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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 | 기획 [기획]
2020년, 문화현장을 지킨 사람들
기획3
문명수, 김하람(2020-12-03 10:35:38)

긍정적인 사고가 새로운 길을 맞을 수 있다
                          전주국제사진제 운영위원장 박승환

2008년 전주에 사진을 주제로 한 축제가 만들어졌다. 전주국제사진제다. 사진축제를 만들고 운영해온 박승환 운영위원장에게 올해는 유난히 힘든 한해였다. 올해로 13회 째. 해마다 5월에 진행됐던 사진제 개최가 코로나19 여파로 불투명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행사가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다행히 하반기에 사태가 안정화되면서 사진전은 9월에 개최됐다. 노심초사하며 올해 전주국제사진전을 열었던 박위원장으로부터 사진제의 앞뒤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역문화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전주국제사진제는 전주에 부족했던 시각예술문화에 단비 같은 전시였다. 사진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사진 축제는 지금도 민간의 힘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주국제사진제는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을까.


“전주대 사진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전국적인 사진축제를 열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그런 사진축제가 많지 않았고, 지역에 부족한 시각예술문화에도 보탬이 되고 싶었죠. 그래서 대학원 제자들을 중심으로 ‘현대사진문화연구소’를 구성하고 이들과 함께 작은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계속 열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시의원의 지원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전시를 열게 되면서 오늘에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시의원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외부의 지원 없이 이런 성격의 사업이 3년을 넘기는 사례는 많지 않다. 사진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매년 다른 주제를 선정하고, 다른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기획을 해마다 바꾸었습니다. 문화사업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콘텐츠에 변화가 없으면 제작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관람객의 감소로 이어지고 지속가능성이 낮아지게 되죠. 매번 달라져야 제작자가 활기를 얻고, 관람객을 유치하며, 사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야외와 온라인에서 돌파구를 찾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매번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박 위원장은 환경이 크게 달라진 올해에도 큰 변화를 시도했다.


 “올해 사진제가 가을로 연기되면서, 2008년 가을에 열었던 첫 전시가 떠올랐고,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어 ‘오리지날리티(Originality)’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빈티지를 컨셉으로 흑백사진과 옛날 방식의 인화 방식을 추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죠. 이번 전시의 핵심은 스트리트 전시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중과 가까이하는 문화행사가 트렌드고, 코로나 시대에 실내보다는 야외전시가 안전해 스트리트 전시에 비중을 높였죠.”


안전하고 대중적인 전시를 위해 야외전시의 비중을 높인 그는 온라인콘텐츠도 처음 시도해 변화를 꾀했다.


 “이번 사진제에 온라인 콘텐츠를 처음으로 시도했습니다. 온라인 전시라고 하면 기존의 전시를 온라인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오프라인 전시에서는 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설명, 작가의 철학 등을 전달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온라인 세미나는 큐레이터와 작가가 출연해 온라인 관객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작품에 담긴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어요. 이번 경험을 토대로 내년에 더 나은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 계획입니다.”


위기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박 위원장은 코로나를 통한 새로운 시도와 개선된 점을 내세웠지만 사실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로 인해 유동인구가 줄었을 뿐더러, 멀리서 찾아오거나, 가족 단위로 참여하던 분들을 초대할 수 없어서 작년 대비 관람객 수는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올해의 경험이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좋은 계기가 된 만큼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고 말한다.


 “올해 코로나 사태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타격이 큰 만큼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실내가 위험하면 야외와 온라인에서 진행했고, 예산이 부족하면 외주를 맡기지 않고 직접 해나가면서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고단하긴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어요. 올해 사진제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위기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어느 때보다도 전시 환경이 여의치 못했던 상황에서도 새로운 변화로 출구를 찾았던 박위원장은 내년, 좀 더 새로운 방식과 의미 있는 주제로 관객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혼자에서 함께 하는 작업으로 새로운 눈을 뜨다
                                                                 화가 이주리


서양화가보다는 화가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주리 씨. 열정적인 활동으로 주목을 모아온 그는 올해에도 예외 없이 개인전을 비롯해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작가로 꼽힐만하다. 지난 11월, 그의 새로운 작업이 또다시 화제가 됐다. 세계소리축제가 기획한 19×19챌린지에서 선보인 드로잉 퍼포먼스. 무대에 선지 3일이 지났지만 그의 손톱 밑 검정색 물감은 아직 남아 있었다. 현실의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한 작품 활동과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담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다른 것들은 금방 싫증을 냈지만 그림 그리는 일은 달랐다. 그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국민학교 2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때부터 그림을 시작했던 그는 지금까지 줄곧 화가로만 살아왔다.


화가 이주리의 작품 주제는 ‘살다’. 주로 남자 누드가 서로 얽혀있는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누군가 지나가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뒷모습임에도 감출 수 없는 감정, 몸짓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여성의 누드일 경우 성적으로 보일 수가 있어서 남성 누드로 그리고,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도록 옷도 버리고, 머리카락도 버리고, 배경도 버려서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너 일수도 나 일수도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큰 주제는 ‘살다’지만 전시 때마다 새로운 주제를 잡는다. 최근의 주제는 ‘안착과 탈피에 대한 꿈’. 화폭의 가운데를 배경으로 삼고 외곽에 사람의 형상을 넣는 구성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림의 주제가 보통 가운데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가운데에 우리가 바라는 꿈, 희망, 바라보고 각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넣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비웠습니다. 배경이 주제가 되고, 외곽에 있는 사람들도 주제가 되는 형식을 찾고 있어요.”

화가 이주리의 2020년
그 또한 올 한해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가 여러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그림도 손에 안 잡히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동안은 멍하니 지냈던 것 같아요.”


5월에 갤러리 숨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상황이 좋지 않아 8월로 미뤘다. 전시를 강행했지만 오픈하던 날 8.15 집회로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아 망했다 싶었어요. 상황이 길게 갈 것 같으니 뭔가 궁리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어쨌든 8월 전시를 진행했는데, 그런 상황에 직면하다보니 오히려 전시장을 오든 오지 않든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안 좋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인간 관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행히 하반기에는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서 미뤘던 전시들을 풀어갈 수 있었다. 갤러리 숨에서의 개인전뿐만 아니라 우진문화공간과 모모 미술관, 누벨백 미술관 등에서 단체전을 진행했던 것도, 매년 파주에서 개최됐던 비무장지대 평화통일을 위한 전시에 비록 온라인 전시지만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전시가 공연보다 제약이 덜하기는 하지만, 예술 작품들이 직접 대면이 있어야 감흥이 더해지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작품을 준비해 내놓아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기운도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적어지죠.”


다양한 분야와 함께하는 콜라보
11월, 그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했다. 소리축제 19×19챌린지에 드로잉 퍼포먼스로 참여한 것이다. 리허설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의견을 나누는 것만으로 준비 작업을 마무리 해야했던 드로잉 퍼포먼스는 공연 당일, 오히려 즉흥성을 한껏 살려내는 퍼포먼스로 즐거움이 배가됐다.



“드로잉 퍼포먼스는 소리축제에서 먼저 제안을 했어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죠. 드로잉 퍼포먼스 자체는 한두 번 해봤지만 직접 기획을 하고 주도해서 진행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혼자 작업하기는 버거워 전체 큰 구상을 하고 다른 작가들과 협업으로 만들어갔어요. 40분간 오래달리기를 하는 기분으로 계속 돌고 뛰는 작업이었는데 기꺼이 의기투합하여 세 명이 모두 즐겁고 신나는 퍼포먼스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주로 자기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죠.”


그는 11월 16일과 18일 두 차례 드로잉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첫날 퍼포먼스의 주제는 그의 그림의 주제이기도 한 ‘살다’로 잡았다. 세상과 이상을 표현하고 그것을 붓으로 그어대면서 잇는 듯한 모습을 통해 이상을 좇아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퍼포먼스였다.
두 번째 날에는 ‘벽’을 주제로 코로나 시대에 보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했다. 아크릴 판을 두고 한 사람이 물 글씨로 수많은 말을 쓰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작가는 그것을 보며 아크릴 판에 계속 그림을 그려나간다. 소통을 위해 아크릴 판에 구멍을 내어 연기를 보내지만 결국 사라지는 연기처럼 소통은 단절된다. 아크릴 판 위의 그림을 긁어내 뒤의 대상이 보이도록 하지만 결국 아크릴 판으로 가로막혀 있는 모습을 통해 이 시대의 소통에 대한 갈증은 더해지는 상황, 소통 하고 싶지만 완벽히 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퍼포먼스를 하면서 제 분야 말고도 음악이나 연극 등 다른 분야와의 콜라보를 하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확장성이나 방향성 등 또 다른 것들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삶의 이유이자 목적, 그림
지금은 인정받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에게도 힘든 시절은 있었다. 작업실 유지비나 재료비가 꾸준히 들어가니 경제적으로 버티기 쉽지 않아 벽화 일이나 막일도 했다. 그 과정에서도 그를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오로지 ‘그림’ 그 자체였다.


“돌아보면 저에게 1순위는 그림이었어요. 삶의 이유와 목적이 그림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도 젊을 때는 뭘 해도 재미있어 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버티는 시기가 점점 길어지면 지치기 마련인데 그래도 운 좋게 저는 한 번씩 기쁨으로 오는 순간들이 있어서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됐어요. 살아보니 화가로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조금 가난하기는 해도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니 남들보다 내가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버티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희망고문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는 그는 젊은 사람들에게 버틸 힘들이 약해지는 것이 안타깝단다. 
“여러 레지던시 사업들이 있는데, 가능하면 작가들이 자율성을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작업 하면 좋겠어요. 사실 대학 나와 바로 작업실을 얻는 일은 큰 부담이거든요. 일정한 평가 기준은 필요하겠지만 최소한의 유지비만으로 작업실을 가질 수 있으면 그만큼 창작활동도 활발해질 겁니다.”

새로운 길을 찾는 2021년
코로나는 쉽게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정권에 들었다가도 다시 재확산하기를 반복하며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낼 수는 없다는 그는 결국 믿을 것은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온라인상의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답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이라 힘들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다 보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게 사람의 힘이 아닐까요.”


그는 2021년에는 전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콜라보를 통해 다양한 볼거리의 확장성을 계획하고 있다.


“AR이나 VR 쪽 제작도 고민 중이에요. 몇 가지 보니까 재밌게 해놓은 것이 있더라고요. 어쨌든 홍보를 끊임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방법을 찾는 과정입니다.”


아직은 아무리 온라인으로 잘 만들어도 섬세한 작가의 맛을 느끼기 쉽지 않다. 직접 대면에서 오는 감흥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어쩔 수 없이 온라인을 의지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형식적 표현의 한계를 절감한다는 그는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기술도 같이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해요. 또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창작의 계기가 될 것 같아요.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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