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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냉혹한 진실을 넘어 가족이 되다
<살아남은 아이>
김경태(2018-10-31 12:34:55)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의 고등학생 아들 '은찬(이다윗)'은 강물에 빠진 '기현(성유빈)'을 구하고 익사했다. 미숙은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칩거하고 있는 반면에, 성철은 다시 일을 하며 아들의 의사자 등록을 위한 서류를 준비한다. 성철은 우연히 치킨 배달을 하는 기현을 발견한다. 부모가 모두 집을 나가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 도배 일자리를 제안한다. 처음에 못마땅해 하던 미숙도 차츰 마음을 연다. 기현은 은찬의 빈자리로 들어가 부부의 오갈 데 없는 감정을 받아내고, 또한 부부의 따뜻한 돌봄에 삶의 희망을 이어간다. 그들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죄책감에 시달리던 기현은 마침내 진실을 털어놓는다. 은찬은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으로 익사를 했다는 것이다. 성철과 미숙은 그 시건의 진위 여부를 밝히고자 결심한다. 아니, 현장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은 기현의 말이 진실이라고 확신한다. 그 믿음은 그들이 기현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방증이다. 기현은 진실을 알리기 위한 용기를 얻기 위해서, 나아가 그 잔인한 진실을 그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되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때, 진실의 증거는 그 견고한 유대 자체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아들이 의사자로 명예롭게 남기보다는 무력한 피해자가 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한다. 그들에게는 성철은 증거를 찾고자 강바닥을 뒤지고 진실을 외면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일단락된다. 결국 기현의 자백은 은찬의 죽음을 둘러싼 표면을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하물며 그 진실은 살아남은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모두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무용한 진실처럼 보인다. 이제 그 무용한 진실은 목적 없는 수단이 되어 관계를 정향한다. 기현의 고백은 차곡차곡 쌓여가던 관계들을 일순간에 뒤흔들어 놓았다. 애초에 그의 고백은 무용한 만큼 속죄를 넘어 관계의 승화를 위한 필연적 실천이었으며, 오로지 새로운 관계의 열림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진실이 불러일으킨 일상의 혼돈이 잦아들 때쯤, 기현은 이전보다 더욱 살갑게 부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부부는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진실을 묻어둔 곳에서 더 이사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부는 기현을 불러 마지막 소풍을 떠난다. 한적한 산 속에 자리를 깔고 식사를 한다. 성철은 기현을 불러내어 숲길을 같이 걷는다. 그들은 그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른다. 성철은 뒷걸음치는 기현을 좇아가 그의 목을 조른다. 아버지로서, 그것은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단죄하는 은밀한 복수이자,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영혼을 달래하기 위한 간절한 씻김굿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진실 앞에서 망설이며 그 의미를 헤아리기 위한 불안정한 몸부림이다.


발버둥 치던 기현은 체념한 듯 눈물을 떨군다. 성철은 이내 그의 목을 조르던 손에서 힘을 푼다. 자리에서 일어난 기현은 강가로 내달린다. 겉옷의 주머니와 품 안에 자갈을 잔뜩 쑤셔 넣고 강물로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죽기로, 속죄하기로 결심한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 이르자 허우적댄다. 미숙이 다급히 뛰어들어 그를 구하고자 하지만 같이 허우적댈 뿐이다. 결국 성철의 손에 이끌려 그들은 무사히 물 밖으로 나온다. 자신의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아이, 그래서 죽이고 싶었던 아이의 목숨을 구해준다. 죽음은 또 다른 죽음으로 가려질 수 없지만, 진실은 또 다른 진실로 치환된다. 그들이 잠시나마 서로에게 느꼈던 그 애틋한 감정들 역시 진짜였기 때문이다. 강가에 나란히 누워 숨을 헐떡거리는 그들은 무용하고 죽음만큼 차가운 진실을 지나 새로운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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