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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 | 연재 [여행유감]
나의 친한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
박서영의 일본여행
박서영(2018-09-17 10:53:54)

불면 속을 헤매다 창밖을 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스크롤을 내리며 웹서핑을 했다. 새벽 네 시였다. 이 시간에도 깨어있는 친구들이 단체 카톡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요한 소란 속에서 나는 문득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험을 두려워하고 안전한 곳으로 깊게 침잠하기만 하는 나의 삶에도 가끔은 이런 식으로 어떤 도전의식 같은 것이 나타나 노크를 하는 것이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고, 곧장 비행기 편을 알아보았다. 가지런히 나열된 도시들을 읽다가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자 걷잡을 수 없이 도쿄에 가고 싶어졌다. 적당한 날짜를 고르고 곧바로 비행기 표를 결제했다. 3월의 어느 주말에 갔다가 평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나는 다음날 내가 후회하지 않기를 빌면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그 비행기에 앉아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나리타 공항을 오랫동안 걸었다. 몇 개의 터미널을 지나자 도쿄 시내로 가는 철도가 보였다. 앞서 매표소에서 미리 끊어두었던 왕복 티켓을 꼭 쥐고 기차를 기다렸다. 멀지 않은 곳에 몇 명의 중동 여행객이 소곤거리고 있을 뿐 역내는 한적했다. 기차가 도착하고 나는 정해진 자리에 올라탔다. 한 시간 동안 기차는 여러 역을 지났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내리거나 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여행객으로서' 제일 먼저 놀라게 했다. 이윽고 신주쿠역에 도착했다. 사위는 오디오를 튼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소음을 건너 계단을 오르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앞으로 나아갈 잠깐의 틈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걷다가도 문득문득 멈추어서야만 했다.


여기까지 쓰다가 나는 돌연 타자를 멈춘다. 이제 겨우 네 달이 지났을 뿐인데 도쿄에서의 사흘은 내게 어떤 장면이 아니라 냄새 같은 것으로 남아있다.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는 냄새. 그것은 주관적이고 온전히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다. 그런 것을 쓰는 행위가 과연 이 원고에 적절한가. 내가 기억하는 것은 라멘 맛집이랄지 도쿄타워가 아니다. 걷고, 걷고, 또 걷다가, 사람 없는 간이역의 벤치에 앉아서 밀려오는 고독을 품고 다리를 흔들었던 그 순간, 소용돌이치는 침묵, 그런 것이다. 과연 나는 그때의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까지 감춰야 하는가.
그러므로 나는 이 글에서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쓰기로 한다. 여행을 마치고 익산의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밤 열두 시였다. 아직 잠들지 않은 룸메이트가 캐리어를 헤치는 나를 보며 어디 갔다 왔는지 물어왔다. 나는 일본에 다녀왔다면서, 그곳에서 사 온 기념품의 절반을 모두 룸메이트에게 주었다. 기숙사에 들어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어린 룸메이트는 미안한 얼굴을 하고 선물을 받았다. 나는 그 아이가 나와 친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우리 사이의 서먹한 공기가 나로 하여금 여행에 대한 감상이나 후일담 같은 대화를 생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다음날이 되자 예전과 똑같은 권태의 막이 열렸다. 갑작스런 도전의식 앞에서 파업을 했던 권태는 나의 막역한 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이다. 나는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수업을 듣고 익숙한 밥을 먹으면서 현해탄 너머에 두고 온 어제의 나에 대해 생각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모르는 길을 걸으며 생경한 사람들 앞에서 외국어를 더듬었던 그 서투름이 그리웠다. 나에게 향수란 언제나 완벽한 미완성 앞에서 만들어지는 순정이었다.


나는 나와 친한 이 도시가 싫다.


다시 도쿄.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곧장 시부야의 음반 가게로 향했다. 제이팝에 문외한인 나도 잘 알고 좋아하는 일본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1층부터 3층까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밴드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어보자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다른 가수의 앨범을 구매하고 밖으로 나왔다.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 식사를 하고 액세서리 가게를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일기를 썼다. 돌아오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인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내게 여기가 신주쿠로 가는 방향인지 물었다, 고 썼다.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외국인이에요.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고 썼다. 쓰다 보니 목이 말랐다. 움직이던 펜을 멈추고 옆에 있던 생수를 아무렇게나 마셨다. 어두운 방에서 외국인 한 명이 나왔다. 놀란 듯 멈칫하더니 생수를 가져갔다. 그게 당신의 물이었어요? 모르고 마셔버렸어요. 내가 말하자 그녀는 괜찮다며 오히려 더 마시고 싶지는 않은지 물었다. 그렇진 않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미안하다, 고 나는 일기에 또 썼다.


언니. 저도 일본에 다녀왔어요. 도쿄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룸메이트가 말했다. 그 아이는 수하물 텍이 그대로 달린 캐리어를 구석에 놔두고 내게 일본 간식들을 건네왔다. 나는 그것들을 책상 한곳에 모아두었다가 종종 배고플 때마다 꺼내서 먹었다. 이후 몇 주 지나지 않아서 그 아이는 한 번 더 일본에 다녀온 것 같았고 내 책상의 간식은 더 많아졌다. 어느 도시를 다녀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 아이는 새내기답게 아침 일찍 나가서 새벽에 들어왔고, 우리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나는 도쿄에 가면 누구나 으레 사 오는 바나나빵이 없는 걸 보면서 도쿄는 가지 않은 모양이라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기만 했을 뿐이다.


다시 도쿄로 넘어간다. 나는 일기장을 덮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암막커튼을 쳤다. 핸드폰으로 내일 가볼 만한 곳을 검색했다. 가마쿠라라고 하는 곳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내가 드물게 완결까지 챙겨본 작품 중 하나가 슬램덩크였고 가마쿠라는 강백호의 중요한 장면에 차용되어 팬들에게는 성지로 불리는 장소였다. 나는 다음날 가마쿠라로 가는 에노덴을 탔다. 에노덴은 일본에서 백 년 가까이 운행되고 있는 전통적인 전차였는데 언젠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그 모양과 비슷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창밖을 찍었다. 옆에서 백발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허허, 하고 웃었다. 그 뒤로는 소풍을 가는 모양인지 단체복을 맞춰 입은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승객 사이사이로 셋 혹은 넷 단위의 가족들이 웃고 떠들었다. 맨 앞 열에는 언뜻 경찰처럼 보이는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하얀 마스크를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생소한 풍경……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에노덴의 전부다. 에노덴을 어떻게 타야하는 지 몰라 잠시 헤매고 또 어느 부분에서 실수로 엉뚱한 전철을 탔을 때의 당혹감을, 나는 꼭 기억해야 할까? 나는 앞뒤로 가득 찬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이 자리에 영원히 붙박인 채 있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느낌을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것은 '냄새'여서, 단순히 주관적인 감각이어서, 나는 내가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문장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이해시킨다는 확신까지는 가질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일까?


골목을 걷고 유명한 신사에 올라 에마라는 나무팻말에 소원 몇 줄을 적고 다시 내려왔다. 에노덴을 타고 신주쿠로 돌아가다가 이름 모를 간이역에서 덜컥 내렸다. 바닷물이 맥주 거품 같은 하얀 물살을 내며 들어왔다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 앞에는 소담한 주택 몇 채가 쓸쓸하게 서 있었다. 파도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부동자세였다. 나는 벤치에 앉아 무겁게 가라앉은 날씨를 구경했다. 정적이 다가와 나에게 우울함을 종용했다. 과거를 들먹이며 어서 슬픔에 빠지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슬프지가 않았다. 예컨대 성장이라는 걸 한 모양이었다. 홀연히 상처 주고 또 상처받는 인간관계 속에서 결국 무디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불신인데, 타인에 대한 영원한 불신을 나이 많은 사람들은 성장이라고 일컫는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그게 어른이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도시에서 그 어떤 정적이 찾아와도 초연할 수 있었다. 나를 잘 모르므로 이곳 사람들은 내 서툰 외국어에도 친절하게 응수해주고, 마음대로 생수를 먹어도 불쾌해하지 않으며, 같은 숙소를 쓰면서 내가 불편해 할까봐 소리를 죽이고 움직여준다. 나는 이렇듯 도쿄가 나와 친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것이다.


한 학기가 끝나고 기숙사 짐을 정리하던 날, 룸메이트는 방을 나가기 전에 내게 말했다. 언니, 다음 학기에 같이 밥이라도 한 번 먹어요. 나도 알고 그 아이도 안다. 우리는 절대로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싫어서가 아니고 단지 서먹해서다. 그러나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다. 이것도 서먹해서다. 그 아이는 다음을 기약하며 방에서 떠났다. 그동안 나와 자주 마주치지 않았고 종종 함께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말을 섞지 않았던 그 아이의 텅 빈 침대가 내 옆에 남았다. 시작도 전에 어겨진 약속이지만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다. 관계라는 것은 친밀할수록 평화라는 단어와 멀어진다.


도쿄의 마지막 날 나는 오다이바에 갔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어 내 또래의 중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대관람차에 타게 되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좋아하는 가수와 음식 같은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기를 봐봐요! 한 명이 창밖을 가리키며 외쳤고 모두 나란히 고개를 돌렸다. 도쿄의 붉은 야경이 도로 모양을 따라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동행들이 중국어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관심 없는 척 야경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어떤 말도 서툴렀으므로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관람차에서 내려오자 그들이 내게 SNS 주소를 물어왔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메일 주소라도 알려달라고 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다더니 한국인인 나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일부러 틀린 주소를 적어주었다. 그들과 작별하고 헤어졌다. 걸어가다가 불현듯이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붙잡았다. 오래전에 그 주소를 탈퇴한 것 같다면서 다른 이메일을 적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중국인 친구들과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종종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화를 낸다. 너 언제는 그런 거 성가시고 싫다며. 사람 간의 관계는 멀면 멀수록 좋은 거라고 네가 말하지 않았니? 그래,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싸우고 감정 쓸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와 기꺼이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은 내가 나여서가 아니라 사람이어서다.


룸메이트가 떠난 다음 날 나도 기숙사에서 나왔다. 나의 친한 도시를 지나 나의 친한 고향으로 돌아왔다. 도쿄여행이 점점 예전 일이 되어갈수록 이곳에서의 갈등은 더욱 많아진다. 나는 이곳이 싫어서 도쿄를 자주 생각한다. 그곳에서의 평화. 평화. 조심스러운 사람들과 한없이 차가운 배려. 나는 이곳이 밉고 도쿄가 밉지 않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한다. 미움과 사랑은 같은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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