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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 연재 [마당기행]
도시재생의 힘,도시의 오래된 미래를 보다
2020마당ㆍ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공동기획 도시문화기행 | 광주
오민정(2020-11-06 11:27:23)

마당기행 | 광주


도시재생의 힘,
도시의 오래된 미래를 보다  

글 오민정 편집위원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던 10월 셋째 주 토요일,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미뤄졌던 광주로의 도시문화기행을 떠났다. ‘한국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라는 주제로 시작한 2020년 마당의 도시문화기행도 어느덧 오늘을 포함해 세 번만의 기행만을 남기고 있었다. 얼마 전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에서 1단계로 완화되었으나 아직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은 만큼, 이번 기행도 아쉽지만 소규모로 진행됐다.

비교적 가깝고 비엔날레 등으로 익숙한 광주였기에, 이번 기행에서 어떤 것을 볼 수 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빛고을 등의 캐치프레이즈와 민주화운동과 비엔날레 등이 연상되는 도시다. 그래서인지 이런 도시의 이미지와 광주만의 색깔이 도시재생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오민정 편집위원


광주 동구, 문화예술에 기반 한 세 곳의 앵커시설
광주 동구는 과거 전남도청의 이전과 신도시 조성으로 인해 원도심 기능 쇠퇴로 인구감소와 상권 침체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14년부터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의 일환으로 세 곳의 도시재생 앵커시설을 마련했다. 앵커시설이란 도시재생지역의 지역 활성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는 시설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새롭게 조성되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만한 핵심 자족시설을 의미하는데, 쉽게 지역의 ‘거점공간’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동구에는 푸른마을공동체센터, 미로센터, 충장22라는 세 곳이 각각의 기능에 맞게 운영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운영방식도 다르다.

 

먼저 ‘푸른마을공동체센터’는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거점으로 일요일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층마다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회의실 및 강의실, 무한상상실(메이커 스페이스), 공유주방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원 등록 통해 대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유물품(행사용품, 천막, 장난감 등)까지 보관하고 있다. 사실,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내용은 크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도시마다 그들의 규모에 맞게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센터와 메이커 스페이스, 공유공간, 공유물품 등의 사례는 많다. 하지만 푸른마을공동체센터가 부러웠던 점은 이러한 시설이 한 데 모여 거점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주, 아니 전북에도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든지 메이커 스페이스, 공유주방과 같은 공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이쪽 분야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에 이런 시설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에 비해 동구의 경우에는 이러한 기능들이 집적된 앵커시설을 구축함으로써 주민들이 쉽게 이용하고 접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마을공동체센터를 나와 미로센터까지 이동하는 길은 동명동 카페거리와 예술의 거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 일대는 도시재생 선도지역사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의 부지이기도 했으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일대이기도 했다. 카페거리의 경우, 동명동이 학원가로 유명했을 때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대략 200여 개의 카페가 있으며 요즘에는 레스토랑 등으로 업종 변경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있는데 주택가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카페들이 인상적이었다. 또 특이할 만한 점이 있다면 이러한 카페거리 등과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상생협약을 맺어 주차장을 연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권이 활성화되면 고질병처럼 앓게 되는 주차난을 상생협약을 통해 민관의 주체들이 해결하려 머리를 맞대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미로센터는 2019년 11월에 개관,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시설이다.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미로센터는 원래는 미술 학원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갤러리, 공방, 창작스튜디오, 야외 행사장 등의 시설을 갖췄다. 현재 예술가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한때 표구와 갤러리들이 주를 이뤘던 거리였던 배경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미로센터는 전에 방문했던 푸른마을공동체센터가 직영으로 운영되는 것과는 달리 예술가들과의 거버넌스를 통해 운영하고 있으며, 나머지 한 곳의 앵커시설인 충장22는 민간위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충장22는 가장 최근 개관한 앵커시설로(2020년 5월) 한때 귀금속, 한복집 등이 주를 이뤘던 거리로 간장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2개의 레지던스 시설을 갖춰 작가들과 지역 상인들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사회적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같은 도시재생 앵커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인 운영형태가 아니라 목적과 기능에 맞게 운영형태를 달리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광주시민회관, 새로운 쓰임을 찾다
두 곳의 앵커시설(충장22는 안타깝게도 일정상 방문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광주 시민회관이었다. 광주 시민회관은 2021년 건립 50주년을 맞는 건물로 한때 일 년에 결혼식만 300번 이상 열렸을 정도 많은 시민들이 활용하는 공간이었지만, 건물이 노후화되면서 시민들의 이용이 줄어들었으며 다른 문화공간들이 생기면서 존폐 기로에 놓였다. 건물 철거의 위기에서 지역의 건축학과 교수들과 시민단체가 건물 보존을 위해 나서 2010년 자치단체가 리모델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에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리모델링을 통해 폐허처럼 비둘기 똥이 켜켜이 쌓여있던 공간에서 대강당 지붕을 철거하고 야외무대와 실내 소극장, 전시실, 카페 등을 갖춘 열린 공간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리모델링 이후에도 한동안 빈 공간으로 방치되었는데, 2018년 광주비엔날레의 공간 활용을 통해 공간의 가능성을 발견한 이후 2019년부터 청년창업지원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현재 광주시민회관은 ‘광주시민회관-FoRest971’라는 이름으로 19개 팀의 청년창업자들의 공동브랜드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시의 오아시스이자 시민들의 문화쉼터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현재 ㈜도시문화집단 CS가 <공유재산활용 사회실험 청년창업 지원사업>을 통해 위탁운영을 하고 있으며 청년들의 창업 지원에 있어 ‘안 망하는 사업모델’, ‘공간과 어울리는 사업모델’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메이커스, 미디어, 커뮤니티, 문화, F&B 등 다양한 분야의 팀이 운영되고 있으며 매월 협업 반상회를 통해 공동 운영의 경험치도 쌓아가고 있다. 지속적인 컨설팅과 단계별 지원 과정을 통해 33명, 19개 팀의 광주청년들이 광주의 상품과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주변과 연계한 투어 상품 개발 등 광주시민회관 및 광주공원 일대 활성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이 시작한 마을과 도시의 재생
점심 이후 방문한 곳은 펭귄마을과 양림역사문화마을이었다. 양림동 행정복지센터 뒤쪽 주변 골목 일대를 ‘펭귄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2013년 마을 빈집에 화재가 발생, 방치되면서 마을의 미관을 해치자 주민들이 전소된 집터를 치우고 텃밭을 가꾸며 꾸미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다. 펭귄마을이라는 이름은 마을에 거주하는 한 주민의 걷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주민 주도의 정크아트 프로젝트 진행을 통해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기발한 정크아트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민 주도로 진행된 마을의 재생이 눈에 띄는 부분이었는데, 펭귄마을 김동균 촌장님과 김수삼 주민협의체위원의 열정적인 설명과 안내를 통해서도 펭귄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적극적인 참여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양림역사문화마을이었다. 양림동은 버드나무, 또는 양림산에서 시작된 산 능선이 광주천에 닿는 모습을 표현한 ‘버드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04년 유진벨, 오웬 등 선교사들이 모여 교회와 학교, 병원을 개설해 아직까지도 서양식 건물과 선교문화 유적지 등이 많이 남아있다. 당시 선교사들은 전주와 함께 전라도를 대표했던 나주에 정착하려다가 유림의 반대로 인해 광주에 터를 잡게 됐다고 한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니 이곳이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 일대는 호랑가시나무 노거수(수령 410년)가 유명하기도 한데 선교사 사옥을 활용하여 창작소와 게스트하우스, 문화시설 등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교류가 있었던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이러한 지역적 자산을 활용하여 작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톡톡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문득 재생의 특별함에 대해 생각했다. 도시의 확장과 핵심시설들의 이동으로 인한 원도심 쇠퇴, 인구 유출 등 도시재생의 배경은 모두 같다. 차이가 있다면 도시의, 공간에 따른 규모와 정도의 차이랄까. 그런 배경을 가지고 다시 쓰임의 해법을 찾는 일은 때론 특별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익숙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도시재생’이 아닌 ‘도시재생’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민들의 참여다. 단순히 쇠락한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간의 쓰임을 바꾸는 일, 그것이 바로 단순히 정량적 숫자의 활성화와 콘텐츠의 독창성보다 우리가 도시재생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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