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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 | 연재 [수요포럼]
당신의 소중한 시간의 기록
나만의 책 만들기
박현옥(2018-03-15 10:47:03)



내가 생각하는 책은 지식이나 정보 전달의 매체 즉,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읽기 편하고 제본만 깔끔하면 별다른 불만이나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책의 물성"을 말하며 평생을 책 만들기에 몰입해서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기획, 저술, 디자인을 하고 인쇄와 제책까지 내 손으로 만드는 일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초대 글에서 밝혔듯이 내 손으로 책 한 권을 만든다는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 셈이다. 그는 자신이 왜 책에 몰입하게 되었는지, 왜 삼례에 내려와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대해 두 시간에 걸쳐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는 왜 책에 몰입하게 되었는가?

대학원 졸업 후 곧바로 외래교수로 출판 제작론 강의를 하던 그는 인생에는 트렌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93년 잡지사에 입사,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매일 15종의 일간지를 정독했다. 그리고 100여종의 잡지를 구독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덕분에 "촌놈이 트렌드를 읽는 안목을 확실하게 배웠다."고 말한다. "사람의 시각은 코끼리 만지기나 같습니다. 제각기 꼬리나 다리, 코를 만지고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즉 같은 사건이라도 보는 이의 생각 가치관 세계관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인생이란 퍼즐입니다. 잘 맞춰놓으면 나만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나만의 것, 나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자신 있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잡지사에 근무하던 94년 도쿄 출장 중에 접한 일본의 서점과 책 문화에 놀란다. 전철의 직장인뿐만 아니라 거리의 노숙자들마저도도 뭔가를 읽고 있었다.
95년 유럽 출장 중 별 생각 없이 들렀던 마인츠의 구텐베르크 박물관에서 그곳 직원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는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금속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을 그들보다 일찍이 출간한 우리나라는 확장성 없이 머물고 말았지만 구텐베르크는 그 인쇄술을 이용해서 바이블을 대중화 시키고 유럽 각국에 유통시킴으로서 사회와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97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보름 넘게 종일토록 각 부스를 돌아다녀도 10분의 1도 채 못 본다는 거대한 전시회. 그리고 그 부스를 일주일 넘게 오가며 느꼈던 충격으로 그는 자신의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98년 기획하고 99년 우여곡절 끝에 자비 출판한 그의 책 "책 잘 만드는 책" 4000부가 완판 되고 꾸준히 스테디셀러로 자리한 것을 본 그는 퇴사하고 드디어 책 만드는 길로 온전히 들어서게 된다.


2001년 '책 공방'을 차리고 독특한 책을 만들며 자리 잡아간다. "공방을 차리면서 수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걸어갑니다. 책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판을 이야기 하는데 저는 책하면 책 만드는 기계, 도구 책과 어우러지는 수많은 아웃사이더에 숨어져 있는 책을 끄집어냅니다. 그게 뭐냐 바로 물성이라는 겁니다. 그때부터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물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어갈 때다. 독일에서는 이런 사라져가는 기기들을 박물관에 소장하고 장인에게는 '마스터'라는 칭호를 줘가며 대우하는데 우리나라는 천한 직업이라 여겨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기기는 죄다 고물로 폐기하고 있었다. 그 가치를 알아보고 안타깝게 여긴 그가 폐기되는 인쇄기와 책 만드는 도구들을 힘닿는 데까지 사서 모으게 된다. 20대 때부터 골프장을 다니고 술 마시고 수입차를 모는 것이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삶은 기계를 만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자꾸만 늘어나는 수집품을 100여 평의 창고를 임대해서 10여 년간 보관하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그는 15년 동안 오로지 책을 위해 매진한 자신을 위해 스스로의 안식년에 들어간다. 1년으로 예정하고 종로구 계동에 카페를 겸한 책 공방을 내고 쉬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공방 작품을 알아봐주고 세계 각국에서 오는 친구들과의 문화적 교류가 즐거워 그 기간을 2년으로 늘린다.


왜 삼례로 내려와 자리하게 되었나?

2013년 완주군수가 찾아와 책 마을에 대한 제의를 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전주도 아니고 웬 삼례?"라고 생각하고 거절했으나 삼고초려의 끈질긴 설득 끝에 5톤 트럭 20대분의 물량을 싣고 삼례에 왔다. 대단한 완판본의 도시, 출판의 고장인 이곳 전주지만 와서 보니 과거의 명성 뿐 현재에 이어져 내려오는 전주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삼례 책 공방에 와서 모티브를 잡은 것이 '내 콘텐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어서 '기록'이라는 화두를 잡았습니다." 그는 명망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기록에 힘쓴다. "우리는 책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다 같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나만의, 우리만의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망가들은 자비로 자서전 출간하면 됩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 민초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모두 소멸됩니다." 그래서 그가 첫 번째 시도한 일이 군의 지원을 받아 마을 사람들의 자서전학교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또한 다니던 교회의 70주년 사업으로 신도들의 소소한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 책으로 엮었다. 그는 '샘이 깊은 물'의 한창기 선생을 예로 든다. "소리꾼 점쟁이, 내시 이런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을 기록한 민중자서전이 아무 필요 없다고들 했습니다. 민중의 소리, 가락, 완창 하는 소리를 녹음하니 당시에는 아무도 그 가치를 몰랐습니다. 지금 중고서점에서 그것들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거래되고 있습니다. 한창기의 문화 콘텐츠는 책입니다. 2~3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그 시대 한창기가 했던 업적의 10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주만의 콘텐츠, 전주만의 창, 소리, 전주 책에 해야죠. 완판본에 해야죠." 그는 책 공방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과 책 기획자를 양성하는 일 그리고 기록의 힘과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비친다. "내 것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고 역설한다.


강의 말미에 우리 눈은 호사를 할 수 있었다. 그가 준비해온 유럽 북 아티스트들의 책을 접할 귀한 기회를 가진 것이다. '오더 북'으로 제작된 지 100년이 넘은 커다란 수제 공책, 그가 특허를 받은 '누드 양장 제본 책'이라는 표지 없이 360도 펼쳐지는 책. 그리고 『BOOK TOOLS』 '일명 벽돌 책'이라 불리는데 책 만드는 도구 30여 종류 600점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자료 수집부터 책이 나오기 까지 17년이 걸렸다고 한다.(한데 그는 이 책의 여백을 방명록으로 쓰고 있었다. 우리 역시 돌려가며 그 책의 빈 공간에 그에게 보낼 한 줄의 메모를 보태었다.) 1800년대 초에 마블링 방식으로 만들어진 바이블, 금장을 입히고 기름종이에 귀하게 포장하고 박스형의 책 표지에 넣은 예쁜 성경책,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아주 작은 책, 아코디언처럼 죽 펼쳐지는 책, 멋진 삽화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입체 책 등등.


그는 말한다. "결국 매일 매일의 기록이 책을 만듭니다, 아카이빙을 해야 콘텐츠가 나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남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일기에서 시작하고 끊임없이 기록하십시오. 자기 것을 발견하고 분명히 찾으면 모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거쳐 책이 됩니다. 무엇이 내 콘텐츠가 될지 고민하세요. 가장 손쉽고 가까운데서 찾으십시오. 내 가족, 내 친구 뿐만 아니라 아까 본 아트 북처럼 '자두를 맛있게 먹는 법'도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난 그에게서 책에 관한 이야기와 부추김을 들었지만 내게는 그의 말이 "인간에 대한 예의, 사랑"을 피력하는 말로 들렸다. "사람은 그 누구라도 소중합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귀한 이야기, 당신 시간의 기록을 책으로 남기세요."라고. 감히 상상하기 힘든 열정과 노력으로 책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살아온 '행복한 바보'를 보며 모처럼 만난 멋진 인간에 대한 감흥으로 마음이 내내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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