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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 연재 [수요포럼]
다큐, 경계를 넘어 기적을 만나다
제189회 수요포럼 | 올림픽 공식영화 '크로싱비욘드', 어떻게 기획 되었나
도휘정(2018-11-16 12:47:24)



생후 4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스하키 선수 박윤정. 한국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아했던 그녀는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됐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반도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남북 단일팀으로 뛰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깨닫게 된다.
가나의 첫 번째 스켈레톤 선수 아크와시 프림퐁은 청소기 방문판매를 해서 번 돈으로 '평창올림픽'에 출전했다. 30명의 선수 중 30등을 했지만, 아프리카 청소년들에게 도전하는 용기를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사자드 후사이니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3시간 동안 산을 걸어 올라가 1분 30초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다. 비록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인생 아닌가.
이 모든 삶이 어우러지는 장(場), 올림픽이다. 국가, 민족, 인종, 성별, 종목, 선수, 이야기, 저마다의 경계를 지닌 것들이 만나는 곳. 그리고 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강력한 제약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뒤늦게 올림픽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제작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다큐멘터리 <크로싱 비욘드>를 제작한 김옥영 (주)스토리온 대표가 189회 마당 수요포럼에 초대됐다.
주제는 '다큐의 기술'. 1980년대부터 다큐 작가로 활동해 온 그는 다큐멘터리 백 수십 여 편을 집필했고, 수많은 상을 거머쥐었다. 영역을 넓혀 '여수엑스포' 한국관 및 기후환경관 시나리오 및 제작을 총 감수했으며,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제작사 '스토리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올림픽 때마다 유명 감독들이 공식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88서울올림픽' 기록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했다고 해요. IOC 측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의 감독들에게 영화를 맡기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 장편 대상을 수상한 이승준 감독과 함께 제안서를 내게 됐어요. 보통 기획을 하는 데 있어 어떤 조건이 제약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특히 IOC 조건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IOC는 공식영화에 올림픽 경기 장면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단, 독창적인 예술영화를 원했다. 다음 조건은 올림픽 정신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 아주 강력한 단서조항이자 제약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올림픽 공식영화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굉장히 비슷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훌륭한 감독들이 해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스포츠를 원래 싫어했어요. 그런데 올림픽을 해야 한다고 하니…. 하지만 처음부터 한 가지는 분명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굉장히 많이 보아왔던 기록영화의 모습은 절대 안 된다,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것이 관건이었죠."


김 대표는 "개인적으로 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며 "한국이라는 지역성이 배재되어서도 안 되고 동시에 영화를 보게 될 세계적인 관객을 염두 해 두자고 스스로에게 조건을 주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지역성은 무엇일까? 오늘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것이 한국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것이 한국인가?


"저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우리에게 한반도의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분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단을 어떻게?'라고 했을 때는 고민이 많았지요.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도 외국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분단된 상황이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분단이 유효한 소재이기는 하나, 어떻게 이야기할지는 미지수였어요. 올림픽은 일종의 축제니까요."


밤에 잠깐 누웠는데, 함민복 시인의 시가 번뜩 떠올랐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이 한 구절이 와서 꽂혔다.


"한반도에서는 분단이 경계니까. 우리가 경계를 찾으면 되겠다 싶었어요. 다른 모든 선수들에게도 어떤 경계가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이야기가 풀렸던 것 같아요."


기적, 다큐를 만들다
우리 삶은 어떤 경계, 장벽을 넘어서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한국적 분단만으로는 안 된다. 여러 나라에서 각각의 경계를 가진 사람을 찾아보자. 평창올림픽 영화의 컨셉이 '경계'로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출연할 사람 선정부터 엄청난 고투가 있었어요. 일차적으로 모든 선수 명단을 가져다 놓고 국가, 인종, 남녀, 종목 등등 균형성과 다양성을 고려해 선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인물들이 출연하게 됐죠.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조차 못했어요. 또 우리나라는 모든 다큐가 주인공 한 명을 쫓아가는 구성인데, 이번 다큐에서는 모든 사람의 비중을 같게 하고자 했어요. 각각의 인물 라인이, 그들이 가진 경계를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올림픽에서 어우러져야 한다. 옴니버스가 아니라 동아줄처럼 꼬려고 했어요. 일단 여러 사람을 다룬 다큐라는 점에서 외형적으로 새로웠다 싶었죠."


30년 동안 다큐를 해 온 그이지만 작품이 처음 설정대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머리가 이상적이라면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항상 상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다큐였다.
<크로싱 비욘드>도 마찬가지. 기획할 때 분단이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북의 참여와 응원단의 모습을 통해 남과 북이 마음의 경계를 넘는 순간 정도를 표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올림픽에서는 남북이 공동 입장하고 아이스하키 분야에서 단일팀을 이루는 기적이 일어났다. 게다가 입양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존재로 섭외해 놓은 박윤정 선수가 포함된 아이스하키라니.
<크로싱 비욘드>의 철책선은 분단과 경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이었으나 눈 내리는 장면만 직접 촬영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자료 영상을 어렵게 구해 썼다. 비무장지대에 바람이 불고, 풀잎이 나부끼고, 새소리가 평화롭다. 노루가 비무장지대를 자유롭게 뛰어노는 장면은 기적이었다. 


"그래서 모든 다큐는 기적이 존재해요.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 다큐는 현실을 다루기 때문에 우연의 힘이 크게 작용합니다. 어쩌면 한편 한편을 어떤 기적으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우연 때문에 서스펜스(suspense)가 있는 일이지요. 보는 입장에서는 평범하지만, 만드는 사람들은 수많은 기적을 거쳐 만드는 겁니다."


다큐의 다섯 가지 조건
그는 다큐멘터리의 다섯 가지 조건을 강조한다. 첫째, 크리에이티브.다.


"크리에이티브. 무조건 새로워야 합니다. 특히 콘텐츠 쪽은 드라마든, 영화든, 다큐든 새롭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작품들을 보다보면 제일 안 좋은 말이 '상투적이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일종의 되풀이죠.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상투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것이에요. 예를 들면, 어머니 하면 헌신이라는 단어가 따라오는 거죠.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는 게 상투성의 보편적 진리를 무시하라는 게 아닙니다. 보편적 진리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느냐가 문제지요."


인기를 끌고 있는 외국인 출연 방송은 '미녀들의 수다', '비정상회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 사람들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소재였어도 다 다르게 만들어졌기 때문. 시청자들이 봤을 때 새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독창적이라는 것은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라며 "그냥 붙여놓는 것이 아니라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해 어떤 의미망을 형성해야 하며, 사람들이 그걸 대했을 때 새롭게 느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재가 같다면 관점이 다르고, 방법론이 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동시대인의 관심과 닿아있어야 한다.


"새롭다고 해서 기상천외한 것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들은 촉이 있어야 된다고 해요. 일종의 더듬이죠. 소위 말하는 대중, 동시대 사는 사람들의 잠재된 욕구가 무엇인가. 시청자들은 이율배반적이에요. 설문을 하면 유익한 프로를 원하지만 정작 보지는 않죠. 또 결과론적으로 똑똑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잠재된 욕구는 몰라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욕망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시청자, 관객보다 딱 반발자국만 앞서야 해요. 한 발짝, 두 발짝 앞서가면 대중은 못 따라와요."


그는 사람의 갈증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면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갈증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갈증일 수 있다고 했다.



세 번째는 재미다. 사람들은 다큐가 엄숙하다고 생각한다. 다큐 역시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계속 주장한다. "다큐도 흥미로워야 한다".


"다큐는 모든 영상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객들과 대화하고자 하는 장르입니다. 왜냐, 현실을 소재로 하니까.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다큐가 하나의 영상예술 장르긴 하지만 현실 그 자체, 삶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네가 살고 있는 삶이 어떤 거니, 라고 질문하는 건 사실 가장 적극적인 대화 형태입니다. 어느 장르보다 재미있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흥미가 없으면 사람들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채널을 돌려버린다. 다음 장면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재미이든, 감동이든, 힐링이든, 어쨌든 흥미로워야 한다.
넷째가 가장 중요하다. 다큐는 물론 무엇인가를 기획하려고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표다. 궁극적인 목표가 없으면 부분적으로 재미있을 수는 있으나 사람들을 계속해서 끌고 가는 힘이 없다. 그리고 목표에 비추어 방법론이 결정되어야 한다.
다섯째, 제약이 있을 때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실현가능성이 있는가. 거창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현혹되는 시절은 지났다.


"사실 제가 회사를 하고 있기는 한데, 취미활동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수익 내는 데에도 관심이 없고, 내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해마다 2편 정도씩 만들어 왔는데, 올해는 올림픽 하나 했어요. 지금은 시대적 상황이 북한 관련물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아직 루트(route)는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북한 관련물을)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이 시대에는 이걸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때려 칠지도 모른다고 해 온 게 벌써 8년이다. 그래서 스토리온에는 아직 간판이 없다. 경계 없는 기적을 이루어 가고 있는 그녀에게 간판이 뭐가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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