한다. 얼핏 보면 책 분류가 안 되어 있는 것처럼 어지러워 보이지만 최소한의 분류체계를 갖추고 정리되어 있는 책들이다. "그래야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알죠. 손님이 와서 물어보면 있는지 없는지는 보지도 않고 딱 아니까" 하지만 더 이상 책을 사들일 일이 없으니 분류도, 정리도 모두 무의미한 노동이 되었다. "최후의 3인방이라고 할 수도 없지. 패장은 말이 없는 거잖아요" 우리는 헌책방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래저래 경험의 내용은 다를지언정 헌책방을 매개로 엮여있는 세월의 흔적과 채취. 그래서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 흔적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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