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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 | 기획 [낭독의 힘, 낭독의 재발견]
우리가 몰랐던 낭독의 비밀
온전한 책 읽기는 낭독에서 시작된다
(2019-03-22 16:33:35)

낭독이 은근한 인기를 끈 지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낭독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그동안 쑥스럽다고, 어색하다고, 창피하다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가면서 낭독을 멀리해 왔다면, 이번 기획을 통해 용기를 내보자. 반드시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할 필요는 없다. 먼저 스스로 소리 내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묵독에선 느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당신의 감각을 새롭게 깨울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살피다
낭독이란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음독의 한 종류다.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그냥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과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과 감흥을 준다. 특히, 눈만으로 글을 훑는 묵독보다 눈과 입, 귀를 동시에 사용하는 낭독은 뇌를 광범위하게 활성화시켜 읽은 내용을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긴다. 시각과 청각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로는 '사운드 리딩(sound read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올바른 낭독은 정확한 발음과 끊어 읽기가 핵심이다. 단어들의 발음을 정확하게 소리 내어 읽게 되면 엉키는 발음을 고칠 수 있다. 단어 하나하나를 제대로 읽어 그 의미까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온전한 책읽기가 가능해진다. 또, 끊어 읽기를 통해 호흡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적절한 읽기 속도를 유지하는 법을 체득할 수 있다. 이러한 읽기 방식은 내용의 친숙함을 더하고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내면화시킬 수 있어 글에 담긴 정서와 흥취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영어로는 조심스러운 읽기란 뜻으로 '케어풀 리딩(careful reading)'이라 부른다.
낭독을 비슷한 어감의 '낭송'과 혼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한자로 의미를 풀어 보면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낭독의 독은 '읽을 독(讀)'을 사용하고, 낭송에 쓰이는 한자는 '외울 송(誦)'이다.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낭독, 외워서 읊으면 낭송이 되는 것이다. 눈에 띄는 차이는 아니지만, 낭독회와 낭송회가 주변에서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 요즘 모임의 성격을 보다 정확하게 알고 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글쓰기 문법부터 기억력 향상까지 다재다능한 낭독
낭독은 글의 어법이나 문법을 점검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글을 읽다가 문장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건 분명 문법이 잘못됐을 확률이 크다. 운율이 살아 있어 읽기가 편하다면, 그것은 잘 쓰여진 글이다.
낭독은 주의력을 높일 뿐 아니라 읽다가 빠트릴 수 있는 문장도 지나치지 않고 기억하게 한다. 30년간 음악 교육과 학습 관계 등을 연구해 온 청각 신경학자 니나 크라우스는 소리를 해석하는 능력이 좋을수록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청각 능력이 독서 능력, 외국어 능력, 언어 능력, 나아가 인지 능력과도 이어진다는 뜻이다. 아동 독서 전문가 매리언 울프 역시 청각에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독서 능력에서 훨씬 많은 문제를 보였다고 말했으며, 시카고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리듬을 잘 따라가는 능력과 독서 능력 간에 의미 있는 상관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어렸을 때 소리 내어 외운 구구단을 우리가 평생 잊지 않는 건 바로 이러한 낭독 덕분이다.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 구절의 리듬이나 템포가 몸에 스며들어 함께 각인되기 때문에 좀 더 복합적인 암기가 가능하다.
낭독의 뛰어난 점은 비단 독서 능력 향상이나 암기만이 아니다. '메타 인지' 개념과 함께 학습에서도 큰 효과를 보인다. 메타 인지란, 인지 위에 존재하는 인지란 뜻으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특히, 학습을 하다 보면,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음에도 어물쩍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낭독을 해 보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구별이 용이해지니 모르는 내용은 더욱 정확하게 학습할 수 있고, 아는 내용은 더욱 짜임새 있게 재구성돼 머릿속에 저장된다.


바른 낭독법
잘못된 낭독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낭독자는 텍스트가 활자로 찍힌 책을 보고 있지만, 청독자는 오로지 소리로 전달된 신호로써 내용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소리 신호가 부실하면 듣는 사람한테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낭독은 무의미하고 피차 시간 낭비일 따름이다.
여러 낭독 모임에서는 더 정확하고 효과적인 낭독을 위해 낭독 독서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편한 자세를 취하되 낭독물이 얼굴을 가리거나 목소리를 막지 않도록 허리를 꼿꼿이 펴야 한다. 그리고 낭독을 시작하면 큰 소리로 읽는다. 자신이 낸 소리가 청중이나 자신이 듣기에 또박또박 잘 들릴 정도로 읽어야 도움이 된다. 또한, 적당한 속도로 읽어야 한다. 지나치게 빨리 읽으면 읽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내용을 놓치게 되고, 또 너무 느리게 읽으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지루해져 쉽게 흥미를 잃게 된다. 마지막으로 끊어 읽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 운율과 글의 구절에 따라 끊어 읽어야 할 곳이 따로 있기 때문에 쉼표에서는 쉬고, 마침표에서는 잠시 쉬었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 강세를 넣거나 완급을 조절하며 읽는 것도 좋다. 말하는 이의 감정이 풍부하게 담길 뿐 아니라 듣는 이에게도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낭독은 말하듯 읽기다. 맛을 내는 비결은 많지만, 자연스러움이 빠지면 오히려 듣기 불편할 수 있다.

글의 성격에 따라 묵독으로 얼른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내용에 공감하고, 그 안에서 음미해야 하는 글들까지 당연하게 묵독하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래 가사를 묵독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락에 맞춰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이유는 가사와 곡조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낭독 역시 똑같은 이유에서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다.
낭독은 읽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훌륭한 독서법이다. 같은 글을 놓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듣는다. 그때 읽는 이가 글에서 얻는 것도 있겠지만, 듣는 이의 반응을 통해 새롭게 얻게 되는 것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듣는 이 역시 읽는 이가 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느낌에 참여하면서 혼자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낭독의 참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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