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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연재 [SNS 속 세상]
특화된 팬덤에 주목하라
트위치(twitch)
오민정(2019-11-15 11:03:36)

지난해 이맘때쯤인가, 친구 녀석이 못 보던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서로 SNS 게시물을 통해 근황을 확인할 수 있기에, 나는 쉽게 새로 산 옷에 대한 그의 자랑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막상 패션에 문외한인 그가 이상한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으스대는 모습을 보자니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상한 캐릭터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는 것이다. '아.. 진짜 저걸 어디서 봤는데...'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내가 커피숍에서 '우왁굿!'이라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 때, 그는 비로소 '역시 넌 알아볼 줄 알았어'라는 듯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자랑스러워한 티셔츠는 '우왁굳'이라는 게임스트리머와 휠라코리아가 콜라보레이션 한 한정판이었다. 실제로 휠라코리아가 지난해 '우왁굳'과 진행한 콜라보레이션은 시즌 1,2 모두 팬들의 밤샘 대기와 당일 완판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우왁굳'이 도대체 누구길래 대형 패션 브랜드와 한정판 상품을 만들어내고 또 사람들이 그걸 사려고 밤샘 대기를 하는 것일까?
'우왁굳'은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 '트위치(t-witch)'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게임방송 '스트리머(Steamer)'다. 우리에게 아직 생소할 수 있는 '트위치'는 글로벌 실시간 방송 플랫폼 서비스로, '스트리머'로 불리는 게이머들이 자신이 게임하는 영상을 생중계하고 시청자들은 게임 영상을 보면서 채팅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만약 이러한 내용이 잘 연상되지 않는다면, M사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트위치'는 처음 '저스틴 TV'로 출발하여 오직 게임 분야 방송만 하다가 2014년 아마존에 인수된 뒤 음악 방송, 리얼리티 방송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됐다.


꿋꿋하게 즐기는 '팬덤'
트위치의 경쟁력은 단연 '특화전략'에 있다. 누구나 한 가지쯤은 좋아할 영상을 제공하는 대신, 트위치는 게임영상만 소비하는 특화된 팬덤을 동영상 플랫폼의 주요 고객으로 설정했다. 물론, 현재 유튜브나 여타 동영상 플랫폼에서도 '게임' 콘텐츠는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영상 플랫폼에서 '게임'이 영화, 음악처럼 다양한 장르들과 같은 층위의 카테고리라면, '트위치'는 이를 특화시킴으로써 게임방송만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계층의 욕구에 가장 충실한 구조를 만들어 냈다.


게다가 게임은 현대사회에서 특정 집단의 취향을 넘어 젊은 세대에게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어릴 적 온라인 게임을 접하고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는 '야구'나 '축구' 중계를 보는 것처럼 게임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이러한 취미를 '오타쿠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러한 구별이 플랫폼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높여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트위치'의 시청자들은 그들 집단을 스스로 '트수'라고 칭하는데, 이는 '트위치 백수'의 줄임말로 게임을 시간 낭비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게임을 즐긴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기도 하다.


실시간 시청과 채팅, 참여와 소통의 특권
'트위치'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특징은 바로 '실시간'이다. 동영상 플랫폼 중 전체 영상 시청 시간에서는 단연 '유튜브'가 앞서지만, 실제로 '실시간' 방송 시청 시간에서는 '트위치'가 독보적이다. 그런데 무엇이 시청자들을 '실시간'으로 방송에 참여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아닌 '채팅'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방송에 접속하는 것도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인데, 거기다가 채팅까지 참여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팬이 아니고서야 정말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른바 '트수'들에게 '실시간 채팅'은 오히려 그들만의 규칙과 '밈'을 이해하는 사람들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에 참여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특권으로 인식된다.


특화된 팬덤의 시대, 게임처럼 해석하고 활용하는 문화
이러한 '트위치'의 성공은 우리에게 바야흐로 '특화된 팬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시사한다. '트위치'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트위치' 시청자들은 이미 '트위치'를 유튜브나 여타 다른 동영상 플랫폼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트위치'를 통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적극적으로 방송에 참여하고, 그들의 문화를 확산하는 적극적 팬덤을 형성했다. 또한 이는 우리가 '팬덤'이라는 현상에 대해 기존처럼 '팬덤의 규모'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방송에 참여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팬덤의 힘과 그들의 문화에 주목해야 함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휠라뿐 아니라 포르쉐가 얼마 전 신차 홍보를 위해 '트위치'와 협업하여 인터랙티브 게임을 만든 것, 그리고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트위터 외에 '트위치' 계정을 만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는 게임 이외의 콘텐츠도 '트위치' 방식으로 즐기는, 다른 콘텐츠도 게임처럼 해석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다양한 '팬덤'의 문화에 주목하고 재해석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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