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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 | 특집 [2017 도시기행을 돌아보다 ④]
아픔과 시련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소록도(2018-02-07 16:26:05)



소록도(小鹿島). 하늘에서 바라본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라남도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항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작은 섬. 면적은 4. 42제곱km밖에 되지 않는, 여의도의 약 1.5배 정도 된다. 620여 명의 한센인 외에 200여 명의 병원 직원, 그 가족이며 자원봉사자들까지 합해 천여 명이 사는 곳.
푸른 바다와 울창한 나무가 어우러진 수려한 절경을 지니고 있지만, 한때 노역에 신음하던 한센병 환자들이 탈출을 위해 몸을 던지던 바다가 있는 곳. 작은 크기에 비해 그들의 아픔과 애환이 묻어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사연 많은 섬이기도 하다. 단절과 절망으로 기억되던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를 가둔, 악명 높은 '소록도 갱생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 소록도는 강제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한센인들은 이곳을 '한국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라 불렀다.
그러던 것이 2009년 3월, 고흥 도양읍과 거금도를 잇는 소록대교가 개통되었다. 이로써 1916년 강제 격리 수용된 지 93년 만에 비로소 주민들에게 채워진 물리적 격리의 세월이 끝나게 된 것이다.  소록도는, 그 이름에 걸맞게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이었다. '섬 일대에서는 해산물도 잘 잡혔고, 섬이라는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육지와 격리되면서, 기후가 온화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이 많으며, 육지와 가까워 물자를 나르기가 쉽다.'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이 한센인들을 위한 섬으로, 소록도 자혜의원(慈惠醫院) 설립의 적지로 선택된 조건이 되기도 한 것이다.


일정 2017. 6. 17(토)
소록도(수탄장, 중앙공원, 검시실, 감금실, 식량창고, 자혜의원, 만령당) – 청춘창고


소록도 수탄장
수탄장은 소록도갱생원의 직원지대와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는 병사지대로 나뉘어 지는 경계선으로 1950~1960년대에는 경계를 구분하는 철조망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는 환자의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달에 단 한번 면회가 허용되었다. 이때 감염되지 않은 자녀와 부모는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다. 이 슬픈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고 불렀다.


소록도 중앙공원
1936년 12월 1일 착공, 3년 4개월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1940년 4월 1일 완공하고, '부드러운 동산'이라 불렀다. 당시 산림을 깎아 만든 공원의 면적은 약 1만 9,800㎡에 달했다.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 연인원 6만여 명을 강제동원하여 조성하였으며, 득량만과 완도 및 소록도 주변 섬에서 암석을 채석하여 옮겨오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반입하여 식재하였다.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
한센병 환자가 사망한 후 본인 또는 가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불법적으로 인체 해부를 자행하였던 곳으로 해부실이라고도 불렀다. 1936년에 건립하였으며 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내부에 사망한 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 정관절제(精管切除)를 집행하던 수술대 등이 보존되어 있다.


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
일제강점기에 한센병 환자를 강제로 수용하여 감금한 장소이다. 1935년에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제6조와 동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설치되었다. 소록도갱생원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감금하였다. 감금실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는 모든 자유와 권리가 억압되었고 최소한의 변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

구 소록도갱생원 식량창고
이 건물은 환자에게 보급되는 식량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바닷물 속에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마루를 깔아 조수 간만의 차에 의한 공기 순환을 유도하여 내부에 쌓여 있는 식량이 보존되도록 설계되었다. 1940년대에 지어진 창고 건축물로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형태이다.


자혜의원
본 건물은 소록도 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치료와 사무가 이루어진 초기 소록도 자혜의원의 모태이다. 벽체 내부를 붉은 벽돌로 쌓고 증축된 부분은 시멘트 블록들을 사용하여 목조로 마감한 점이 본 건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당시에 광주, 부산, 대구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사립 한센요양원이 있었으나 소록도 자혜의원은 일제시대에 건립된 한센병 치료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만령당
만령당은 1937년에 일본의 목조탑을 모방하여 건축한 원통형 시멘트 벽돌조에 갓 씌운 형태의 동판지붕을 얹은 건축물이다. 한센병 환자로 소록도에 강제수용을 당하여 한 많은 생을 살다 마감한 환자의 납골당이라는 기념비적 의미와 조형성을 갖춘 건축물이다.


청춘창고
1961년에 지어진 양곡창고는 수명을 다해 철거 위기에 놓여 있었다. 지역 청년들은 양곡창고를 창업 공간이자 젊은 여행객들이 머물며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순천시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50년 이상 양곡을 보관하던 순천농협 조곡지점 양곡창고의 구조를 변경, 청년들의 창업 공간이자 청년 문화가 교류하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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