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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 | 기획 [녹시율을 아십니까]
삭막한 도시에서 만나요, 숨쉬는 초목 예찬
이동혁, 김하람(2019-09-17 11:09:29)



회색 콘트리트 숲에 둘러싸인 일상이 이제는 더 익숙하지만, 이따금씩 초록의 싱그러움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특히, 변변찮은 놀이터도 없던 시절, 주변의 초목을 벗 삼아 녹색 들판을 뛰놀던 세대들에겐 그런 그리움이 더욱 간절할 것이다. 키 큰 대추나무 가지 위에 올라 설익은 열매를 따 먹던 기억, 소꿉동무의 목덜미를 몰래 간지럽히던 강아지풀에 대한 추억, 그땐 주변의 모든 자연이 놀이터고 장난감이었다.
그 시절엔 몰랐다. 설마 우리 일상에서 초록을 이토록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누군들 예상이나 했을까. 있는 것이 당연했고, 그래서 그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늘 멀리 있는 숲이 그리운 도시인들에게 당장 주변에서 함께 가꾸고 만날 수 있는 초록을 제안한다. 무채색 도시 풍경에 입혀진 초록의 산뜻함, 녹색 숨결이 일상에 더해진다.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녹색커튼
칙칙한 회색 담벼락을 온통 수놓은 초록의 향연, 무심히 길을 걷다가도 초록 덩굴이 만든 시원한 풍경에 저절로 걸음이 멈춘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서성이던 고양이도 무성한 덩굴 벽 한편에서 잠시 지친 몸을 뉘었다 간다.
회색 일변도의 도시에서 덩굴 식물이 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은 참으로 억척스럽고 서정적이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경외감이 드는 한편, 보기에도 싱그러운 초록빛이 심리적 안정감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생명력이 강한 덩굴 식물은 자동차의 매연에도 끄떡없어 도시 미관을 장식하는 데 아주 그만이다.
이처럼 덩굴 식물을 이용해 건물 외벽을 초록으로 꾸미는 '녹색커튼'은 에너지 절약을 위한 친환경 디자인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덩굴 식물의 잎이 무성해지면 햇볕을 차단해 내부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생기는데, 실제 실험에서도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이가 무려 5℃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처럼 얇은 식물의 이파리지만, 강렬한 무더위 앞에선 튼튼하게 쌓아 올린 담벼락보다도, 육중한 강철 문보다도 훨씬 힘이 세다.
녹색커튼을 위해 준비할 것은 화분과 덩굴 식물 모종, 덩굴 식물이 타고 올라갈 줄이 전부다. 우선 녹색커튼을 설치할 벽면을 결정해야 하는데, 한낮에 햇볕이 강하게 들어오는 방향을 찾으면 된다. 외벽 바깥쪽에 화분을 일렬로 배치하고, 이때 틈이 생기지 않도록 화분과 화분 사이의 거리를 좁혀 놓으면 덩굴 식물이 자랐을 때 더욱 촘촘한 커튼이 만들어진다. 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외벽과 화분 사이에 간격을 두는 것도 좋은데, 녹색커튼 아래 그늘이 생겨 휴식하기 좋은 장소가 생기기 때문이다. 덩굴 식물이 높이 자라려면 영양분이 많이 필요하므로 깊이가 충분한 화분을 준비하고 흙과 비료도 넉넉히 넣어 준다. 그 다음엔 덩굴 식물이 자라서 제대로 된 모양의 커튼이 될 수 있도록 붙잡아 줄 줄만 설치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덩굴 식물의 종류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지만, 가급적 잎이 크고 빨리 자라는 품종을 고르는 것이 좋다. 잎이 줄 끝까지 무성하게 자라야 커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매가 맺힌 뒤 더 이상 새 잎이 나지 않는 품종은 피하는 것이 좋고, 겨울에는 건물 내부로 햇볕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철거가 용이한 1년생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삭막한 도심 속 청량제 녹색커튼. 남들이 가꿔 놓은 덩굴 벽을 그냥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시도해 보면 어떨까. 녹색 덩굴이 자아내는 고운 문양이 그 어떤 화가도 흉내내지 못할 만큼 독특하고 아름답다.


하늘과 가까운 초록 낙원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개발은 우리 주변의 푸르른 초목도 함께 앗아가 버렸다. 초록이 귀해진 현대 도시에서 공원이나 하천 산책로 등 녹화 가능한 자연 지반은 이미 대부분 녹화가 진행됐고, 이제는 도시 녹화 최후의 수단으로 건물 자체를 녹화시키는 방법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건물 옥상은 일조량이 양호하여 식물을 키우기 유리하고, 입주자가 접근하기에도 편리해 도시 녹화를 위한 대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옥상정원'은 도시인들의 녹화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주거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가꾸는 방법으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단 기존 주택가에서 이뤄지던 옥상 텃밭을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확장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옥상정원은 빗물을 일정 기간 토양과 식물에 머무르게 하여 홍수와 같이 불투수면(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면)이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완화시켜 주고, 실내 냉난방 비용 등을 줄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능력을 높여 준다. 먹거리 생산, 빗물 활용, 에너지 보존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진 것.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녹화를 통해 다양한 인간 활동이 쾌적한 환경에서 이뤄지도록 한다는 점이다.
사무용 건물에서는 옥상정원이 직장인들의 휴식과 명상, 담소를 위한 공간으로 이용된다. 여기에는 녹화와 함께 벤치와 파고라, 경우에 따라서는 가벼운 운동 기구도 배치할 수 있다. 옥상은 주변 건물 그림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자연히 밝은 공간이 조성되며, 무엇보다도 시야가 개방돼 주변 전경을 막힘이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저층부 옥상을 녹화하면 인근 고층 거주자들이 내려다보며 녹색을 즐길 수 있어 옥상 바깥의 경치를 빌려오는 차경 효과도 최대한 도입할 수 있다.
상업용 대형 건물의 경우는 옥상을 녹화하고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여 고객들을 위한 야외 복합문화공간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백화점은 많은 고객을 동시에 수용하지만 상품진열을 주로 하는 건물의 특성상 오픈 스페이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넓은 옥상을 녹화하여 고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도모할 수 있다.
도시에서 녹지를 확대할 수 있는 최후의 대상지인 옥상에 대한 녹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친환경 도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과제다. 녹시율 높은 도시는 도시인의 녹화 본능에 부응하며 자연성의 향상, 도시인의 정서 함양 등을 통해 녹색 도시를 달성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팍팍한 도시 속 쉼터, 도시공원
시야 가득 펼쳐진 녹색, 하늘은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선명한 파란색이다. 산책을 나온 노부부와 배드민턴 공을 주고받는 연인, 돗자리를 깔고 앉아 더운 땀을 식히는 가족 등 주말 오후 정겨운 풍경이 이어진다. 우리 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공원 풍경이다.
공원은 원래 이런 곳이다.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거나 뛰어놀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현대 도시에서 공원은 자연을 가둬 둔 곳이지만, 최소한 그 안에서는 도시의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풍경에서 벗어나 자연에만 집중할 수 있다. 계절과 함께 숨쉬며 다른 사람들의 쾌활한 웃음 소리에 일상의 피로를 치유받는다.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된 산과 숲은 '도시공원'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시가지 안의 구릉지는 근린공원, 외곽의 산들은 도시자연공원이 되었다. 이렇듯 무심하게 존재하는 공원의 산자락에서 우리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을 보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기도 하고, 연한 파스텔 톤에서 짙은 녹색, 갈색으로 변해가는 나무의 이파리 색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기도 한다. 도시의 소음과 매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곳에 발을 들일 때마다 숨쉬기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 도시가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고.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70%가 산이고, 도시는 16%에 불과하지만 그 도시에 인구의 90퍼센트가 모여살고 있다. 전국 곳곳엔 아직 숲이 많지만 도시 안에 남아 있는 도시 숲은 존재 가치가 남다르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며 도시의 숨통을 틔워 주는 허파 역할부터 시민들이 한가로이 쉴 수 있는 여가 공간으로까지 그 잇점은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도시공원의 나무들은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수원을 함양하여 하천을 흐르게 하고, 빗물을 머금어 홍수를 더디게 해 준다. 이 같은 도시공원의 가치는 일상에선 체감하기 어렵지만, 도시가 한여름의 폭염이나 홍수, 이상 건조, 미세먼지 등 재난에 준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중요성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이처럼 도시공원은 우리 삶에서 빠트릴 수 없는 소중한 휴식과 치유의 장소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선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는지를 도시의 질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로 사용해 왔고, 미네아폴리스의 마크 테이턴 주지사는 "공원은 우리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가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도시공원에 비상이 걸렸다. 2020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도시공원 일몰제' 때문이다. 그동안 지방정부는 사유지인 산과 숲을 공원으로 지정만 했을 뿐 도시공원 안의 임야 등의 매입에는 소극적이었다. 2000년 도시계획시설 일몰이 도입된 이후, 실효를 막기 위해 도시공원 안의 사유지를 모두 집행하려면 적어도 수십조 원의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용해 왔던 공원 입구에 언제 '사유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을지 모를 일이다.
도시공원의 평균 연간 사용 가치는 약 27억 원, 보전 가치 약 5억 원으로 총 32억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도시공원이 영구적인 시설임을 감안하면, 주민들이 평생 향유할 수 있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하지만 도시공원 일몰을 앞둔 우리의 현실은 무척이나 암울하다. 공원이용자와 토지소유자, 양쪽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하다.


고맙다, 가로수야
가로수는 콘크리트 정글이라 불리는 현대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연 요소다. 인공화된 도시에서 대기 정화, 도시 열섬 완화, 정서 순화 등의 역할을 해내며 동시에 도시 내에 산재된 공원, 하천 등 녹지를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지방에선 일반적으로 낙엽활엽수가 가로수에 적합하다. 낙엽활엽수는 여름에는 잎이 무성하여 시원한 그늘을 주고, 겨울에는 매연에 찌들은 낙엽을 떨어뜨리고 따뜻한 햇볕을 가로에 선사하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 눈치 채기 어렵지만, 이처럼 가로수는 가로와 도시 환경을 쾌적하게 조절하는 매우 유익한 작용을 한다.
뿐만 아니라 낙엽활엽수는 도시에서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기도 하다. 앙상한 가지에서 겨울의 삭막함을 느끼고, 신록의 새순에서 봄의 따스함을 느낀다.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 그늘에서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잠시 시원함을 느껴 보기도 하고,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 든 낙엽들을 보며 풍요로움과 인생의 덧없음에 젖어보기도 한다. 이와 같이 가로수는 단순히 그늘을 만들고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을 넘어 도시인들에게 인간 자신의 실존을 깨닫게 해주고, 인간과 대자연을 연결시켜 주는 반려 식물 역할을 한다.
가로수는 도시의 녹시율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지역의 개성을 표현하고 가로의 분위기를 형성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벚나무, 노란색 단풍으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은행나무, 물가에 잘 어울리는 버드나무, 원추형으로 키가 커서 수직적 공간 형성에 용이한 메타세콰이어 등 가로수의 다양한 형태와 질감을 살려 가로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 환경에 보다 적합한 다양한 가로수 수종을 개발,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의 가로는 사실 수목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없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가로는 빗물과 공기가 토양으로 공급되기 어렵게 하고, 포장면의 복사열로 수목의 뿌리가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로수가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수목 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미기후 조절, 녹시율 제고 등 친환경 도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로수, 도시가 과밀화될수록 가로수의 역할 또한 막중해진다. 가로수는 도시라는 거대한 인공물의 부속품이 아니라 도시인의 생태적 반려자다. 그 동안 그 고마움에 감사를 표하지 못했다면, 오늘부터라도 주변의 가로수에 조금 더 눈길을 주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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