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호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9.11 | 기획 [세상을 보다 재밌게 만드는 그들, 문화기획자]
기획자들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활동하는 그날까지
이동혁(2019-11-15 10:45:57)



사람마다 작은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문화기획자의 역할이 문화의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란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들의 활동 덕분에 일상에서 시민들이 누리는 문화 향유의 기회는 더욱 확대됐고, 점차 나은 삶에 대한 고민을 시민들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됐다. 하지만 그런 의미 있는 활동들에도 불구하고 문화기획자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은 여전히 박하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들의 고민은 상대적으로 기회와 재원이 적은 지역의 문제와도 엮여 그 열악함이 더욱 부각된다.
“문화기획을 계속 하기에는 생계가 어려워요."
전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청년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최서연 래고 대표는 “보조금 사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정작 그 보조금 사업을 통해서는 기획자 인건비도 받을 수 없다"며, “기획 일을 지속하기 위해 알바까지 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 지역 문화기획자들의 생계 유지 기반은 너무나도 부실하다. 실제로 문화기획을 통한 수익 구조는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이런 상황에 실망해 떠나는 문화기획자들도 적지 않다. 최 대표처럼 기획 일을 지속하기 위해 알바를 뛰는 본말전도의 상황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현재 지역 문화 생태계는 문화라는 멋진 꼬리표를 단 채 가난과 빈곤, 불안정이라는 희생을 떠안고 성장하고 있다. 현장의 인력 수요는 늘었음에도 보조금의 성격상 인건비 책정이 어렵다는 점, 기획자 대부분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경력을 증빙하기 어렵단 점 등을 들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주 삼천문화의집에서 불거진 국가보조금 횡령 사건도 기획자 인건비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이슈로 바라볼 수 있다. 보조금을 횡령한 것이니 명백한 위법이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인건비 책정이 어려운 보조금 사업의 성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의견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보조금이 문화기획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재와 같이 사용에 제약이 있는 상황에선 문화기획자들은 여전히 그 수고를 보답받기 어렵다. 나아가 제2의 삼천문화의집 사건이 재발할 수도 있는 이상 보조금 사용처 기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그밖에도 무형의 자산인 문화기획에 학술용역비나 강사료와 같은 지급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아이디어 제공이라는, 기존에 없던 형식의 노동에 정확한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점은 인정하나 그렇다고 해서 기획의 가치까지 평가절하되는 것은 기획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단 한 번이라도 선정되지 못한 기획에 대해 값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상식적으로 시제품 제작을 의뢰받아도 그 원가 정도는 받는 법이다. 하지만 얼만큼의 수고를 들였어도 선정되지 못한 기획은 거기서 끝이다. 기획을 대하는 우리의, 그리고 그들의 태도가 이미 그렇게 굳어졌다는 말이다.
지난 9월 괜찮아마을 기획안 도용 사건도 단지 목포에만 한정된 이야기로 끝낼 것이 아니다. 김지훈 문화통신사 대표는 “올해 초 꽃장 이름 도용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업계획서, 하나 못해 이름 하나에도 기획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기는데, 그것에 대한 존중이나 예우를 찾아 볼 수 없다"며, “레드트러블이란 팀이 고군산도 캐릭터를 개발했을 때도 아무 양해나 설명 없이 캐릭터를 무단 사용하는 일이 있었다. 영역은 다르지만, 그만큼 창조적 작품(계획서)을 대하는 인식이 부족하단 것을 보여 주는 예"라고 말했다.
기획자들의 삶을 어렵게 하는 이런 고충들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낸다면, 그 뜻에 동참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뻔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때까지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