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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악당이 되어가는 과정의 상세한 묘사, 고립감을 들춰내다
조커
김경태(2019-11-15 11:01:50)



슬럼화에 시달리는 고담시에 사는 '아서 플렉(호아퀸 피닉스)'.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는 광대 일을 하면서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를 돌본다. 어머니와 달리 그는 가족의 경제적 궁핍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의 깡마르고 주눅 들어 있는 몸과 음침하고 소심한 표정에서는 그가 누군가를 웃길 수 있는 자질뿐만 아니라 훗날 '배트맨'과 대결할 만한 깜냥도 없어 보인다. 그는 악당이 되기에는 육체적으로 너무 나약하고 악의적인 포부를 원대하게 품고 있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뇌, 혹은 신경의 이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음이 터진다. 그래서 무대에 섰을 때도, 관객을 웃기기 전에 자신이 먼저 웃음을 터트려 주체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작위적이고 과한 웃음. 그런 공감 없는 웃음에는 아무런 전염성이 없다. 그런 웃음은 그를 더 '비호감'으로 만들며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그가 느끼는 소외는 물질적 차원이 아니라 감정적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의도하지 않은 웃음 때문에 오해를 사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지하철 안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술에 취에 한 여자를 희롱한다. 그걸 건너편에서 지켜본 그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지만 섣불리 나서서 말리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흔한 심리적 갈등이다. 그런데 하필 그때 웃음이 터지면서 그들의 표적이 된다. 그들에게 구타를 당하자 우발적으로 총을 꺼내 그들을 향해 쏜다. 그가 죽인 이들은 하필 차기 시장으로 거론되는 '토마스 웨인'이 소유한 유명 금융회사의 직원들이다. 이 사건은 의도치 않게도 아서의 추종자들을 낳는다. 그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가난한 이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을 전복시킬 우상으로 떠밀리듯 추앙받는다. 


한편, 아서는 웨인을 친아버지로 오해한다. 그가 바랐던 것은 (어머니와 달리)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었다. 그는 자신의 오랜 정서적 결핍을 채워줄 아버지가 필요했을 뿐이지만, 웨인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그리고 아서는 평소 동경하던 쇼호스트 '머레이 프랭'의 지지를 받으며 그와 함께 무대에 서는 망상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는 방송에서 아서의 코미디를 놀림거리로 만든다. 아서는 그렇게 두 명의 상징적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강조컨대, 그가 그 아버지들로부터 원한 건 정서적 친밀감이었다.


그가 악당으로서 일말의 기질이 있다면, 그것은 소통 능력의 결핍과 과대망상이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후 추는 나르시시즘 가득한 독무는 그가 세상의 시선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가를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역시 알고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에 의한 학대의 결과였다. 그의 삶을 통째로 지배하고 있는 반사회적 성격마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형성되고 말았다. 더욱이 그는 물질적 탐욕이나 세계 지배와 같은 야망으로 악당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웃기는 일이 좋아서 광대 분장을 했고, 물질적 이득을 갈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영화는 희대의 악당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세밀하고 길게 묘사한다. 과장해서 말해, 영화의 전체 서사는 그가 악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상세한 주석과도 같다. 우리는 그 당위성에 공감하고, 또한 그가 자신을 괴롭히고 조롱하던 이들을 하나둘 죽여나갈 때 통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향한 조금의 연민이나 동정으로 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는 그가 사람을 죽이는 방식의 잔혹성을 드러내며 그와의 거리두기를 독려한다. 그리고는 필시 해결되어야만 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마주할 때,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로부터 우리가 취해야 할 고립의 감정만을 오롯이 남겨두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고담시의 시민들이 조커를 투영해서 쏟아냈던 분노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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