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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 | 연재 [홍PD가 만난 청년]
판소리, 나를 존재케 하는 인생의 동반자
소리꾼 장문희
홍현종(2019-07-17 10:54:59)

우리 지역 전라북도는 소리의 고장이고, 많은 소리꾼들이 활동하는 곳이며, 해마다 전주대사습이 열리는 의미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소리꾼이 전라북도에 있느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기가 곤란하다. 오정숙 명창 이후, 국가 문화재급 소리꾼의 명맥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허나, 가장 기대되는 젊은 소리꾼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소리꾼이 있는데, 바로 장문희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소리꾼 장문희(42)를 만나 그의 소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장문희는 어떤 사람인가요?
"소리꾼이기 이전에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근본적으로 소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태어나기는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을 따라서 강원도 인제와 충북 청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집안 사정으로 6살 때, 전주 이모 댁으로 저 혼자만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엄마의 첫째 언니였던 이일주 명창이 저를 친 딸처럼 키워주셨습니다. 당시 이모께서는 자신의 소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국악에 관심이 많았으며, 소리에 대한 꿈도 갖고 계셨던 엄마께서도 당신보다는 큰언니가 제격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판소리가 좋은지 싫은지도 모르고 그냥 자연스럽게 이모에게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떤 소리꾼이었나요?
"이모에게서 처음 배울 때부터 재능은 조금 보였다고 주변에서 말씀을 해주시고는 하셨습니다. 풍남여중 시절 전주대사습 학생부에 출전하였는데, 고등학생 선배들과 겨뤄서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동아국악콩쿠르에서 학생부 금상을 받았으며, 국악예고 3학년 때, 전주대사습 학생부 장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중앙대에 계셨던 박범훈 교수님의 권유로 중앙대에 진학하고자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대학입시에 실패하고는 이모님이 출강하고 계셨던 우석대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모이신 이일주 명창은 어떤 분이신지요?
"이모님 하면 무서우신 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원래 소리를 잘 하셨던 분이지만, 뒤늦게 오정숙 선생님으로부터 동초제 소리를 끈기를 가지시고 제대로 배우신 분입니다. 이모님은 새벽마다 운동을 나가시는 분인데, 덕분에 저도 새벽에 같이 운동을 하면서 소리를 배우고는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모님에게 소리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모님이 바쁘시면 제가 대신해서 레슨을 해주고는 했었는데, 덕분에 학생 시절부터 소리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경험도 많이 하게 되었고, 이게 제게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모님 수업을 듣던 우석대 국악과 시절 학교 연습실에 남아서 연습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3학년 때인 98년에 전주대사습 일반부에 출전하였는데 장원을 하게 됩니다. 무엇인가 목표가 없으면 해이해지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전했던 대회였는데, 다행히도 장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새로운 목표를 갖고 도전해봐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서 석사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현재 전라북도립국악원 단원으로 근무하시는데, 이곳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이모님이 계시는 곳이고 해서, 신입 단원을 뽑는다고 하기에 주저 없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국악단으로 손색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공연을 하고 있으며, 특히 저의 정통 판소리가 창극을 통해서도 잘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저는 어떤 음악을 하게 되든 판소리의 근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곳 단원들의 기량은 어느 단체와 비교해도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재정적인 지원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무엇인가 단원들의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공연에 대한 사전 홍보가 잘 되어서 더 많은 분들이 공연장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충분히 인정받는 소리꾼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국악인으로 평가받고 있던 장문희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있었는데, 전주대사습 심사위원 전원 만점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국악계에 뚜렷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하게 되는 일이다.


전주대사습 장원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2002년 전라북도립국악원에 입사하고 소리를 하는데, 제 소리가 매번 너무 똑같은 것 같았습니다. 잘 한다고는 했지만 제 스스로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하나 정했습니다. 물론 전주대사습 장원이지요. 혼자서 준비를 하고 2004년 출전을 하게 되는데, 대사습 예선 과정이 본인이 선택한 소리 중에 심사위원께서 특정 대목을 지목하면, 즉석에서 불러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사설 전체를 암기해야만 하기에 가능하면 길이가 짧은 소리를 하는 것이 유리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저는 전체 길이가 8시간으로 가장 내용이 긴 춘향가로 출전을 하게 됩니다. 어느 대목을 지목할지 알 수 없기에 그냥 이번 기회에 제가 좋아하는 춘향가를 공부하자는 기분으로 참가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는 제 스스로의 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선에서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대목을 불렀는데, 다행히 심사위원분들께서 좋은 점수를 주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엠넷 더 마스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프로그램 시작 전에 제작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방송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부담도 됐고 정중히 사양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총 8차례 전주에 내려와서 저에게 제안을 하시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 이야기 중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정통 판소리로만 활동하고 있는 소리꾼을 원한다' '전통을 고집해온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남편과 시어머니께서 한번 해보라고 용기를 주셨고 결국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작진도 지역에 거주하는 제 편의를 많이 봐주셨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면, 차량은 물론 숙소까지 모두 신경 써서 챙겨주셨습니다. 저는 오로지 소리만 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경쟁을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우선 재미있었습니다. 녹화하기 10일 전에 편곡된 악보가 오면 전주에서 혼자 연습을 해보고, 녹화 3-4일 전에 서울에서 밴드와 맞춰보았습니다. 정말 최고의 연주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해보는 국악곡이지만 연주도 잘 해주었고, 특히 서양 음악과 다른 국악의 박자를 잘 따라와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저에게 맞춰주시려고 했던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실제 경연을 하는데, 다른 참가자들은 연예인들이시고, 팬들도 많은 분들이라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공연 후에 국악도 나름 괜찮다는 관객의 평가가 의외로 많이 나오고 반응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소리 하나로 꿋꿋이 버텨보자 했는데,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그랜드 마스터까지 할 수 있었고, 이런 퓨전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제 스스로 전통 소리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음악을 하게 되든 정통 판소리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으며, 전통 판소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곡한 곡이 '귀천'입니다. 제 스스로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이제 전통 판소리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였습니다."


새로운 판소리를 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새로운 판소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 하고 있는 5바탕을 비롯한 전통 판소리도 오랜 시간 나름의 평가와 수정을 거쳐서 전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통 판소리를 이해하고 익히기에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설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잘못하면 판소리의 어설픈 면만 부각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전통 판소리를 더 많이 접해보고 익숙해진다면 점점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문희에게 소리란 무엇인가요?
"소리는 엄마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해주는 것이며, 애증의 관계이지요. 때로는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가장 그립고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연습실에 혼자 앉아서 제가 하는 소리를 들어보는데, 너무 좋습니다. 감동이 전해질 때도 있습니다. 정말 소리의 길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후배 소리꾼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30년 넘게 소리를 해보니, 많이 울고, 많이 웃었지만 결론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나와의 경쟁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좋아하면 시작해보라,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근본'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신지요?
"판소리 5바탕을 시리즈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게 1년 단위가 될 수도, 1달 단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5일간 연속으로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고, 사설을 암기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나름 재미있는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판소리를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꾸준히 접하다 보면, 점점 판소리가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특별히 재미있는 면도, 판소리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그다지 없어 보이는 소리꾼 장문희. 그러한 그의 성품과 판소리를 대하는 자세가 오히려 그녀가 판소리의 대가로 성장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올곧게 판소리만을 바라보며 정진하는 그의 미래가 너무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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