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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 연재 [이하연의 귀촌이야기⑪]
농부?! 아직 나는 실험 중이다
이하연(2018-12-31 11:26:16)



얼마 전인가. 페북에 오늘도 뭐뭐 심었어요~ 하는 자랑 아닌 자랑 같은 자랑글을 올리다가 문득, 아 나 맨날 심는다는 얘기만 쓰는 것 같다... 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무언가를 수확했다거나 무언가를 잘 먹었다거나 하는 얘기는 왜 반의 반도 못 미치는 것일까. 그저 아직 농사 초보니까 라고 퉁쳐도 되는 것일까. 동네사람들로부터 농사 못 짓는다고 풀밭 만든다고 욕먹는 것은 한 귀로 흘리더라도 나 스스로 '제대로' 농사를 지을 마음인 건가, 스스로 농부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소소하지만 벌써 농사 3년차. 물론 매번 다른 작물을 시도하니까 여전히 1년차일 수도 있지만, 그중 어떤 작물은 예상외로 잘 된 적도 있다. 올해의 제일 효자 작물은 마늘과 자주양파였다. 지난 가을 텃밭의 일부를 일궈 심은 마늘과 자주양파. 몇 번이나 김을 매주었다. 물론 봄은 한가하기도 했거니와 나의 기운도 봄과 함께 뿜뿜했을 터이다. 친구들도 종종 와서 함께 도와주고 몇 번의 웃거름도 주었다. 그 노동에 비하면 참 소박한, 사 먹으면 하루 일당 어치도 안 되는 수확이었지만, 마늘은 생각보다 튼실한 것들이 제법 나왔고, 나머지도 까서 먹을만한 크기는 되어주어 처마에 매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끊어다 먹었다. 그래봐야 내가 쓰는 마늘 양이 한 접도 되지 않았고 남은 마늘 일부는 올해 또 심었으니 내겐 충분하고도 적당한 규모였다. 자주양파는 알이 작았다. 그래도 계란보다 작은 것 큰 것들을 나누어 쓰임새에 맞게 썼다. 피자나 포카치아 위에 올리거나 샐러드 같은 체험요리할 때 쓰임새가 많았던 양파. 무엇보다도 이건 저희 텃밭에서 나온 거예요~ 라고 자랑 삼아 얘기할 수 있었던 우리 텃밭 자주양파. 
사실 봄에는 열심히 했다. 그러고 보면 작년 가을부터 봄까지. 농사도 빵체험도 내 에너지도 모두 다 열일하던 시기. 모든 문제의 시작은 올 여름의 더위였을까. 본격 더위가 오기 전까진 봄에 심은 토마토가 쑥쑥 자라 방울방울 맺혔고, 쌈채소들도 다들 제 자리를 지켜줘서 텃밭이 풍성했기에 밀 후작으로 콩을 심자는 무리수를 두고 깨도 심고 들깨도 심고 팥도 심었다. 여름에는 이 모든 것들을 지켜줘야 했다. 쑥쑥 자라는 풀들로부터. 봄에도 풀들은 많았다. 풀을 100프로 방치하진 않았다. 조금 자란다 싶을 때마다 뽑았다. 그만큼 텃밭에 자주 출몰했다, 나라는 인간이. 여름을 맞이하며 갑자기 자란 키 큰 바랭이와 그 일족들이 텃밭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한 차례 농활대의 도움을 받아 퇴거를 명령해보았지만, 장마를 거치며 금새 슬금슬금 원래 내 자리라고 눈을 부라렸고, 더위 먹은 나는 그들을 바라볼 자신도 없어 문 하나만 열면 나오는 텃밭을 모른 척척하였다. 토마토는 다 익은 뒤로도 찾지 않는 주인 덕에 땅으로 돌아가 철도 모르는 새 인생을 시작하였고, 뒤늦게 맺히기 시작한 가지도 하나둘 나 여기 있소, 라고 보랏빛 광채를 뿜어냈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이 나타나기 전에 가지를 사 먹고 얻어 먹고 남은 것은 냉장고에 썩혀버린 탓에 올해는 가지 질렸어 증후군(?)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금니동부는 일찌감치 익어 이웃 아저씨도 그 집 동부 다 익었으니 수확하라는 말을 하셨지만 그 후로도 수십여 일이 흘러서야 집에 일 도와주러온 동네 언니의 바지런함에 세상구경을 하고 나왔다. 애써 심었던 콩밭은 풀밭이 되고 밀 심을 때에도 익지 않아 수확도 포기한 채 땅으로 갈아넣었다. 그 외에도 고백할 것이 어디 한두 가지랴. 농사의 끝은 수확이 아니라 요리를 하고 누군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그렇게 순환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버리면서 깨달았다. 
그 와중에 뒷집 어르신은 우주의 질서처럼 아름답게 마늘과 양파, 배추가 있던 자리에 고추와 들깨, 콩, 고구마를 제 모습대로 존재하게 하시고, 다시 그들의 자리를 마늘과 양파, 배추, 무로 바꾸셨다. 버릴 것 없는 노동과 버릴 것 없는 작물, 그야말로 섭리와 순환, 완벽, 조화, 모든 단어를 다 갖다 붙이고 싶은 그들의 노동을 매일 바라본다. 무를 심고 솎아준 시래기도 남김없이 삶고 씻어내어 겨우내 먹을 양식으로 저장해놓으시는 빈틈없는 삶의 습관. 그나마 제대로 수확한 것들조차 먹지 못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반복하느라 정신없는 나. 내 변명은 아직 나는 실험 중. 그래도 나름 애 쓰는 중.
나도 알고 있다. 여름의 더위는 작금의 사태를 불러온 표면적인 원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실 문제의 시작은 내 쓸데없는 고집에서 출발한다. 다들 농사를 그만 지으라고 한다. 빵 하나 더 만들고 사 먹으면 되지 않냐고. 맞는 말이다. 농사도 잘 못 지으면서 심지어 자연농이라니. 이미 작년 여름부터 1년간 난 에너지의 최대치를 끌어다 썼고 딱 1년째 되던 때부터 나는 달랑달랑 종이인형 같은 정도의 껍데기만 겨우 남아있었다. 여름의 더위가 가고 가을이 되자 다시 힘을 내어보았지만 목이 따끔따끔 아프면서 기침과 콧물을 동반한 복합적인 감기가 찾아왔고 병원에서는 면역력 저하라는 병명을 붙여주었다. 
한 달이 넘도록 가슴이 뻐근할 때까지 기침을 해대다 소염진통제, 항생제를 목 안에 털어넣으며 오늘을 반성한다. 나는 땅과 작물에게, 내 몸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건강하게 농사도 잘 짓고 내 몸도 잘 돌보면서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하루하루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여전히 자신이 없고,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여전히 나는 무계획적이지만. 겨울에는 쉼표를 길게 찍고 새 봄이 올 때면 한 뼘 쯤은 나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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