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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 | 기획 [기획 연재]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②
나무에서 종이로, 다시 종이에서 나무로
김하람(2021-02-03 13:35:11)

기획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협동조합 온리


나무에서 종이로,

다시 종이에서 나무로 

협동조합 온리


김하람기자



칠 백만 그루.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소비하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나무의 수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버려지는 폐지의 양이 120톤 정도. 물 없이는 3일을 버틸 수 있지만, 산소 없이는 3분도 버티지 못한다. 산소를 만들어내는 나무는 그만큼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되어 있다. 인간의 욕심에 따라 수없이 베어지는 나무만큼 우리는 우리의 숨 쉬고 살아갈 공기를 잃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쓰고 버려지는 종이 폐지 1톤을 재활용하면 나무 20그루를 지킬 수 있고, 물 28톤, 에너지 4,200kw/h를 아낄 수 있으며 이산화탄소 500톤을 줄일 수 있다. <협동조합 온리>는 버려진 종이에 싹을 틔웠다. 나무를 지키고 환경을 지키고 우리 삶을 지키는 종이정원, 그 속에서 푸르른 생명과 희망을 본다.


온고을의 되살림

2012년 지역에서 발생하는 폐자원을 가지고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과 지역 되살림 활동을 위해 다섯 명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 온리>다. ‘온리’는 ‘온고을’에 ‘리디자인’을 더한 말로 온고을의 되살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일반 기업, 게임 회사, IT 벤처와 여러 NGO, NPO 활동을 해온 김명진 이사장은 지역의 되살림이라는 가치,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선순환적인 지역 공동체의 되살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러한 공동체 형성을 위해 생산자, 판매자, 구매자, 후원자 등을 포함한 모든 참여하고 관련되는 사람들이 조합원이 되어서 지역 공동체 되살림의 주역이 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고 협동조합의 형태로 만든 것이 온리다. 이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소셜벤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온리에 대해 폐자원에 대한 업사이클링이나 친환경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며, 지역공동체를 되살리는 지속가능한 시스템 모델링을 실험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인 ‘친환경 대안 기업’이라 설명한다.



버려진 종이에 싹을 틔우다

종이정원은 협동조합 온리의 첫 번째 브랜드다. 지역에서 나오는 파쇄종이를 전통한지 제작 방식을 통해 만든 수제종이카드로 여기에 씨앗을 심어 나무에서 종이로, 다시 종이에서 나무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가진 업사이클링 제품이다. 


파쇄 종이는 국내에서 많이 발생하는 폐자원으로 이면지와 달리 더 이상 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되던 것이다. 이러한 파쇄 종이를 원재료로 삼아 전통한지의 제작방식으로 수제종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수제종이가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지 외에는 없다. 하지만 한지마저도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만들어진 값싼 한지들이 95% 가까이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 국내에서 한지 외의 수제종이를 대중화한 것이 종이정원이 최초다. 마음을 전달하는데 쓰이는 카드에 수제라는 아날로그 감성과, 핸드메이드라는 트렌드가 더해져 더욱 특별한 선물이 된다. 


종이정원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씨앗이 심어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초등학교 과학시간 때 화장지나 솜 위에 씨앗을 놓고 물을 줘서 발아시키는 실험이 있다. 같은 원리로 씨앗을 종이 안에 넣고 발아시키는 씨드페이퍼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에서 개발돼 제품으로 생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친환경 제품들이 해외의 제품을 벤치마킹했듯, 종이정원 역시 해외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소재에서 폐종이를 원재료로 쓴다는 점과 전통한지 제작 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종이정원만의 개성을 담았다.


파쇄 종이나 씨드페이퍼 활용은 그동안의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다. 김 이사장은 일반 회사에서 근무하다 <희망제작소>에서 처음 NGO 활동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여러 지역 되살림에 대한 고민을 하고, 국제적인 NGO들의 방식, 캠페인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그 이후 업사이클링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에코파티메아리>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들을 실험하는 경험을 했다. 현수막을 에코백으로 만드는 활동으로 이름을 알린 에코파티메아리는 사과나 해조류 같은 비목재 펄프로 만드는 문구류나 인쇄소에서 나오는 자투리 종이로 만드는 메모장, 이면지를 활용한 제품, 버려진 박스로 만드는 액자같이 다양한 제품들에 대한 실험 작업을 했고, 그때 김 이사장은 종이가 지구 환경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이후로 종이를 활용한 업사이클링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갔으며, 그동안 간과되고 있었던 파쇄 종이의 활용과 지역 전통을 업사이클링에 접목시키는 방법을 생각하던 가운데 파쇄 종이로 만든 수제종이카드를 탄생시켰다.


원재료인 파쇄 종이는 기증을 받고 있으며, 생산에는 지역에서 소외된 사람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생산 장인으로서 참여하고 있다. 카드의 원화도 지역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경력단절 여성들을 캘리그래피 작가로 성장시키는 단체와 협력하여 디자인했다. 정식 판매되는 디자인만 400여 종. 모든 소재를 친환경으로 사용하면서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있다. 수공업 방식에 대해서도 김 이사장은 친환경 시대에서 주목해야 할 생산 모델로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한 윤리적 소비와 생산•유통 방식을 통해 시장에 공급되고 그것이 다시 수입이 되는 선순환적 요소에 대해 좋은 평가들을 받았으며 사회적기업 스타상품, 한스타일 문화상품, 서울상징 관광기념품, Hi-Seoul 우수상품으로 선정됐다. 



진정한 업사이클링을 위한 고민들

카드 제작방법은 다음과 같다. 기증받거나, 수거한 파쇄 종이를 물에 불려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 믹서기에 갈아서 펄프 상태로 되돌린다. 이 과정에서 탈묵 과정(잉크를 화학약품으로 표백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펄프의 색이 깨끗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작하고 있다. 펄프에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염료를 사용하지 않고, 색이 있는 한지를 같이 섞어 무늬와 색을 만들어낸다. 이 방식으로 만들면 우연의 기법에 의해 무늬가 생기기 때문에 앞뒷면이라도 다 다른 무늬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펄프를 전통한지 제작 방식대로 카드 크기의 틀을 통해 뜨면 카드의 모양과 크기를 일정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종이에 씨앗을 심고 건조와 압착 과정을 거치면 수제종이카드가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카드에 지역 작가와 함께 작업한 원화를 인쇄하면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 만들어진다. 인쇄 역시 물에 닿아도 번지지 않고, 독성이 없을뿐더러 친환경적인 제품을 해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일반 잉크에 비해 열 배는 비싸지만, 일하는 직원들의 건강과, 친환경 제품 제작을 위해서 고집하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버려지는 폐자원을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업사이클링을 하려면 그 과정에서부터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새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와 화학약품부터 각종의 포장지 재질까지 환경적인 철학이 담겨있지 않으면 단순한 마케팅 용어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부분까지 고민이 되어야 좋은 환경 캠페인이자 실질적으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 이사장이 에코파티메아리에 있을 때부터 이런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며, 그 고민이 녹아난 것이 바로 종이정원이다.


좋은 잉크를 사용하면 제품 단가가 올라간다.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보기에 좋은 색을 내기 힘들다. 종이나 생분해되는 포장지를 사용하면 투명 비닐 포장을 한 제품보다 홍보하기에 불리하다. 협동조합 온리는 그런 부분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온리의 정체성이며 가고자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친환경적 소재, 친환경적 디자인을 활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전문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업사이클링 기업들이 고급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렇지만 온리는 수제와 대중화를 동시에 추구한다. 시장조사 결과 서울 홍대 등에서 판매되는 아트 카드의 가격은 보통 4,000원에서 4,500원 정도. 비싼 잉크, 수공업 과정을 거치지만 종이정원의 카드들은 애초에 그 가격을 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생산부분을 해결했다. 그것이 온리가 가진 노하우이며,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두 번의 위기, 그리고 코로나19

좋은 아이디어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그 길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2012년도에 설립하고 일 년 반 만에 직원이 스물 여섯 명까지 늘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전주 한옥마을에 있던 매장을 정리해야 됐고, 이후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매장을 뒀지만 사드로 다시 매장을 정리해야 했다. 이후로 사업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향후 전략들을 다시 수립해가며 뼈를 깎는 노력을 들였다. 국내 제품은 온라인으로 주문을 소화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명동관광기념품점, 전주한옥마을공예품점, 서울 사회적경제 매장 등에 입점해 제품을 알리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 등 다양한 도움으로 재정비를 시도했으나,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인프라, 전문 인력 등이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감수하고 지역으로 내려왔지만, 예기치 못한, 내부에서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들로 인한 위기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기호품인 만큼 시장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경영자로서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의욕이 앞서 여러 상황들에 대해 긴밀하게 대처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나누고 배려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것이 그가 선택한 삶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눔과 배려를 삶의 목표요, 길이라 정하게 된 것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할 때 활동천사라 부르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봤을 때였다. 자신과 동일하게 일주일 내내 일하고 나서 주말에 자원봉사를 나왔지만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고 친절한 모습에 마치 후광이 보이는 듯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 나눔과 배려를 자원봉사의 방식이 아닌, 그가 그동안 경험하고 고민한 것들이 녹아 나온 방식, 비즈니스의 방식을 택해 실현하고 있다. 


일하면서 얻은 보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다

“원재료가 되는 파쇄 종이도 선하신 분들이 기증해 주시고, 판매하시는 분들이나 고객분들, 기관단체분들과도 선한 관계에서 비즈니스상의 거래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또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처음과 달리 일을 하면서 얼굴빛이 좋아져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업사이클링 분야, 녹색제조업 분야, 그린디자인, 그린뉴딜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의 업사이클링 분야는 시작은 늦었지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환경문제에 더욱 관심이 많아진 요즘, 김 이사장은 업사이클링이 전도유망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저희가 하는 일들이 자선활동은 아니에요. 그저 공익성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발전 가능성도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아는 <이케아>도 작은 어촌 마을의 마을기업에서 시작했고, 업사이클링 기업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프라이탁>같은 곳도 두 형제가 만든 작은 기업에서 시작한 것이에요. 종이정원은 우리가 해외에서 봤던 재활용 제품들과 충분히 견줄 수 있는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김 이사장은 온리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플레이어가 되어서 지역을 되살리는 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지역 사회에서 긍정적인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다. 외부 환경에 지지 않고 버티고 일어서서 선한 영향력을 다시 펼쳐나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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