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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 | 연재 [마당기행]
재생으로 꾸는 도시의 푸른 꿈
오민정(2019-12-17 10:40:22)


폐조선소, 재생을 꿈꾸는 ‘통영 캠프 마레’



통영은 문화적 자원이 많은 도시다. 해안을 낀 아름다운 풍광과 통영을 사랑했던 많은 예술인들, 알록달록한 벽화로 유명한 ‘동피랑 벽화마을’, 수군을 지휘하던 관아를 복원한 ‘통제영’거리, 근대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강구안 골목’ 등을 떠올려보면 통영은 관광중심도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2015년 이전 통영을 지탱했던 기반 산업은 ‘조선업’이었다. 통영의 조선업을 견인했던 ‘신아조선소’는 중형 조선소이긴 했지만, 2010년에는 세계 10대 조선소로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2008년 리먼 쇼크와 중국발 수주 위기 등을 겪으며 점차 하락세를 보이다가 2015년 11월, 신아조선소는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한 집 건너 한 집을 안다’고 할 정도로 가족 같은 회사였던 조선소의 5,000명 근로자는 한꺼번에 퇴직을 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거주하던 근처 아파트와 원룸의 공실률은 70~80%까지 치솟았다. 더불어 조선업과 함께 형성됐던 상권도 무너졌다. 통영의 주력산업이었던 조선업의 몰락은 지역 경제에 연쇄적인 피해를 일으켰으며, 점차 조선업을 대체할 지역 산업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경상남도는 본사를 진주로 이전한 LH에 신아조선소 부지의 사업화를 요청했다. LH는 기존의 ‘개발’ 중심이 아닌 ‘재생’에 주안점을 두고, 마침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도시재생 뉴딜사업’ 중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에 함께 지원, 선정(2017년)돼 2019년 9월부터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란 ‘도시재생활성화및지원에관한특별법’에 근거, 경제적 쇠퇴가 심각한 지역(항만, 산단 등)에 복합 앵커시설을 구축하여 새로운 경제거점을 형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지난 기행을 통해 살펴본 부산의 영도구 사례(태평동)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으나, 통영의 경우에는 기존 산업의 활성화가 아니라 이미 붕괴된 조선업을 대신할 신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LH는 통영의 신아조선소 재생을 위해 2018년 35억 원 규모의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를 진행했다. 특이할 점은 공모에 앞서 기존의 국제 공모조건과 달리 건축, 도시, 조경 분야 외에 문화, 관광 콘텐츠와 부동산컨설팅 분야 전문 업체의 참여를 컨소시엄을 통해 필수요건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실제 운영상의 실현 가능성과 사업성을 염두에 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최종 선정된 포스코에이앤씨 컨소시엄의 ‘통영 캠프 마레’는 말뫼와 빌바오, 리버풀을 모델로, 해양관광 앵커시설과 수변시설을 정비하여 골리앗 크레인과 크레인이 위치한 슬라이딩 도크 전체를 광장 개념으로 구성했다. 이에 2018년 매각했던 골리앗 크레인 역시 LH가 되사오면서 통영조선업을 상징화하고, 박경리기념관, 윤이상 기념공원 등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과 연계한 창업보육기능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까지 설계했다. 세부사업으로는 수변공간을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도크 메모리얼 해양공원’, 12스쿨과 같이 통영의 문화 DNA를 이어가는 미래 문화예술학교이자 ‘인터파크’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성을 담은 교육창업 플랫폼을 구축하는 ‘리스타트 플랫폼’, 조선소 인근의 주거지역 거점공간을 활용하여 골목길 상권을 살리는 ‘당산나무 주민복합문화지설’ 등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공모 설계 외에도 사업단과 LH는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신아조선소 활용 아이디어 공모를 진행하며 소통과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이 항상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행정적 시행착오의 극복과 참여 주체 간 조선소 부지 오염토양정화에 대한 입장 차이 등 아직도 산적한 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지역 내에서 LH와 같이 도시재생을 이끌어 가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과 비교적 유연한 사업 운영의 여지, 행정적 협력과 주민 및 단체들의 참여는 앞으로 우리가 왜 도시재생의 사례로 통영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지 알려 준다.


통제영거리와 강구안 골목, 동피랑 벽화마을



통제영거리와 강구안 골목, 동피랑은 각기 도보로 10여 분 내에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통제영거리와 강구안 골목, 동피랑 벽화마을 일대에선 유사한 세 가지 도시재생 사업이 각기 진행되고 있다. 안내를 맡아 준 유용문 통영문화도시지원센터장의 말 중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어쩌면 도시재생은 산소호흡기와 같다’는 말이었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이 발전과 쇠퇴, 소멸의 사이클을 이어가는데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서 한쪽에서는 부수고, 한쪽에서는 재생하는 우리의 기이한 도시재생의 현주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거리를 던져 주었다.

세병관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성은 동피랑 벽화마을까지 이어진다. 1895년, 병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제가 폐영시킨 세병관의 돌로 맞은편 동피랑에 신사를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통제영거리 일대에 의도적으로 배치되었던 새 관공서들과 우물, 방공호의 흔적들은 전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통영 정치, 경제, 문화의 장소성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주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됐던 구 통영청년단 회관과 독립운동가들의 아픈 사연이 담긴 통영공립수산학교 교장 관사, 나카무라 상점, 서양식 교육과 문화예술을 전파하기 위해 호주 선교사들이 설립했던 충무교회, 원형이 많이 훼손됐으나 산업시설과 주거시설의 보기 드문 혼용 구조를 보여주는 미사키 주조장, 서양과 일식 건축 양식이 혼재된 아와지 여관 등 통영만의 역사성과 장소성이 깃든 거리를 돌아보며 왜 ‘계속 걷게 만드는 스토리’가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존도 보존이지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간 이루어졌던 마을 만들기와 도시재생의 부끄러운 민낯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바닷가, 혹은 통영 특유의 무뚝뚝함을 딛고 주민들의 역량 강화와 지역 활성화를 이뤘던 강구안 골목은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목포와 부산의 중간 기차지로서 요식업과 숙박업이 발달했던 이 거리는 마을 만들기 등 도시재생을 통해 활성화가 진행됐으나, 이후 주민협의체 결성의 실패와 이익 분배에 대한 논의, 일몰제 등의 환경과 맞물리면서 현재는 정체기를 걷고 있었다. 골목에 앉아 그간의 진행 상황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며, 상호 보완관계를 형성해야 할 세 주체, ‘주민, 행정, 전문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금 현장을 보면서 깨닫게 된 사례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동피랑 벽화마을은 전국적으로 워낙 벽화로 유명한 곳이어서, 지난해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이 질리지 않는 이유는 종종 전문적인 벽화가 그려져 있지 않아도 벽화를 통해 느끼는 편안함, 그리고 이곳 벽화마을이 시작된 특별한 계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 조성으로 인해 철거될 뻔한 달동네를 살린 벽화의 힘과 이야기는 결국 행정을 설득해 현재의 벽화마을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돌아보며, ‘도시재생’이라는 것은 결국 다른 곳의 벤치마킹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그것을 보존하는 데 많은 부분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초,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 부천, 광명, 영주, 통영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다양한 도시재생 사례들을 ‘마당 도시문화기행’을 통해 만나봤다. 그간 기행을 통해 느꼈던 것이 있다면, 어느 하나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분별한 벤치마킹보다 지역성을 담은 기획 하나가 더 소중하며, 이에 기반한 변화와 확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시의 골목길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기행의 기억, 내년에도 의미 있는 사례들과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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