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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 연재 [윤지용의 두 도시 이야기]
바다가 시작되는 곳, 신항로 개척 시대를 열다
포르투갈의 두 항구, 리스본과 포르투
윤지용(2019-08-14 15:23:51)

포르투갈은 유럽대륙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서도 서쪽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영토의 면적은 남한보다 작고 인구는 천만 명이 조금 넘는다. 알다시피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다. 포르투갈에서 리스본 다음가는 큰 도시가 포르투이다. 둘 다 그 옛날 '신항로 개척 시대'에 번성했던 항구도시였다.



포르투갈의 '새옹지마'
오늘날 서구문명이 전 세계의 물질문명을 주도하게 된 것은 가깝게는 산업혁명의 영향이겠지만, 수백 년 더 거슬러 올라가 신항로 개척 이래의 식민지 수탈로 얻은 막대한 부 덕분이기도 하다. 3천 년 전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던 페니키아부터 오늘날의 미국까지 바다를 장악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강대국이 되었다. 바다로 진출한 자가 세계를 얻었다.
명나라의 환관이자 장군이었던 정화는 일찍이 1405년에 영락제의 명을 받고 해양원정을 떠났다. 콜럼버스보다 90년이나 앞선 것뿐만 아니라 규모 역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콜럼버스의 선단이 산타마리아호를 포함해서 단 세 척의 초라한 범선이었는데 반해, 정화의 명나라 함대는 길이 100미터가 넘는 300여 척의 배와 3만 명의 수군이었다. 정화의 함대는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과 아라비아해, 아프리카대륙까지 진출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후 중국은 바다를 포기하고 대륙의 패권에 안주했다. 그 결과 4백 년 후의 아편전쟁 때는 신식 대포와 철갑선으로 무장한 유럽의 함대에 어이없이 무릎을 꿇고 영토를 내주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항해술 발달의 밑거름이 된 나침반과 대포의 화약은 중국의 발명품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까지 지배했던 이슬람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럽이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는 동안 이슬람세계는 수학, 천문학, 의학, 화학(연금술) 등 근대 과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들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고 이를 '미개한' 유럽에 전해주었다. 유럽이 기근과 페스트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들은 선진문명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중해를 벗어나 대양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신항로 개척의 시대를 연 것이 바로 포르투갈이었다. 유럽의 서쪽 끝 변방에서 스페인의 핍박을 받던 약소국 포르투갈은 대서양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진출했다. 항해왕 엔리케가 해양진출을 독려했고 바스코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항로를 개척한 덕에 포르투갈은 일약 해양강국으로 부상했다.(그런데 사실 '항해왕' 엔리케는 왕으로 즉위해본 적 없이 평생 왕자의 신분이었으며 몸소 항해에 나서지도 않았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앙골라와 모잠비크, 인도의 서부, 중국의 마카오까지 방대한 식민지를 거느렸다. 오늘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 브라질도 200년 전까지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지금도 브라질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다.


카네이션 혁명의 도시 리스본
애초에는 영화제목처럼 낭만적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리스본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보름 동안의 스페인 일주로 쌓인 피로 때문에 마드리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온 리스본은 큰 도시가 아니었다. 주황색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래된 주택가들이 바다와 어울려 소박하고 정겹다. 도시의 인구가 50만이 조금 넘는다니 내가 살고 있는 전주 인구보다 적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해서 인구가 수백만이 넘고 고층빌딩들이 빼곡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리스본은 테주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다. 스페인 내륙의 쿠엥카고원에서 발원해서 천 킬로미터를 흘러온 테주강이 국경을 넘어 리스본에 이르러 대서양과 만난다. 포루투갈 이름 테주(Tejo)강은 스페인어로는 타호(Tajo)강이다. 그보다 며칠 전에 들렀던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를 구불구불 휘감고 돌던 그 강이 타호강이었다. 두 강이 같은 강인데도 낯설었다. 강원도 어디쯤에서 본 낙동강 상류와 부산에서 대한해협으로 흘러드는 낙동강이 같은 강이라고 실감나지 않았던 것처럼.
도시국가 로마가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데, 리스본에도 일곱 개의 언덕이 있다. 이런 도시들이 물이 풍부한 강가를 놔두고 굳이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아무래도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서였을 것이다, 라고 혼자 생각해보았다. 이 언덕들로 향하는 골목길들의 노면전차(트램)가 리스본의 명물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28번 노선을 다니는 노란색 전차다. 차체에는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고 내부는 목재로 되어 있는 낡은 전차가 삐것삐걱 소리 내면서 사람과 자동차가 뒤섞인 비좁은 길을 서두를 일 없다는 듯이 느긋하게 달린다.
리스본 시내에서 서쪽으로 조금 나가서 테주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 일대를 벨렝지구라고 한다.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 발견의 탑 등이 이곳에 있다. 16세기 초반에 세워진 벨렝탑은 본래 리스본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초소였다가 나중에는 중죄인을 가두는 감옥으로 쓰였다고 한다.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역시 16세기 초반에 지어졌는데 당시 포르투갈 국왕 마뉴엘 1세가 바스코 다가마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바스코 다가마의 무덤(석관)도 이 수도원에 있다. 벨렝지구의 바닷가에 서 있는 발견의 탑은 사실 탑이라기보다는 '기념비'이다. 세워진 연대도 1950년대 후반이니 역사유적이라 할 수는 없다. 바스코 다가마 5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한다. 높이 50m가 넘는 이 거대한 기념비에는 항해왕 엔리케와 바스코 다가마 등 포르투갈의 해양 진출과 신항로 개척에 공헌한 이들이 조각되어 있다.
사실 내가 오래 전부터 리스본에 대해 일종의 경의를 품고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1974년 4월 25일의 '카네이션 혁명'이다. 이날 새벽 한 무리의 젊은 장교들이 부대를 이끌고 리스본 일대를 장악했다. 군부 쿠데타였고 성공했다. 그런데 이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정권장악이 아니었다. 1932년부터 30년 넘게 지속되어온 살라자르 일가의 폭압통치를 끝내고 포르투갈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착한 쿠데타'에 호응한 시민들이 가두로 나와 혁명군의 옷깃과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었다.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2년 후의 총선으로 민정이양이 완료되었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배경이 이 카네이션 혁명 직전의 리스본이다.


포르투갈 국호의 유래가 된 포르투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300km쯤 떨어진 포르투는 도우루강 하구의 항구도시다. 도시 이름인 포르투(Porto) 자체가 '항구(영어의 port)'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이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이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이름도 포르투에서 땄다고 하니 그 옛날부터 제법 번성했던 항구도시였던 모양이다. 얼마 전에 '비긴 어게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의 가수들이 찾아가 버스킹을 했던 곳이 바로 도우루 강변의 부둣가였다.
포르투는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항구인 포르투가 포도 생산지일 리 없다. 옛날부터 인근 산간지대의 포도밭들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포르투 항구에 모여들어 팔려나갔기 때문에 '포르투 와인'으로 불렸다. 영어로는 '포트 와인'이다. 포르투 와인은 제조법과 맛이 독특하다. 포르투 와인은 다른 와인들에 비해 유난히 맛이 달고 알코올 함량이 높다. 제조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포도를 발효시킬 때 포도주를 증류한 알코올을 따로 첨가한다. 그래서 포도 속의 당분이 모두 알코올 성분으로 분해되기 전에 발효가 멈추게 되어 당분이 강하고 알코올 함량이 높다고 한다.
포르투의 명물은 또 있다. 포르투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들른다는 렐루서점이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고 하는데 한눈에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이들도 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를 쓴 작가 조앤 롤링이 무명시절에 한동안 포르투에 머물 당시에 즐겨 찾았던 서점이라서 더욱 유명해졌다. 조앤 롤링은 이 서점에서 영감을 얻어 '해리포터와 마법사'를 썼다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건물구조가 이 서점 내부를 본뜬 것이라는 설도 있다.
책을 사는 사람들보다 '인증샷을 찍기 위해' 렐루서점을 찾는 관광객들이 훨씬 많다보니 아예 입장료를 받는다. 서점에 들어가려면 서점 맞은편에 있는 부스 앞에 줄서서 3유로짜리 입장권을 사야 했다.(어느 블로그를 보니 지금은 5유로로 올랐다고 한다) 단, 실제로 책을 사는 사람은 책값을 계산할 때 입장료만큼 할인을 받는다. 나는 읽지도 못하는 포르투갈어로 된 책을 사는 게 아까워서 포르투갈의 국민가수라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파두 음반을 두 장 샀다.
프랑스의 샹송이나 이탈리아의 칸초네처럼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민속음악인 파두(fado)는 쇠락한 항구의 뒷골목에서 서민들이 부르던 노래였다고 한다. 이웃나라 스페인의 플라멩코가 격정적인데 반해서 파두는 구슬픈 곡조가 대부분이다. 가사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짠해진다.


유라시아 대륙의 땅끝 호카곶
리스본에서 렌터카를 빌려 40km쯤 달려가 호카곶(Cabo da Roca)에 들렀다. 이곳이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最西端)이다. 언젠가 어떤 CF에 배경으로 등장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유명해진 곳이다. 바닷가 절벽 위에 홀로 서 있는 빨간색 등대와 짙푸른 바다가 잘 어울린다. 커다란 표지석도 하나 서 있다. 이 표지석에 새겨진 글은 포르투갈어로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데, 물론 나는 읽을 수 없었다.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루이스 카몽이스라는 시인의 글이라 한다.
절벽 아래 출렁거리는 대서양과 등대와 표지석 하나, 호카곶은 달랑 이것뿐이다. 다른 볼거리나 역사적 의미 같은 것은 없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땅의 끝'이라는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절벽 위에서 망망한 대서양을 내려다보며 '여기가 대륙의 끝이구나. 내가 이렇게 멀리까지 왔구나.' 생각하니 괜히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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