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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 | 칼럼·시평 [문화칼럼]
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 넷플릭스로 날개를 달다
박욱주(2019-02-25 14:24:39)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기원
최근 한국사회 문화조류 전반을 살펴보면 차별과 혐오에 대한 경계심이 전에 없는 수준으로 고조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정서의 직접적인 발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PC운동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미국의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만나게 된다.
통상적으로 PC 운동의 기원은 유럽에서는 68혁명, 미국에서는 이 68혁명에 발맞춰 전개된 반전․인권운동 및 히피문화의 유행으로 지목된다. 1968년 프랑스 파리 근교 낭테르 대학에서 시작된 68혁명 지도부는 “정치적 올바름”을 그들의 주된 혁명정신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원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는 중국 공산화 지도자 마오 쩌둥이 1930년대 중국에서 공산주의 강령을 선포하며 사용한 용어였다. 자본가와 지주들의 억압을 분쇄하고 모든 인민이 차별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의 의미상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마오 쩌둥이 주도했던 문화대혁명에 고무되었던 68혁명 지도부는 이 정치적 올바름의 정신을 주된 강령삼아 백인․기독교 중심 서구 전통문화의 혁명적 파괴와 무조건적 평등 정착을 부르짖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PC 운동의 진정한 기원이라 할 수 있다.
68혁명과 그 여파로 일어난 전 세계의 문화혁명은 당시로서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시기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대학생들이 각국의 사회지도층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68혁명의 이상이 점차 주류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보수우익적 성향에 반대해 PC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내건 기치는 인종차별, 성차별, 종족차별 반대였다. 흑인인권에 대해서만 아니라 남미 라틴계 이주민, 동양계 이주민에 대한 정치적․제도적 차별을 지탄했고, 여성차별 뿐만 아니라 성적소수자, 이른바 LGBT에 대한 차별반대 운동이 본격화되었으며, 자연환경 보호와 동물복지에 대한 목소리 역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PC 운동 주창자들은 이른바 앵글로 색슨, 백인, 남성,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는 미국 주류인종 및 그들의 서구중심적 문화사상을 우월감에 빠진 독단적인 문화로 성격규정했다.
PC 운동을 주도하던 이들이 표방한 정신은 자유, 평등, 그리고 상대성이었다. 다수와 주류만 아니라 소수와 비주류도 존중받는 사회, 소수자도 평등하게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사회가 이들의 모토였다. 그러나 PC 운동은 일각에서는 큰 환영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극렬한 비판에 직면했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고 상대성을 수긍한다면서 정작 그 운동을 실천해가는 방향은 교조적이고 강압적이었기 때문이다. PC 운동 주도자들은 자신들이 정치적 최고선이라 믿었고, 그들의 이념에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사회계층과 공동체를 극렬한 악의 세력으로 매도하는 선동적 폭력성을 드러냈다. 즉, 말과 행동이 명백히 모순적이었기에 의식있는 이들의 비판에 직면하였던 것이다.


PC운동과 넷플릭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PC운동의 영향력은 증대되어 갔으며, 대중문화 역시 점진적으로 PC 운동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말부터 온라인 세상이 펼쳐지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2007년 최초로 아이폰이 시중에 판매되며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콘텐츠 유통채널이 다변화되고 그 무게중심이 온라인 및 모바일 회선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영상기기와 더불어 스마트폰의 촬영성능 또한 급격히 발전되면서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도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이런 시대적 조류 속에서 PC 운동의 이상을 추종하던 비주류 콘텐츠 제작자들과 감독, 배우들을 포섭했고, 그들의 작품이 온라인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장악하도록 길을 열어줌으로써 대중문화계 PC 운동 전파의 선봉장을 자처했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기존 미디어 업계의 강자들이 이들의 문화적 이상을 거꾸로 모방하고 뒤따라가기까지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현재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 및 드라마 대부분은 PC 운동의 이상을 반영하는 등장인물과 서사를 선보이는 데 주력한다.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 게이․레즈비언 등의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뇌성마비로 고통받는 신체장애인, 자폐증에 걸린 정신장애인, 소수민족, 비기독교 무신론자로 대표되는 소수자의 영웅들이 주인공 및 중요인물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런 행태가 미국 대중문화계의 지배적 관행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넷플릭스가 담당한 역할의 비중을 무시할 수가 없다.
넷플릭스는 어떻게 해서 PC운동 전파의 주역이 되었는가? 초창기 넷플릭스(1997년 창사)는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아니라 회원들에게 영화 DVD 디스크를 우편으로 대여하는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였다. 당시 넷플릭스의 최대 경쟁자는 점포 위주로 DVD 대여사업을 수행하던 블록버스터(Blockbuster, 2013년 기업청산)였다. 선두주자인 블록버스터와 경쟁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독특한 방식의 소비자 분석 및 영화추천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을 활용해 회원들의 영화 취향을 일일이 기록하고 분석했으며, 회원들이 영화 선정을 귀찮아할 경우 자체적으로 추천작을 선정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회원들은 하루가 멀다 않고 쏟아지는 영화, 드라마 콘텐츠에 혼란을 느꼈고,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일일이 찾아 추천해주는 넷플릭스의 추천서비스에 매력을 느꼈다. 이로써 넷플릭스는 기존 대규모 영화사들의 작품 소개에 치중하던 추천방식에서 탈피, 소자본 다양성 영화 및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선댄스 영화제같이 소자본으로 제작된 인디영화나 독립영화 축제에 주목했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홍보력이 부족한, 그러나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들을 발굴해 추천하고 이들의 DVD를 발송했다.
넷플릭스가 사업영역을 스트리밍으로 이전한 후에도 이 추천 서비스의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면서 인디영화나 독립영화 제작자들의 흥행 창구로 애용되기 시작했고, 넷플릭스 역시 이들의 제작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안정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받아 왔다. 영화계 비주류에 속해 있던 이들이 넷플릭스의 지원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의 주류로 등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드라마 업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인디영화 및 독립영화계의 현실은 성향상 큰 차이가 없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띤 소위 '의식있는' 콘텐츠 제작자, 감독,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실존철학,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계보를 잇는 인간중심적 다원주의 사상을 추종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PC 운동, 즉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작품을 제작하는 하나의 주된 동기이자 지침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넷플릭스의 사업방식은 현재 후발주자들의 교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뒤를 이어 현재 유투브 프리미엄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 배포 중이고, 아마존 프라임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디즈니 플러스가 서비스를 개시한다. 향후 콘텐츠 유통경로가 기존 셋톱박스 기반 채널들에서 온라인과 모바일 스트리밍으로 이동할 것을 주요 미디어 기업들이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PC 운동이 미디어 콘텐츠 제작의 주요 이데올로기로 등극할 것이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내 방송․미디어 업계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현재도 여러 방면으로 차별 철폐, 다양성 수긍, 소수자 보호를 옹호하는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는 중이다.
미디어 콘텐츠와 대중문화를 통한 PC 운동의 급속한 확산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것인지 묻는다면 현재로서는 확답하기 어렵다. 무분별한 차별과 혐오의 방지, 다름과 차이에 대한 수긍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다. 그러나 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PC 운동이 보이는 교조적이고 독단적인 태도까지 수긍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다만 문화적 동일성과 차이, 전통과 혁신 간 조화를 위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고민의 무게감이 날로 커져간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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