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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 | 칼럼·시평 [[문화칼럼]]
시대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 것
김옥영 다큐멘터리 작가 & 프로듀서(2021-06-10 13:22:09)



시대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 것



김옥영 다큐멘터리 작가 & 프로듀서



얼마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새로 나온 <다큐의 기술> 북토크 행사가 있었다. 사인회는 없다고 미리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가 끝난 관객들이 사인을 받겠다고 길게 줄을 지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쩔 없이 즉석 사인회를 하게 되었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대학생이 책을 내밀며 말했다. 자기는 앞으로 다큐멘터리가 하고 싶다고, 무슨 작품부터 보면 좋을지 추천을 해달라고. 초심자도 접근하기 쉬운 휴먼다큐 편을 추천했지만, 가슴 한쪽으로 아릿한 아픔을 느꼈다. 순수한 동경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어쩌면 갈기갈기 찢어지고 내동댕이쳐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 작품 심사를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젊은 청춘들이 지원이나 투자를 받기 위해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애쓰는 것을 , 사실이 실로 경이롭고도 안쓰럽다. 어쩌다 백만 관객이 드는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일 ,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가 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그들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큐를 제작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가슴 뻐근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정부 산하 기관에서 프로그램 제작 지원을 받으면 실적조사라는 한다. 지원의 효과를 측정하는 사후 조사에 해당하는데, 기준은 판매를 의미한다. 어디에 방영되었으며 어디에 팔렸으며 해외 개국 얼마의 금액에 팔렸는지를 보고하라는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이 K-콘텐츠로 불리며 시장을 휩쓸고 있으니 다큐멘터리 장르도 예외 없이 기준으로 평가되고, 실적은 해당 기관의 실적으로 홍보된다. 문화는문화산업으로, 콘텐츠 가치는 콘텐츠상품의 가치 둔갑한 오래인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관행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에 짙은 의문을 느끼곤 한다. 다큐멘터리는산업 있는가? 다큐멘터리에시장 존재하는가? 다큐멘터리는상품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변화로 인한 재정 위기에 부딪히면서 방송사에서도 다큐멘터리 편성을 점점 줄이고 있다. 역시나 되고 잡아먹기 때문이다. 드는 걸로 말하자면야 드라마가 코끼리급, 예능이 하마급이지만, 거기는 여차해서 시장을 석권하는 날에는 투자를 만회하고도 남는 장사이니 기대가 기꺼이 주머니를 풀게 한다. 

반면에 다큐멘터리는 투자 규모는 적지만, 돌아올 이익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결과가 정량적으로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축소로, 정성적으로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질적 연성화로 나타난다. 다큐멘터리도 예능처럼 재미있게 만들어서 시청률을 올리면 떠나간 광고주가 돌아오리란 기대감으로 다큐멘터리에재미 다그치게 것이다. 그러나 예상한 것처럼 다큐멘터리의재미 재미를 보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 다큐멘터리의 핵심인 리얼리티가 주는 재미는 이미 애저녁에 예능에서 복제해리얼리티쇼라는 핫한 장르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다큐멘터리적재미라는 것을 오판한 관리자들의 판단 착오로 기록될지 모른다. 

한편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이런 현실은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환기시킨다. 또한 질문이야말로 돈도, 지위도, 명예도 보장해주지 않는 험난한 길에 젊은 그들이 뛰어드는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수도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모든 장르는 서로 경계를 침투하지만 장르가 장르로서 존재하는 것은 장르만의 정체성을 주장할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나 드라마나 예능이 없는 무엇인가를 있기 때문에 별개의 장르로 분류되었고 이름 속에서 발전해왔다고 믿는다.  

무엇 나는현실을 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눈이 있고, 누구나 현실을 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사실인가? 눈이 있는 것은 실재하는 사물에 대한 인지일 뿐이다. 우리가현실이라고 말하는 거대한 추상은 세상의 오만가지 맥락 위에 존재하는 다면체이며, 우리 삶에 엄습해오는 줄도 모르게 엄습해오는 유령의 입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복잡다단한현실 대한 인식은 언젠가부터 우리의 눈이 아니라 미디어가 대행해왔다. 온갖 유튜브 채널과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요즘은 더하다. 미디어가 선택하고 미디어의 관점으로 재단된 현실 분절되고 파편화된 것이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미디어의 선택에 우리를 내맡겼고, 미디어의 시각이 나의 시각이라고 착각해왔다. 

다큐멘터리는 바로 거기에 의문을 갖는 장르다. 미디어를 통과한 파편적인 뉴스가 아니라 눈으로 총체적 맥락을 더듬고 해석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게 하는 근본 동력이며, 그것이 가장 장르적 매혹이다. ‘재미 아니라 어떤 의미 있는현실 탐구할 것인지가 다큐의 본질을 살리는 과제인 것이다. 

탐구가 나의 관심을 넘어 우리의 관심으로 확장되고 설득될 ,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나 드라마나 예능이 없는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다큐의 카메라가 그려내고 있는 그것이허구 아니라사실이며, 사실 바로 현재의 나의 삶과 무관할 없음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없는 가치다.   


4대강의 녹조는 과연 안전한가? 강서구에 장애인 학교 건립은 과연 차별인가? 성소수자 차별은 당연한가? 검찰은 과연 공정한가? 노년의 삶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대학은 나와야 하는가? 버려진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지구는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가? 

세상에는 실로, 실로 수많은 질문들이 있다. 다큐멘터리를 하겠다는 것은 모든 질문을 질문으로 인식하고, 하나의 질문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답을 찾기 위해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답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사람의 생각이 변화할 있고, 사람의 생각이 변화할 있다면 사회가 변화할 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달라질 없다. 다큐멘터리가 지향해야 것은 돈이 아니라 그러한변화여야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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