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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옛 소설을 읽는 맛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휘현(2020-02-10 16:55:57)




지난해 연말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읽으며 내 뇌리에 파고들었던 생각은, 십여 년 전 내가 브램 스토커의 공포 소설 <드라큘라>를 읽었을 때와 거의 똑같았다.
‘옛날 소설은 왜 요즘 소설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밌을까?’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을 때도,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었을 때도 이 물음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고 요즘 소설이 흥미롭지 못하다거나 혹은 읽는 재미가 덜하다고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오늘날에도 재밌는 소설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풀어놓건대, 확실히 현대소설(그걸 20세기 이후의 문학으로 거칠게나마 분류해 보자)보다 현대 이전의 소설들이(이는 대체적으로 18-19세기 서구의 소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독자들이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더욱 박진감 넘치는 플롯들로 넘쳐난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는 예전보다 요즘 작품들이 훨씬 유려한 영상미에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어 대중들에게 예전 작품들을 진짜 ‘옛날 영화’나 ‘옛날 드라마’로 만들어버렸는데, 유독 소설만은 왜 옛 소설을 ‘옛날 소설’로 박제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내 나름의 해석을 꺼내보자면 이렇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노래와 춤 그림 등을 통해 찬란한 문화유산을 축적해 왔다. 이것들은 또한 긴 시간 동안 인간에게 유흥이라는, 쉽게 말해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관장해 온 문화예술의 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로 대중들에게 책이 보급되기 시작한 근대 유럽에서 소설은 그 어느 장르보다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면모를 과시해 왔다. 이 시기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문호들이 배출되었고 소위 클래식이라 불리는 수많은 고전소설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라디오, 영화, TV로 대표되는 새로운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책이 누리던 영광은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청각과 시각에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이 문명의 이기들은 금세 대중들의 감각을 사로잡으며 책과 문학을, 적어도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급속히 마이너의 골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렇게 대중오락의 기능을 다른 매체에 내어주고 인간과 세상의 좀 더 깊은 내면을 응시하는 방향으로, 소위 진지함이라는 것을 장착한 채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거친 이분법으로 보건대, 문학은 한때 대중예술로서 맹위를 떨치다가 이제는 본의 아니게 고급예술의 영역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대중예술의 중심에 있던 시절의 옛 소설이 오히려 요즘의 소설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재밌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흔히 하는 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쏙 빠져들게 되는 게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시절의 소설들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옛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떨어지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 소설 읽기를 즐겨 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20세기 이전의 소설을 그저 구닥다리로 치부해버리는 경우를 나는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그 편견은 다른 대중매체인 영화나 TV, 라디오의 신구(新舊) 케이스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벌인 오류가 아닌가 싶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적어도 근대 서구 문명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에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었고, 이때 쏟아져 나온 매혹적인 이야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여전히 홀릴 만큼 멋진 생명력을 자랑한다. 다만 우리가 그 책들을 잘 펼치지 않을 뿐.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5년 작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단언컨대, 지금까지의 내 주장을 뒷받침해 줄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약 보름 전부터 읽기 시작한 이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은(민음사에서 2002년 출간된 완역본이 총 다섯 권이다), 매일 깊은 밤 잠들기 전과 다음 날 새벽잠에서 막 깨어난 나의 고요한 시간을 오로지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주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매혹을 한 번 간단히 설파해 볼까?
세상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굳이 원전이 아니더라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에서부터 각종 축약본 서적,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되어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게 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다.
전도 유망한 젊은 청년이 사랑하는 여인과의 약혼식 날 주변 악당들의 모략에 빠져 어느 섬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 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탈출을 감행한 그가 자신을 망가뜨린 악인들을 찾아 처단한다는 내용. 그 주인공의 이름이 에드몽 당테스이고 그가 감옥에 갇혀 있던 시간이 14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몰라도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매혹되는 이유는 ‘복수’라는 플롯이 선사하는 강렬한 쾌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순식간의 추락과 절치부심 끝에 다시 시작된 화려한 삶, 그리고 원수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 이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플롯인데(가령, 공전의 일일연속극 히트작 <아내가 돌아왔다>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또한 플롯을 약간 비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복수의 테마를 재해석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되풀이되어 온 이 매혹적인 플롯의 오리지널 작품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전으로 완독한다는 건 꽤 신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 완역본에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보다 훨씬 풍성한 서브 플롯과 다양한 캐릭터들이 뒤마의 연주에 따라 멋진 이야기를 직조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과 절망, 그리움과 분노, 강한 생의 의지와 거부할 수 없는 욕망 등 인간만사 칠정오욕이 에드몽 당테스의 장쾌한 여정을 따라 우리 앞에 커다란 거울이 되어 어른거린다. 그 안에 바로 우리 각자의 삶이 담겨 있는 것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소설을 안 읽는다고 해서 인생에 무슨 큰 지장이 있겠냐만, 이미 경험해 버린 이 황홀한 독서체험을 비단 나만의 것으로 감추지 않고 다른 누군가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마도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아닐까 싶다.
문제는 소설의 두께인데……. 5백 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책이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가히 대하소설급이라 해도 무방하지만, 까짓것 매일 재밌는 일일연속극 본다는 기분으로 하루에 한 챕터씩 정복해 간다면 네다섯 달 안에 알렉상드르 뒤마의 오리지널 버전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완독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참에 옛 소설 읽기에 본격 입문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맛이 제법 쏠쏠할 것임을 자신한다.


이휘현(KBS전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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