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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 특집 [오래된 오늘]
바늘과 실의 예술, 마음을 향기롭게 물들이다
자수 이야기
(2019-04-16 12:35:57)


등잔불 아래서 밤 깊은 줄 모르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던 옛 아낙들의 섬세한 여심은 단연코 예술의 경지라 부를만했다. 그 꼼꼼한 솜씨 앞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이 배어 나온 것은 그 안에 새겨진 여인들의 깊은 한과 아득한 세월의 흔적을 짐작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여인들이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로 전해지던 전통자수. 바늘을 쥔 아낙들은 모두가 한 명의 시인이요, 화가였다. 가사는 물론 농사며 길쌈까지 한평생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고단한 여인들의 삶 속에서 자수는 그들의 가슴에 박힌 한과 그리움, 그리고 행복을 표현하는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적어도 수를 놓는 그 시간만큼은 일상의 무거운 노동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차분한 행복에 젖어 들었으리라.
우리나라 자수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 크고 작은 뼈바늘, 돌바늘, 바늘집 등이 출토되고 있어 이미 그 당시부터 바느질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비단에 수를 놓아 옷을 지어 입었다는 삼국지 부여전의 기록을 통해서도 자수의 존재가 확인되는데, 이처럼 자수는 지극히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예전만큼 바느질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전통자수의 매력에 오롯이 빠져 세월을 새기고 있는 이들이 있다. 고 강소애 자수장(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8호 자수장)에게 전통자수를 사사받은 '한수회' 회원들이다. 지난 3월 4일부터 21일까지 '갤러리 숨'에서 '사랑의 인사'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진행한 김윤주, 문정민, 반현숙, 유성주, 윤현숙, 윤혜숙, 이경은, 전경례, 최미애 등 아홉 명의 공예가들은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우리 전통자수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뽐내며 이른 봄 인사를 건넸다.
그 옛날 전통자수는 손길이 닿는 사소한 물품부터 생활 관습, 의례에 필요한 물품들에 이르기까지 의미와 정성을 가득 담아 격조를 높이고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왔다. 주머니 하나를 만듦에 있어서도 꽃으로 수를 놓고 매듭으로 장식을 했던 우리네 여인들의 멋과 아름다움을 여전히 지켜 가고 있는 한수회 회원들의 마음이 그래서 더 반갑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 했을까. 한 올, 한 올 수를 놓다 어떤 때는 바늘에 손을 찔리기도 했으리라. 그렇기에 정성으로 완성된 자수에는 수놓은 이들의 체온과 숨결이 담긴다. 그 자태가 참으로 곱디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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