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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 | 특집 [평창동계올림픽과 한반도 평화]
'평창'이 한반도의 전운을 밀어냈다
이재규(2018-03-15 10:44:52)



2.25일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릴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자컬링 경기의 은메달 획득 등 17일간의 극적인 경기 소식에 마음 졸이며 텔레비전 앞에 앉았던 스포츠 애호가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조성된 특별한 긴장 국면에 주목했던 내외부의 관찰자들은 평창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하나 하나에 귀를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평창올림픽의 성료는, 국가의 위신이 달린 대규모 국제 스포츠행사를 무탈하게 끝냈다는 데 그치지 않고 스포츠 행사를 통해 정치적 난제를 풀어낸 대표적인 사례로 올림픽과 국제정치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두고두고 인용될 '사건'이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폐회식에서 남쪽 윤성빈과 북쪽 렴대옥 선수의 사이에 서서 '손하트'를 날렸다. 평화와 조화, 화합이라는 올림픽의 이상을 실감케 하는 연출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구성과 개, 폐막식 공동 입장 등 남과 북이 이번 대회 기간 내내 세계의 주목을 끌면서 한반도 문제를 국제 무대에서 긍정적 의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사인 같은 것이었다.


'평창'이 한반도의 전운을 밀어냈다

평창 이전에 북미가 강도를 계속 높여가며 전쟁불사론 수준까지 긴장국면을 높였던 것에 비하면 돌연 찾아온 평창의 평화는 그야말로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김정은의 신년사 등 '돌연'으로 보이는 국면 전환의 이면에 남과 북의 사전 노력이 쌓여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성격상 공식 확인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남북은 올림픽 전에 비공개 접촉을 가지며 평창 대회 북측 참가를 타진해왔다.
이어 공식 무대가 열리자, 김정은의 여동생이며 북한 정권의 실세라 할 김여정 특사와 공식 북한 수반인 김영남의 방남에 이어 군사 정보 채널의 실질 책임자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폐회식 참석과 대미 대화의지 공식 천명 등 북한은 평창이라는 호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북측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이후 사태의 전개로  문재인 정부가 표방해온 '한반도 운전자론'은 그 정책적 입지가 크게 달라졌다. 특히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이면서도 북핵 국면에서 대내외적으로 실질적 발언권이 크게 위축되었던 남측 정부가 평창을 계기로 거중 조정자의 역할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이후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 아닐 수 없다.


'남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적 당사자임을 드러냈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 보여준 미국 펜스 부통령과 아베 일본총리의 냉랭한 태도와 비교해 남북이 함께 보여준 화해와 대화 제스처는 더 분명한 대비가 되었다. 평창에서 세계를 향해 보여준 평화 무드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 수위가 내려가면서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화되어 우리 경제의 안정성 제고에도 힘을 더했다는 분석에는 큰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안다. '16~'17년에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금리·환율·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상승하고 주가·외국인 투자가 하락세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올해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여러 데이터를 통해서 확인된다.
무엇보다 이번 평창 공동 행보를 통해 단절된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 남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적 행동자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3 판문점과 1.9 서해 군통신이 수년 만에 회복됨으로써 긴급한 상황에도 대외 매체를 통해 강건너 불길로 먼 연락만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남북간 연락채널이 복원된 것을 시작으로 남북대화 재개, 남북간 육로·해로·항공로 재개, 예술단·단일팀 등 다방면의 인원 참가 등 남북간 활발한 협력이 진행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평창에서 확보된 반전의 계기를 분명하게 살려 나가야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연쇄적 행보가 평창 올림픽 기간 중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2.10) 하는 등의 계기에 북한에 북미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북미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우리측 입장을 전달했고 북한의 방북 초청에 대해 "여건 조성"을 강조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사실상 남북 최고지도자간의 간접대화 성격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폐회식에는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참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관한 실질적인 협의의 물꼬를 텄고 '북미 대화' 용의를 분명히 천명했다. 아직까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 변화는 없으나, 북미 모두 대화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 진전 가능성이 커졌다는 좋은 신호다.
미국 역시 최대압박 기조는 변하지 않았으나, 미국은 남북대화가 북미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을 지지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2.17, 미 CBS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 고 했다.
평창 이후의 남북관계는 국면의 반전을 이뤄낸만큼 <긴 호흡으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으로 나가는 기조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특사 답방, 고위급 및 군사 등 분야별 대화를 이어가면서 남북간 시급한 현안을 협의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대통령 방북 요청에 대해서는 대통령 표현대로 차분하게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는 게 현실적이다. 남북교류는 각각의 특성을 고려, 단계적으로 복원하며 확대를 모색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정부 채널에서는 3.9부터 시작되는 동계패럴림픽 북한 참가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겨레말큰사전·만월대 등 민족 동질성 회복사업과 함께 보건의료·산림·종교·체육·문화 분야의 민간·지자체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는 것부터 땅을 다지겠다는 입장이다.
여론조사에도 나오지만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의 엄중성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분명한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면서 남북관계의 추가적 개선을 위해서는 북미대화 등 비핵화 과정에서의 진전이 필요하다. 남북대화가 순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투트랙의 접근이 필요하다. 유엔·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대북제재 공조를 유지하고 성실히 이행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용납할 수 없으며, 북핵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유지한다는 정부 입장은 적절한 것이다. 이래야 북미대화 진입을 지원·견인하면서 필요시 주선·중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국민들 내에서도 대북정책에서는 다양한 우려와 지적들이 있다. 국민들의 대북인식 변화를 고려하고 젊은 세대의 가치와 요구 등을 직시, 진정으로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과 함께 하는 대북정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먼저 북의 핵 폭주 명분을 제약하는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한반도 군사긴장의 동결 국면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정부의 주도적 노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이 지속되고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국면이 일정기간 진행된다면, 트럼프 정부의 의도와 무관하게 미국도 북미대화를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국제 대북제제 시스템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조차 포기하고 핵과 군사 대결의 외길로 폭주하는 것이다." (이승환 /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평화공존, 통일을 향한 길은 여러 갈래일 수 밖에 없다. 천천히, 그러나 어느 쪽인지 방향을 잃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는 걸음에 이번 평창은 정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긴 터널의 끝에 밝은 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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