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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 | 연재 [임안자의 꿈꾸는 인생]
스위스에서 50년, 스위스에서 산다는 것 (32)
우리집 다락방과 영화계 친구들 2
임안자 영화평론가(2022-08-10 11:20:32)

임안자의 꿈꾸는 인생ㅣ스위스에서 50년, 스위스에서 산다는 것 32

우리집 다락방과 영화계 친구들 2



임안자 영화평론가



임권택, 장선우 감독_ 

나는 유럽의 여러 영화제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1994년에 처음으로 한국영화 회고전을 기획하고 그 방면에 경험이 많은 비상업 영화 협회 ”시네리브르“(Cinelibre)의 세 친구들과 손을 잡고 공동 작업을 했다. 내가 70년대 이후 한국 영화평론계의 주목을 받은 12편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이에 친구들은 스위스 정부에 후원금을 요청하여 2천 프랑을 받은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언론에 보내고 또 지방의 순회 상영 절차를 조절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 프로그램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영화”의 이름으로 그해 9월부터 11월까지 2개월 동안 16개의 아트영화관들을 통해 불어와 이태리어 지역까지 스위스 전국을 돌았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족보”와 “불의 딸”의 연출자 임권택 감독님과 “성공시대”의 장성우 감독님이 바젤과 베른의 초연에 특별히 초청되어 스위스 관객들과 대화 시간을 가지며 자리를 빛냈다. 스위스의 회고전은 그 밖에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비상업 영화협회들과도 연결되어 스위스 다음으로 두 나라에서 각각 2개월씩 전국 순회 상영의 기회를 가졌으며 그와 더불어 순회 상영의 프로그램에 대한 책자를 독일어로 출간했다. 한마디 덧붙이면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6개월 순회상영은 내 개인 프로젝트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적극 협조하여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첫 사례였다. 



박광수 감독, 문성근 배우_ 

나는 1989년 8월에 스위스로카르노 영화제(Locarno Film Festival)에서 두 감독의 통역자로 일했다. 국제경쟁부문에 선정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배용균 감독과 실헌성의 중단편 영화의 경쟁 부문에 들은 “칠수와 만수”의 박광수 감독이었는데 그해 배 감독님은 로카르노에서 한국 영화사 최초로 대상을, 박 감독님은 둘째 경쟁 부문의 최고상인 “청년상”을 받음으로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리고 1994년 8월에 박 감독님의 “그 섬에 가고 싶다”가 로카르의 국제경쟁부문에 선정되어 통역자로 참가하면서 박 감독님과 초면의 문성근 배우님을 만났다. 






정지영 감독_ 

1990년 “남부군”에 대한 인터뷰와 1991년 “하얀 전쟁”의 촬영 현장 방문으로 정 감독님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1994년 이른 봄에 앞에서 말한 스위스 한국영화 회고전의 준비 건으로 영화진흥위에 들르다가 감독님과 마주쳤는데 공교롭게도 감독님은 막 끝낸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유럽의 큰 영화제에 보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칸느나 베니스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다고 생각되어 나는 11월의 스페인의 산 세바스챤 영화제(San Sebastian Film Festival)를 추천했다. 위의 영화제는 유럽 4대 영화제의 하나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감독님은 내 말에 선뜻 산 세바스챤 영화제를 택했는데 다행히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국제경쟁 부문에 뽑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상에 버금가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International Federatiomn of Film Critics)을 수상했다. 그리고 나는 정 감독님과 안동규 제작사님의 통역자로 그들을 동행했다.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수일 감독_ 

1991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페사로 영화제를 위해 일할 적에 김동호 사장님은 우리를 많이 도와주셨다. 그리고 5년 뒤 부산 국제영화제가 설립되면서 나는 영화제 컨설턴트로 김동호 집행위원장님 곁에서 5년간 일했다. 그러다 2000년 3월에 프리브룩 영화제에서 전수일 감독님과 함께 위원장님을 만나게 되어 두 분을 우리 집으로 초청했다. 전 감독님의 “새는 패곡선을 그린다”는 그해 프리브룩 영화제서 대상을 받았으며 파리에서 영화를 전공한 감독님은 불어로 의사소통했다. 


이광모 감독_ 

1999년 3월에 나는 씨네21 영화 주간지의 기자로 프리브룩 영화제 참석하면서 이 감독님을 만났다. 경쟁부문에 들었던 감독님의 “아름다운 시절”은 프리브룩 국제시네마클럽상을 받았는데 영어에 능숙하여 감독님은 통역이 필요 없었다. 


9월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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