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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 특집 [오래된 오늘]
음양, 오행, 동양의 오랜 철학이 그 안에 녹아 있다
윷 이야기
이동혁(2020-01-14 16:53:47)

“자, 놀아 보자. 윷 나와라!”
윷판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데굴데굴 멍석 위를 구르는 윷가락에 가 닿는다. 놀이를 즐기는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윷가락 네 개가 배(평평한 면)를 보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온다.
“와, 윷이다!” “이야, 기가 막히네.”

윷놀이는 장소에 상관없이 윷가락과 윷판, 말만 있으면 언제든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전통놀이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한 번 윷놀이가 시작되면, 금세 참가자들 모두가 승부사가 되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쫓고 쫓기는 흥미진진한 추격극 속에서 보는 사람들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윷놀이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다. 윷놀이의 도, 개, 걸, 윷, 모는 부여 시대 지방 자치 조직인 사출도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여엔 왕 이외에도 마가, 우가, 구가, 저가 등의 족장이 각자의 땅에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윷놀이에 사용되는 건 여기에 양가를 합한 것이다.

윷놀이에는 음양, 오행 등 인간의 삶을 점치는 철학도 녹아 있다. 윷놀이가 윷, 윷판, 윷말로 구성된 것은 우리 선조들의 삼신 사상이 담겼기 때문이다. 윷가락의 뒷면과 앞면은 각각 음양을 나타내며, 도개걸윷모는 오행을 가리킨다. 또, 네 개의 윷은 ‘사상’에 속하며, 여기에 앞뒷면을 모두 합치면 팔괘가 된다.
윷판에 새겨진 점들에도 큰 의미가 담겨 있다. 바깥을 그리는 테두리는 하늘을 상징하고, 그 내부의 십자는 동서남북을 지닌 땅을 뜻한다. 큰 테두리 안에 위치한 여덟 개의 작은 점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사계절 돌아가는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윷말이 윷판을 도는 것은 천문의 28수를 달이 지나가는 것을 상징해서 만든 것이다.
이렇듯 윷놀이 안에는 삼신, 음양, 오행, 사상, 팔괘 등 다양한 동양의 철학이 다 함축돼 있다. 서로 잡고 잡히고, 흥하고 망하고, 앞서거나 뒷서거나 하는 인생사의 복잡한 이치가 놀이로서 녹아 있는 것이다.

윷과 판, 말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윷놀이지만, 특이하게도 윷가락만은 모양과 소재, 지역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게 나뉜다. 윷은 보통 박달나무, 소나무, 싸리나무, 밤나무 등으로 만드는데, 엿가락처럼 가느다란 모양이 있는가 하면, 장작처럼 두꺼운 윷, 밤알처럼 작고 동그란 윷도 있다. 또 팥으로 만든 팥윷, 콩으로 만든 콩윷 등 특이한 소재도 있는데, 일을 하다 쉬는 동안 약식으로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지역의 윷이라 하면 단연 깍쟁이윷을 빠뜨릴 수 없다. 종지에 담아 던졌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선 종지윷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길이는 3㎝ 안팎인 작은 윷을 가리킨다.

요즘은 명절에도 가족이 모여 윷놀이하는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렵다. 심지어 윷놀이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아이들도 많다. 예전에는 윷놀이를 포함해 함께 어울려 노는 재미난 놀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혼자서 노는 외톨이 놀이들이 더 많다. 정답게 둘러앉아 웃음꽃 피워 내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_글 이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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