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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 | 칼럼·시평 [문화칼럼]
5월, 민주주의를 돌아보고 미래를 희망하다
박상준(2020-05-12 18:57:58)

5월, 민주주의를 돌아보고 미래를 희망하다
글 박상준 전주교대 교수


봄 하면, ‘벚꽃엔딩’ 노래처럼 젊은 층은 벚꽃, 매화 같은 봄꽃 놀이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봄은 화사한 봄꽃 아래 일제와 독재에 저항하며 독립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 흘렸던 계절이기도 하다. 무명의 들꽃처럼 그렇게 이름 없이 외치던 사람들에 의해 지금의 민주주의가 발전해왔고, 오늘날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광복 이후 미군에 의해 처음 도입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역사와 함께 읽는 민주주의〉책이 잘 보여주듯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미국에 의해 이식된 것이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독립협회, 신민회, 3•1운동 등을 거쳐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후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등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은 인내천 사상을 통해 남녀 차별과 신분제를 없애는 만인 평등 사상을 일깨워주었다. 독립협회는 국민주권 사상에 기초하여 의회를 설립하고 법에 따라 지배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자고 계몽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 세력들이 국민이 주권을 갖고 지배하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대동단결선언과 2•8독립 선언서, 3•1운동을 거쳐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민주공화국을 법제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광복 후 임시정부가 채택한 민주공화국을 계승하며 1948년 민주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독재가 40여 년 지속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1960년 장기 집권하기 위해 정ㆍ부통령 선거에서 공무원과 경찰, 정치 깡패까지 동원해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이러한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선거 당일부터 일어났고, 4월 19일 서울에서 학생, 교수, 시민 10만여 명이 참가하면서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19혁명의 무력 진압으로 전국에서 사망자 186명과 부상자 6,02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결국 4월 26일 국회는 부정 선거를 무효 처리했고, 다음 날 이승만 대통령이 사퇴했다.

4•19 혁명 이후 계속되는 혼란을 틈타 1961년 박정희 중심의 군부 세력이 5•16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과 통일을 위해 분단 상황에 맞게 한국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장기 집권하였다. 또한 1972년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없애고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한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박정희의 ‘영구 집권’과 독재를 법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에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는데,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1호~9호를 잇달아 발표하며 탄압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드러나듯이,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의 유신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이 부마 민주항쟁의 대책을 둘러싸고 정권 내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대립이 발생하면서, 결국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었다. 이런 정치적 혼란을 틈타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정치 활동 금지, 보도 검열 강화, 대학 휴교령 같은 조치를 취했고 여야 정치인과 민주화운동 지도자 2,700여 명을 체포하였으며 군 병력으로 국회의사당을 봉쇄했다.

이에 광주의 학생과 시민들은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계엄령 철폐와 신군부 퇴진 등 민주화를 요구하였다. 그러자 신군부는 공수 부대를 투입하여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거나 발포하였고,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하여 진압했다. 그에 따라 사망자가 163명, 행방 불명자 166명, 부상 후 사망자 101명, 부상자 3,139명, 구금 피해자 1,589명 등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5•18 민주화운동이 무력으로 진압되었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운동은 계속 이어졌다. 1985년 제12대 총선 이후 야당 정치인들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000만인 서명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1987년 4월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 요구를 거부하고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한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6월 10일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으며, 야당 정치인,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100만 명 넘게 참여했다. 그에 따라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채택한 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되었다. 그 후 선거를 통해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민간인 최순실이 뒤에서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2016년 10월 말부터 2017년 3월 초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전국에서 매주 열렸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매주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으며,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몇십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그에 따라 2016년 12월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했고,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했다.

탄핵 이후 2017년 5월 ‘장미 대선’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가던 상황에서 지난 2월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커다란 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확진자가 급증하는 위험 속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은 대구로 가서 환자들을 치료했으며,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마스크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양보하였고, 마스크나 식료품을 사재기하지 않고 정부를 믿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4•15 총선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질서정연하게 투표하며 선거를 안전하게 마쳤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이 66.2%로 제14대 총선(1992) 이후 가장 높았다. 외신들은 “한국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를 민주적으로 치러냄으로써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었다”라고 극찬하였다. 그동안 일제 식민지, 6•25 전쟁, 장기간 독재, IMF 외환위기 등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시민들이 서로 배려하고 함께 도우며 위기를 이겨내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5월 화사한 봄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노력을 기억하는 봄날이 되면 좋겠다. 나아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민주주의 사회를 활짝 꽃피워 미래의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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