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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 | 기획 [도시의 유산]
순창의 농촌공동체, 품앗이로 싹튼 문화의 씨앗 ②
다시 흙에 주목하다
성륜지·신동하 기자(2023-03-15 16:02:42)

다시 흙에 주목하다






아무리 농촌의 인구가 줄었다고 하더라도, 순창의 경우 인구의 6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군민 모두가 행복한 순창’이 되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함께 행복할 길을 찾아야 할 터. 그 문제에 대해 10년 동안 고민해 온 두 모임이 있다. 순창에서 대대손손 내려오는 씨앗들을 모아 보관하고 가꾸는 ‘순창씨앗모임’과 풍산면 두지마을 청년회 ‘파킹스톤’이 그들이다. ‘순창씨앗모임’의 강병식 대표와 ‘파킹스톤’의 구준회 씨를 만나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순창씨앗모임


씨씨씨를 뿌리고 꼭꼭 물을 주었죠

하루 밤 이틀 밤 뽀드득 뽀드득 뽀드득

싹이 났어요


직접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작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가? 어릴 적에는 집 앞마당 큰 화분에 방울토마토를 심고 열심히 키워보기도 했다. 21년에는 대파값이 5배 폭등해 전국적으로 집에서 대파를 키워 먹는 이른바 ‘파테크(파를 키워 먹으며 돈을 번다)’가 유행했다.


순창에는 사라져가는 고유의 씨앗을 찾아 심고, 나누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모임이 있다. 바로 순창씨앗모임. 때는 2014년 12월. 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5명은 ‘씨를 직접 심고 받으며 오랫동안 이어온 씨를 찾고 늘리며 나누자’는 취지로 순창씨앗모임을 결성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회원 수는 40명을 훌쩍 넘었고, 각자의 밭에 씨앗을 심고 나누던 이들은 씨앗을 받기 위한 밭인 채종포를 만들어 토종 씨앗과 일반 씨앗을 심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들의 본격적인 활동은 3월부터 시작된다. 먼저 심어둔 토종 씨앗 6가지를 옮겨심기 위한 전체 모임을 3월에 한다. 4월에는 반납한 씨앗들을 다시 소분해 씨앗 나눔을 한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촌시장에서 토종 씨앗과 토종 모종 나눔을 하는데, 특히 올해는 씨앗 나눔에 토종 음식이나 체험들도 곁들일 계획이다. 본격적인 농번기가 오기 전에 봄나들이를 가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5월에는 밭 정리를 한 채종포에 모종 냈던 것들을 심는 파종을 하고 6월에는 손 모내기를 한다. 농가에서는 4, 5, 6월이 가장 바쁘고 7월같이 더운 여름날은 조금 한가해진다. 8월에는 배추 모종을 심고 나눔 행사를 한다. 10월에는 밭 탈곡기로 탈곡하고 11월에는 채종포나 개인 농사 같은 것은 마무리가 된다. 중간중간 씨받기하며 씨앗을 나눔하고 소분하는 것이 반복된다. 


2021년에는 토종씨드림과 순창씨앗모임이 순창의 씨앗을 수집해 기록한 ‘토종씨앗 기록집’을 출간했다. 순창씨앗모임 강병식 대표는 주변에서 얻은 씨앗이나 가지고 있던 씨앗들을 심다가 “이제 순창 지역에서 나오는 것들을 조사해서 이어가 보자”며 조사를 시작했다. 종자의 종류는 약 50가지지만 사람마다 기르는 방법도 다르고 지형도 달라 같은 종자여도 다 달랐다. 그렇게 받은 씨앗만 200개가 넘었다. 조사한 씨앗 중 반은 종자은행처럼 영구 보존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반은 요청한 분들께 나눠드리며 올해부터는 더 많이 심으려고 노력 중이다.




[Interview] 씨앗을 찾고 나누고 늘려서 이어가기





순창씨앗모임의 대표 강병식 씨는 2016년에 순창에 터를 잡은 햇수로 7년 차 귀농인이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강병식 씨는 환경단체에서 일을 하며 평소에도 환경 문제, 먹거리,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순창으로 오게 된 건 9박 10일간의 귀농교육 때문이었다. 이후 6주 프로그램으로 바뀌었지만 9박 10일간 살아본 경험이 순창을 선택하는데 크게 작용했다. 도시의 여러 관계 속에서 차단된 생활을 하고 싶었던 그는 귀농인들이 너무 많이 조직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고향 광주와 멀지 않으면서도 상황과 조건에 알맞은 집이 있었고 귀농교육을 받으며 정이 든 순창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들과 주로 교류했다. 농사를 배우기도 하고, 어르신들께 농지를 얻기도 했다. 젊은 사람이 온다고 하니 경계심도 만만치 않았을 터. 하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내려온 강병식 씨에게 동네 어른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농지 삼백 평 이상을 경작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논 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 어른들은 논과 밭 등 농사에 필요한 자원들을 많이 빌려주었다.


그렇게 3년을 동네에서만 살다가 2018년도부터 귀농인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귀농센터에서 나눔 할 때나 교육 있을 때만 동네 밖을 나갔는데, 씨앗을 받고 토종씨앗모임에 참여하면서 벼 모내기 제안까지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강병식 씨는 어르신들이 주로 활동하는 농요단, 풍물패 단원으로도 활동한다. 농요단에서 시연하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금과들소리’는 힘든 농사일을 품앗이로 극복하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소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순창의 대표적인 농요다. 강병식 씨는 “대부분의 단체는 본인들이 경험했던 것들, 마을에서 했던 것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제 만들어졌고 그 활동들을 함께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지마을 파킹스톤





두지마을은 ‘두레문화’와 ‘당산제’와 같은 마을 공동체 문화가 발달한 동네였다. 그러나 서로 돕고 돕던 농촌 사회에도 기계와 기술이 들어오며 개인주의화되었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현상을 두지마을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에 2012년 두지 마을을 꾸려가던 마을 어르신들은 수백년동안 지속되어 온 마을 당산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마을의 공동체문화를 귀히 여기던 귀농·귀촌인들이 나섰다. 청년회를 만들어 공동체 문화를 지켜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을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름도 ‘파킹 스톤(박힌 돌)’이라고 지었다. 이들이 처음 한 일은 당산제 대신 달집태우기를 제안한 것이다. 당산제는 규모도 크고 과정도 복잡하여 쉽게 진행될 수 없었지만 달집태우기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남성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당산제와는 달리 달집태우기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어디선가 굴러들어 온 천덕꾸러기들의 큰절을 받고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였다.


‘파킹스톤’의 활동은 그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농한기가 되면 활동이 줄고 무기력하게 텔레비전만 보는 어르신들이 안타까웠고 ‘겨울 문화 사랑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한방 의료 진료, 노래 교실, 발 마사지 등 청년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아 봉사하기로 한 것이다. 농협 창고를 인수하여 문화공간으로 만든 ‘두지마을 두레방’에서 매년 진행되고 있다. 그 외에도 두지마을의 이름을 딴 ‘연꽃마을축제’를 기획하고 마을 영상을 제작하여 ‘행복 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최근 출간한 책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에는 공동체의 회복과 변화 과정을 담았다. 마을 어르신들의 생애 구술부터 젊은이들의 자전적 이야기, 아이들의 동시가 실려 한 장 한 장 소중하다. 순창 최초의 마을 책이기에 더욱 뜻깊다. 




[Interview] 주민, 지역의 주인이 되다



풍산면 두지마을에는 드라마 속 홍반장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인물이 있다. ‘구준회’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두지마을 ‘파킹스톤’과 ‘풍산초등학교 학부모회’를 포함하여 순창의 귀촌인 모임인 ‘10년 후 순창’, 에서도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순창에 내려온지 올해로 딱 10년이 되었다. 많은 일을 했지만 ‘농산물 꾸러미 사업’은 그가 특히 공을 들인 것이다. 3년째 순창 농협에서 로컬푸드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처음부터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 계획이 아니었다. 도시 출신인 자신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농민들이 농사 지은 것들을 제 값을 받고 잘 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LG 전자를 그만두고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거래하는 아이쿱 자연드림에서 일을 배웠다. 덕분에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농산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생산지인 순창에 와보니 그 수요가 없었다. 선택지가 많았던 서울과는 달리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유기농 식품을 사기 위해서는 전주나 남원까지 가야하는데 최소 50km가 걸렸다. 생각해 두었던 사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순창군 여성농업인 종합지원센터에서 꾸러미 사업을 고민하던 선배를 만났고 2014년 3월 처음 시작했다.


사업은 한 달에 한 번 여성 농업인들이 텃밭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품들을 꾸려 구독자들에게 보내는 형식이었다. 한참 인기가 좋을 때는 회원수가 150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맞벌이 부부가 점점 더 늘어나고, 밀키트 사업이 확장되며 위기를 맞이했다. 그렇게 첫 번째 사업은 60번째 꾸러미가 발송되던 2019년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왔다. 자가 격리자가 늘고 건강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며 다시 한 번 꾸러미 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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