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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아이러니의 연쇄 끝에 빛나는 인간적 연대
쓰리 빌보드
김경태(2018-05-03 11:23:46)



마을 외곽의 인적 드문 도로에 수십년 간 방치되어 있던 대형 광고판 세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7개월 전에 끔찍한 강간 살인으로 딸을 잃은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아직까지 범인의 단서조차 잡지 못한 경찰을 비난하는 도발적인 문구들을 그 광고판에 새긴다. "내 딸은 강간당해 죽었는데,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광고판은 그 조용한 작은 마을에 논란의 불씨가 된다. 주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윌러비에 대한 공격은 밀드레드를 공공의 적으러 돌려세운다. 게다가 그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기에 동정 여론과도 맞서야 한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 끝까지 경찰을 몰아붙인다. 특히 밀드레드는 평소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무능한 경찰관 '딕슨(샘 록웰)'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다.


결국 윌러비는 더 이상 가족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살을 한다. 평소 그를 따르던 딕슨은 큰 충격을 받고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슬퍼한다. 밀드레드의 광고판이 그 죽음을 재촉했다고 믿은 딕슨은 애꿎은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면서 경찰직을 잃는다. 그런데 윌러비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계기로 그는 변한다. 윌러비는 딕슨이 훌륭한 경찰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여준다. 경찰의 중요한 자질로 사랑을 꼽으며 딕슨에게는 그것이 부족할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을 그만 둔 그제야 경찰의 역할에 대해 깊이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경찰서는 불길에 휩싸인다. 마치 진짜 아이러니는 지금이라고 이야기하듯이 말이다.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높여 있던 강간 사건 기록을 필사적으로 지키며 달라진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는 온 몸에 깊은 화상을 입는다.


딕슨은 우연히, 술집에서 누군가 유사한 범행을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을 엿듣게 된다. 그러나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건 당시에 참전 군인으로 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딕슨은 그를 잡으러 나서고자 한다. 비록 이 나라에서는 아닐지라도 그 역시 강간을 저질렀다고 믿을 만큼 그 고백은 생생했기 때문이다. 딕슨의 결심은 경찰로서의 의무적 실천을 초과한 윤리적 결단이다. 그동안 결핍되어 있던 의무감을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과잉된 직업 윤리로 범죄자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밀드레드는 달라진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들은 총을 챙겨 함께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이로써 범죄 해결을 위한 여정은 사적 복수를 넘어 강간범 일반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처벌은 불법일 뿐만 아니라 확실한 물증도 없다. 그 결과, 경찰로서 해서는 안 될 편견어린 불법을 자행했던 그는 인간으로서의 윤리적 고뇌 끝에 또 다른 불법을 이행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 그에 자극받은 밀드레드는 딸을 죽인 범인과 수사를 소홀히 한 경찰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일관된 분노로부터 벗어난다. 딕슨이 경찰의 타성에 젖은 역할에서 자유로워지고 밀드레드가 피해자 가족의 고립된 역할에서 미끄러졌을 때, 비로소 그들은 화해한다. 그것은 불합리한 세상과 맞서기 위한 인간적 연대의 시발점이다. 차 안에서 그들은 한 발짝 물러나 그 성급한 처벌 행위에 대한 망설임을 드러낸다. 그들의 의지가 희미해지는 순간, 그 연대는 목표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빛난다.


영화는 딸을 죽인 범인도 찾지 못하고, 그를 대신해 처벌하려 했던 이도 만나지 않는 채 끌을 맺는다. 그러나 범인 체포의 실패라는 결말은 더 이상 경찰의 무능에 대해 비난을 환기시키지 않는다. 영화는 경찰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범인을 잡는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 다른 말로 연대라고 역설한다. 아마도 그것은 앞서 윌러비가 딕슨에게 강조했던 사랑이 촉발시키는 정동적 능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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