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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 | 연재 [수요포럼]
소녀들, 고향으로 돌아오다
제188회 수요포럼 |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윤희숙(2018-10-31 12:26:24)



2016년 2월 28일 한국 위안부 피해 여성을 다룬 영화 <귀향>이 개봉했다. 영화가 제작되기까지 지난한 세월을 거쳤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독립영화임에도 37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화제를 일으킨 이 영화는 오히려 개봉 이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61개 도시에서 지금 현재까지 1,300여회의 상영회를 이어가며 총 92,000여회가 넘는 상영기록을 세우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이 한 번 상영할 때마다 소녀들의 넋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으로 20만회 상영을 목표로 이어가고 있다”며 목표달성을 낙관했다.
하지만 영화 <귀향>은 제작되기까지 무려 14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 <귀향>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실패와 구걸의 역사'라는 것이다. 오랜 제작기간, 500명 가까운 배우와 스텝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거절의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권 속에 있던 그 어떤 투자/배급의 손길도 잡을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 돈도 없는 무명의 영화감독에게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남북정상이 세 번째 만남을 가진 역사적인 9월 18일. 전주를 찾은 조정래 감독은 강연에서 이러한 실패와 구걸의 역사 속에서 만난 희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후 귀향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영화<귀향>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해원굿'이다
무엇때문에 1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쉽지 않은 작업에 매달려 왔을까. 조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판소리와 국악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며 처음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때 보았던 그림 하나가 그로 하여금 <귀향>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나눔의 집에 봉사 다니면서 깜짝놀랐던 게 부끄럽게도 제가 위안부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중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 이라는 그림을 봤는데 처음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설명을 듣고 증언집을 읽고서야 ”위안부 피해자들이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받다가 살아계신 줄 알았는데 대부분 피해자들이 참혹하게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몸살을 앓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소녀들이 겪은 고통을 알고 일주일쯤 지난 후 하얀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 수많은 소녀들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잔혹하게 죽은 소녀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꾼 후 ”이 소녀들이, 여성들이 집에 가고 싶어하는구나 라고 느끼고 그걸 받아 적었어요”
'위안부들을 할머니가 아니라 나이 어린 여성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강제연행이나 취업사기로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자들보다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 '소녀들은 대부분 끔찍하게 생을 마감했다.' '타지에서 돌아가신 소녀들을 영령으로나마 모셔온다' 이 다섯까지 이유가 영화 <귀향>을 만드는 이유였다.
나눔의 집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은 씩씩했다. ”생존해서 돌아온 피해 할머니들의 가장 큰 감정의 키워드는 '분노', '슬픔', '고통' 이런 것 일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놀란 건 증언하는 할머니들이 갖고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가 '미안함' 이예요.” 본인이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미안함'. 그래서 <귀향>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로하고 해원하는 씻김굿판이 되었다.
영화<귀향>은 이 시대의 가장 아픈 역사,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영화화된 극영화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수없이 죽임을 당한 억울한 여성들의 원혼을 달래고 비록 영화에서나마 고향으로 모시고 따뜻한 밥 한술 올리고자 만든 영화”라고 말한다. 무녀 문경이라는 소녀가 씻김굿을 하고 씻김굿을 통해 돌아가신 분들이 모두 나비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조감독은 영화 속에서 판소리를 공부하고 무형문화재 고법 이수자로 활동하는 국악인으로서의 경험과 시간들을  표현해냈다.


미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실상을 최초로 증언한 날이다 그 날을 기려서 '세계여성의 날'이 되었고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기림일로 지정돼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위안부라고 드러내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김학순 할머니가 미투운동의 처음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게 단순한 전쟁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벗어난 거죠 담론이 커지고 있고 이제 시작일 뿐이예요 전 세계가 난리예요. 헐리웃에서 시작된 듯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바쳐 해온 일이예요. 그게 단순히 여성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에 관한 문제예요” 게다가 절대 사과하지 않는 일본이 아니어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넘어야할 벽은 너무 높다.
”'나눔의 집 할머니 다 가짜다'는 거의 기본이고 '자발적 매춘부', '끼가 많아서 따라갔네' 등 입에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욕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친일파가 아직도 살아있구나' 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니까 이게 친일파 문제가 아니고 더 엄청난 얘기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가부장제의 틀, 성적 불평등, 인권문제에 대한 무지함 등이 기본적으로 벽인 거예요 그게 궁극적인 벽이예요” 조정래 감독은 영화 제작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많은 사람들과 마주해야 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 문제만이 아니다. 같은 피해국가인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안부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불편해 했다. ”일본에게 짓밟힌 것도 부끄러운데 자국의 여성이 일본군에게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사과와 배상 요구에 소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도 당했으니 똑 같이 해주자'라는 감정적인 대응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영화상영 요청이 쇄도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대만 등에서 영화<귀향>은 공식 상영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국에서 <귀향>을 본 사람은 비공식으로 2억명이 넘는다. 국민 하나하나의 힘이 모인 촛불집회가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듯 전 세계적으로 전쟁범죄나 여성인권, 미투확산 등 가부장제 전통이 무너지는 징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것 역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3.1만세운동, 4.3제주항쟁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의 유구한 전통이, 촛불항쟁으로 다 맞닿아 있다. 미투나 이슬람, 우리나라 난민문제가 서로 다르지 않고 다 연결이 돼 있다. 베트남 전쟁 문제도 마찬가지다.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나라, 일본
2차대전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전후 전혀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고개 숙이고 사죄하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그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비난을 받고 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문화적으로 융성한 일본이란 나라는 놀랍게도 거대한 가부장제 사회다. 지금도 아시아의 열등한 민족을 문명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보수우익의 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베가문이나 디시 노부스케, 유조 등으로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게 무너지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과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일본에 대한 피해국들의 패러다임은 민족적 울분에서 벗어나 양성평등이나 인권문제로 옮겨가기 때문에 일본도 변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귀향>을 본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물어보는 첫 번째 질문이 있다. ”Is this story true?" 왜냐하면 자신들이 알고있는 일본이 이런 짓을 했다고는 믿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할머니들의 실제증언을 중간중간 추가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편집했다. 작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 소녀상이 세워졌는데 자매도시인 일본 오사카에서 이를 이유로 샌프란시스코와 자매결연을 끊었다.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거부감이 큰데 영화 <귀향>도 마찬가지다. 작은 소도시에서 영화를 상영해도 일본에서 꼭 온다. 조정래감독은 ”소녀상을 세우고 영화를 상영하는 것만이 진실을 알리고 그 사람들에게 계속 신경쓰게 하는 일이 된다고 느꼈다.”며 지금도 거의 2주에 한 번씩은 새로운 상영장을 찾아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귀향>을 만든 사람들, 7만5천2백70명
개봉뿐만 아니라 당초 제작조차 힘들었던 <귀향>은 7만5270명이 100원, 1,000원, 10,000원을 기부하며 참여한 클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 절반인 12억원을 모아 완성해냈다. 75,270명의 국민들은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었다. 제작이 좌절될 땐 돈을 모금하고 개봉이 어려움을 겪을 때, 영화관에 압력을 넣어 극장문을 열게했고 심지어 영화가 만들어진 후에도 수많은 편지와 메일 댓글로 일으켜준 힘이었다. 귀향은 마지막 장면이 끝난 뒤 클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7만5270명 이름이 엔딩크레딧으로 올라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개봉이 불투명했던 저예산영화 <귀향>은 국민들 성원과 응원으로 누적 관객수 370만 돌파라는 흥행 성적까지 이뤄냈다.
영화 <귀향>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는 사실에 힘입어 중국 위안부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22>가 중국에서 역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아 개봉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22>에는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가 끝내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남은 평생을 중국 허베이성에서 살다가 지금은 고인이 된 박차순할머니를 비롯한 3명의 한국인이 등장한다. 한국말을 잃은 영화속 박차순할머니는 '아리랑'과 '도라지' 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노래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영화를 찍을 당시 22명이었던 중국내 위안부 피해자는 현재 6명만 생존해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궈커감독은 <귀향> 때문에 <22>를 만들 수 있었다면서 고마워하고 기회있을 때마다 <귀향>을 홍보하는 전도사다. 대만과 필리핀 등 아시아국가들이 소녀상을 건립하고 관련 영화제를 열고 서로 연대하면서 인권에 대한 이슈가 확산되는 추세다. 그런 추세를 반영하듯, 우리나라 일부에서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대의 자행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나서서 모금활동을 벌이고 베트남을 방문하고 수요집회를 통해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새로운 수레바퀴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생존 피해 할머니들은 28명. (2018.08.28.기준)
피해자들이 사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정리_윤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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