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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 | 연재 [여행유감]
휠체어 타는 지민이와의 뉴욕 여행기
뉴욕
홍윤희(2019-12-17 11:54:29)



내 딸 지민이는 도시, 특히 평평하게 길이 잘 닦여 있는 도시를 사랑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으면 갈 수도, 즐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중학생이 된 지민이는 네 살 때부터 휠체어를 탔다. 한옥, 시골길, 궁, 사찰, 등산, 백사장, 계곡엔 대부분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를 안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해운대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고, 학교에서 시골로 현장학습을 갔을 때는 고구마 캐는 체험 장소까지 아이를 안아서 옮겼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혼자 하고 싶은 게 많아질수록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 곳은 가기 싫어하게 됐다.
뉴욕을 휴가지로 택한 건 아마 뉴욕이 그런 ‘도시의 전형’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4년 전 갔던 뉴욕은 결코 접근성이 좋은 도시가 아니었다. 특히 지어진 지 100년도 넘은 뉴욕 지하철 80%의 역은 휠체어로 갈 수조차 없다. 되도록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맨하탄, 그중에서도 타임스퀘어 주변에 숙소를 잡은 건 그 때문이었다.



뉴욕 JKF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휠체어가 들어가는 택시 서비스였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옐로캡 택시가 적잖이 보였다. 선택할 교통수단이 많다는 건 좋은 것이다. 안도가 됐다. 잠시 ‘인천공항에서도 휠체어 탄 외국인 관광객이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인천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서울로 진입 가능한 유일한 교통수단은 지하철뿐이다.
이어 우버 앱을 켰다. 라이드헤일링 서비스인 우버는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기사에게 굳이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고 입력해 놓은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가 되어서 팁을 계산한다든지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지민이의 수동 휠체어도 트렁크에 문제없이 실을 수 있어 외국에서 지민이와 여행하면 거의 항상 이용하는 서비스다. 카풀을 할 수 있는 우버 풀을 이용하면 더 싸겠지만 짐도 많고 가족 세 명이 이용하니 일반 우버를 불렀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각종 광고 전광판이 번쩍거리는 타임스퀘어로 나갔다. 24년 전 혼자 배낭여행을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우선 휠체어가 길에 무척 많았다. 그리고 낡긴 했지만 인도와 차도 사이의 경사로가 한국에 비해 정말 완만했다. 만약 인천 공항에 지하철 말고도 휠체어가 이용할 택시가 있다면 서울엔 더 많은 외국인 휠체어 관광객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휠체어가 많으니 어떤 관광지를 가더라도 휠체어를 아주 익숙하게 서비스한다. 둘째 날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스테이튼 아일랜드를 한 바퀴 도는 페리를 탔을 때도 페리 직원들이 휠체어 수동 경사로를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서 휠체어가 내리고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주 익숙해 보였다. 그 익숙함이 편안했다. 한국 관광지에 휠체어가 가면 직원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경우가 많고 마음이 불편해서 ‘내가 못 올 곳에 온 건가’하는 경험과는 영 딴판이다.
휠체어로 가기 힘들고 오래되어 쥐가 돌아다닐 정도라는 뉴욕 지하철 타기는 포기했다. 대신 뉴욕 버스는 모두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다. 서울의 저상버스 비율이 40% 정도라고 하는데 실제로 휠체어 이용자가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떨어진다. 운 나쁘게 저상버스를 놓치면 수십 분씩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붐비는 정류장에서 눈높이 낮은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 기사에게 자신이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용률이 떨어지니 버스 기사들의 서비스 수준도 떨어지고 시민의식도 떨어진다. 이런 버스에 한번 탔다가 버스 운전사에게 짐짝 취급을 받거나 승객들이 무식한 말이라도 한 번 하면 상처받아서 버스를 못 타게 된다. 결국 악순환이다. 뉴욕에서 버스를 탈 일은 없었지만 100% 저상버스라는 사실은 휠체어 여행자에게 큰 편안함을 준다. 맨하탄 안에서 휠체어 탑승 가능한 택시가 아주 자주 눈에 띄는 게 큰 위안이 됐다. 그리고 실제로도 도움이 됐다.

911 기념관 주변을 둘러보고 숙소로 가기 위해 부른 우버 드라이버에게 노골적으로 휠체어 탑승 거부를 당했을 때였다.
그는 아이 휠체어를 보자마자 “휠체어 있으면 더 큰 우버(6인까지 탈 수 있는 UberXL) 불러야 한다. 그거 불러라. 난 못 태운다”고 말했다. 나는 “휠체어 접힌다. 트렁크에 넣을 수 있다. 내가 할 거다. 오늘만 우버 3번째 이용하는데 휠체어 이용한다고 거부하는 건 당신이 처음이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그는 맹렬히 거부했다. 화가 끝까지 치밀어 “그래? 가버려!” 이렇게 말하고 바로 뒤에 오는 휠체어 표시 있는 옐로캡을 잡아탔다. 서울에서는 등록 장애인, 그중에서도 일부만 이용 가능한 장애인 콜택시를, 우리 같은 여행자라면 이용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한 번 부르면 운 나쁠 때 2~3시간씩 기다려야 하는데 길거리에서 바로 택시를 잡아탈 수 있다니.
결국 호텔방에 와서 우버 콜센터에 컴플레인을 남겼다. “내가 우리 아이랑 우버를 30번 이상 다양한 곳에서 타봤지만 접이식 휠체어를 못 태운다고 거부당한 일은 처음이다” 결국 콜센터에서도 해결을 못 해줬지만, 이 경험은 어느 도시에서라도 우버나 리프트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줬다.
뉴욕 맨하탄 거리는 전반적으로 서울에 비해서는 사람이 많다는 것 외엔 그럭저럭 휠체어로 다니기가 좋았다. 단, 오래된 건물이 많고 서부에 비해 공간 여유가 적다 보니, 경사로 우회길이 엄청 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뉴욕 한복판의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는 입구가 네 군데 있는데 모두 계단이고 경사로는 단 한 군데뿐이었다. 
시민의식도 만족스러웠다. 뉴욕 사람들이 바쁘고 불친절하며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휠체어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문을 잡아주고 도와줄까? 묻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형 관광지 중 하나는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빼놓을 수 없다. 접근성 자체가 가장 좋았던 곳은 최근에 지어진 911 메모리얼이었다. 당시 부상자나 어르신들도 많이 방문하는 터라 직원 숫자가 많고, 휠체어를 보면 바로 다가와서 길을 알려 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층별 이동을 계단이 아닌 달팽이 모양의 경사로로 지은 구겐하임 미술관은 1959년에 지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이다. 무엇보다 휠체어 접근성이 혁신적이다. 건물 안에서 턱을 거의 발견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게 누구나 접근 가능한 유니버설 디자인, 배리어 프리’임을 보여 주는 건축 구조였다.



워낙 거대하지만 옛날 건물이라 엘리베이터 위치를 찾기 어려웠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휠체어 입구가 한참 돌아가야 있는 자연사 박물관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실 가장 놀라운 경험은 중세 미술을 전시해 놓은 클로이스터스에서였다.  
17세기 유럽 교회 건물과 전시물들을 거의 통째로 전시해 놨다는 클로이스터스 미술관은 중세 성처럼 지어져서 휠체어 접근성이 좋지 않다. 보통 주차장에서 돌길을 걸어 올라가야 정문에 도달한다. 그런데 우리가 탄 우버 드라이버가 주차장 관리인에게 휠체어 이용자라고 하니 차로 정문 앞까지 갈 수 있게 열어 줬다. 장애인의 경우만 허용해준다고 한다. 실내는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엘리베이터 위치를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더 감탄스러운 일은 나올 때였다. “우버를 타러 가나요?” “네, 그런데요” “잠깐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문 앞에 휠체어 경사로가 딸린 승합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보아하니 평소에는 짐을 싣는 차량으로 이용하는 듯했는데, 휠체어 리프트를 정식으로 달고 개조한 차였다. 한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리프트 차량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뉴욕이 서울보다 더 오래된 건물도 많고 복잡한데도 휠체어에 좀 더 호의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우선 공공장소에 안내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일자리 창출의 일환일 수도 있겠지만) 휠체어가 보이면 직원이 먼저 다가와 엘리베이터 위치를 자세히 알려준다. 911기념 박물관의 경우 긴 줄 대신 우선 입장이 가능했다. JFK공항에서는 반드시 공항에서 빌린 휠체어 한 대에 한 명의 보조자가 붙어 끝까지 책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접근성을 휠체어 이용자의 기본권으로 생각하는 강력한 연방법이 뒤에 버티고 있다. 1991년 연방법으로 통과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 Disability Act)이 그것이다. 100년 이상 된 오래된 미국 미술관에 휠체어 경사로가 잘 되어 있는 데 감탄해 “어떻게 이렇게 오래된 건물인데 경사로가 잘 되어 있는가” 물으니 직원이 딱 한마디를 했다. “It’s the law(법으로 꼭 지켜야 되니까)”
심지어 우버와 같은 개인사업자형 드라이버를 운영하는 업체에도 사이버 콜센터에 ‘인종 성 정체성 장애’ 등 연방법에서 차별 금지한 사항을 이유로 승객을 거부하는 드라이버를 제재하고 있다고 쓰여 있을 정도다.
우버 드라이버가 아이 휠체어를 거부했을 때 콜센터에 민원을 넣을 생각을 했던 것도 바로 미국의 이 강력한 법 덕분이었다. 한국 택시에는 LPG 가스통이 실려 있어서 아예 휠체어를 못 넣기도 하지만, 휠체어 탑승을 택시 운전사가 거부해도 그냥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한국 택시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휠체어를 거부한다. 가스통 때문에 휠체어를 실을 수 없고, 트렁크를 열고 다니면 신고당한다, 휠체어를 뒷좌석에 넣으면 시트가 지저분해지거나 찢어져서 안 된다, 휠체어가 화물이라서 실으면 불법이다 등… 사실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참고로 휠체어는 장애인의 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짐을 실을 때마다 추가 요금을 받을 수 있는 미국 택시 요금 체계에서도 휠체어는 추가 요금을 안 받게 되어 있다)
반면, 뉴욕시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장애인을 택시가 어떻게 거부하면 고발 대상이 되는지 가이드라인이 있다. 한국 택시에도 인종이나 휠체어, 장애인 안내견 등의 이유로 승차를 거부하면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가 단속 권한을 가지는데 장애인 거부는 그 이유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미국의 강력한 법 덕분에 다른 점이 또 하나가 있었다면 상당수의 오래된 뉴욕 건물에서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나 리프트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에 비해 장애인차별금지법 도입이 20년 늦었고 강력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최근 20년 안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면 휠체어 접근이 어렵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가 홍대나 강남역, 신사역에 가면 들어갈 수 있는 매장이 거의 없다. 친구들과 놀러 가도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올해 대구시에서는 건물주와 1층 상점을 운영하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휠체어 경사로를 무상 지원해 주는 사업을 벌였다. 그런데도 지원율이 저조했다고 한다. 인식 수준도 낮고, 경사로를 만들어 놔도 비장애인들 발에 치이면 민원이 들어온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서울 번화가만 나가도 휠체어 외출이 좌절의 경험이 되었던 지민이에게 뉴욕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일주일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딸에게 물었다. “뉴욕 좋았어?” “응.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좋았어. 엄마 아빠가 나를 안고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는 게 제일 좋았어. 서울도 뉴욕처럼 내가 혼자 갈 수 있는 데가 많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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