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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 연재 [여행유감]
아이들과 마음을 여는 여행길
러시아
장미희(2020-02-10 16:39:28)




2000년 12월 나의 첫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으로 간 태국이었다.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은 광주에서 제주도를 갈 때 탔던 두어 번이 고작이었고, 더군다나 남편은 첫 비행이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우리는 어느덧 비행기의 중앙 좌석에 앉아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남편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한참 동안 내다보다 제자리로 돌아온 남편에게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았는지 물어 보니 원래 자리 주인이었던 남자아이에게 잠깐 자리를 바꿔 달라고 했단다. 우리는 이제 첫 해외여행인데 그 초등학생은 여러 번 다녔다며 자리를 바꿔 주었다고 한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한 나에게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용기’였고 ‘부러움’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아들, 딸과 함께 네 식구가 되었고, 그로부터 14년이 되던 해에 모임을 함께하는 언니의 주선으로 온 가족이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필리핀이었다. 뜨거운 6월 마닐라공항의 후끈한 기운이 우리를 맞이했다. 미디어에서 많이 보았던 동남아의 모습과는 달리 도로는 깨끗했고 빌딩도 높았지만, 한 공간에 대비되어 보이는 빈민가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안타까웠다.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강제철거되거나 판자촌을 전부 가렸던 광고판이 생각났다. 삶은 늘 누군가의 희생이 함께 공존하는 것인가?
한참 일행을 태우고 달리던, 10년은 훌쩍 넘었을 낡은 20인승 버스는 우리를 쇼핑몰 앞에 내려주었다. 여행 가이드인 목사님은 여기서 라면 몇 봉지와 과자 등 생필품을 사자고 했다. 일정에 없던 일이라 당황했지만 곧 목적지에 다다르자 무슨 이유로 생필품을 샀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장마로 침수된 마을에 생필품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그곳은 배를 띄워야만 마을을 다닐 수 있었기에 작은 배에 여럿이 나누어 탔다. 현지 주민은 자신의 몸을 반쯤 물에 담근 채 배를 밀어 마을을 안내했다. 배에 앉아 생필품을 전달하면서도 마음은 내내 불편했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배에서 내리니 품삯을 내주는 목사님, 오늘 그들의 하루벌이였다. 목사님은 후원을 받아 그 마을에 집을 지어 주는 일을 하신다고 했다. 현지인과 함께한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봉사활동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큰맘을 먹고 아이들과 다시 여행에 동행했다. “이번에 러시아 문학예술여행을 갈 건데, 자기도 같이 갈까?” 우리 가족의 첫 여행 때부터 주선해 준 언니의 메시지였다. “일정을 보고 가능하면 동참할게요”로 시작된 메시지는 결국 고1 아들, 중3 딸과 함께하는 여행이 되었다. 두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티켓을 구매하고 여행 일정을 공유하고 여행일까지 1년을 준비했다. 세미패키지 형식라 별다른 준비는 없었지만 낯선 곳으로의 초대는 늘 설렘이 먼저 앞선다.
이번 여행은 러시아 문학예술여행으로, 러시아 황금고리 지역과 모스크바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러시아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대체 무엇부터 알아봐야 하는지도 어설펐고 문자 또한 알파벳처럼 보이나 전혀 달라 읽는 것조차 시도해 보지 못했다. 구글 번역기와 구글맵 그리고 얀덱스 택시 앱을 준비했지만,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 덕분에 다행히도 별다른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9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오후 6시가 훌쩍 넘어 도착한 공항에서 지친 여행객들을 반겨주기라도 하듯 쌍무지개가 인사를 했다.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황금고리의 첫 도시 세르기예프 포사트엔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호텔에 도착해 먹은 러시아 첫 식사는 보르쉬수프, 흑빵, 샐러드였다. 보르쉬수프는 우리나라의 김치찌개처럼 즐겨먹는 국이라고 한다. 돼지고기나 참치 등 들어가는 재료만 다른 김치찌개처럼 보르쉬수프는 뿌리채소와 다른 재료들을 넣고 만든 수프다. 스메타나라는 요플레 같은 소스를 넣어 먹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조금씩 맛과 재료들이 달랐다. 보르쉬수프와 뿌리 채소인 레디쉬, 감자를 삶아 만든 샐러드는 여행의 마지막 식사 때까지도 먹게 된 음식이었다. 나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고 장소마다 특색이 있어 잘 먹었지만 아이들 입맛엔 별다른 감동이 없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일정인 러시아 황금고리는 모스크바의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들로,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 링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황금고리라 불린다. 황금고리 지역은 러시아 정교회와 함께 예술과 문학에 큰 역할을 했으며, 러시아 건축양식인 크렘린, 수도원, 교회 등 도시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이 중 ‘세르기예프 포사트’, ‘페레슬라블 잘레스키’, ‘수즈달’, ‘블라디미르’를 여행했다.



황금고리의 대표적 도시 세르기예프 포사트는 1993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로 알려진 곳이다. ‘성 트리니티 라브라 수도원’은 ‘성모승천사원’, ‘성 세례 요한 탄생교회’, ‘삼위일체성당’ 등 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삼위일체성당에는 성 세르기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중요한 건물이라고 한다. 수도원 입구의 이콘부터 크렘린의 성모승천성당을 모델로 이반 4세가 카잔과 아스트라한을 장악한 전승을 기념하여 건설했다는 성모승천사원도 큰 볼거리였다. 335명의 화가들이 100일 동안 그렸다는 프레스코 이콘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내 눈에만 담아와 무척 아쉬웠다.
사원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생각했던 러시아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과는 달리 화려하고 동화 같은 사원과 성스럽고 아름다운 성당 내부의 이콘이 그대로 간직돼 있는 모습에 감탄을 했다. 성모승천성당 앞에는 17세기 중반 보수공사 중 발견된 샘이 있었는데, 눈병을 앓던 수도승이 세수를 하고 완치된 ‘치유의 샘’으로 알려져 있어 성수를 받아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손으로 받아 입에 가져다 대며 우리 가족의 건강을 기도했다.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그 왼쪽에는 높이가 무려 88미터에 달하는 종탑이 있었다. 완성되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라고 한다.
오후에는 페레슬라블 잘레스키로 이동했다. 1175년부터 1302년까지 페레슬라블 공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성 트리니티 라브라 수도원과는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유지한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종탑에 올라 본 하늘과 마을은 평온했다. 마을 전체가 평온하고 아름다웠던 수즈달과 블라디미르까지, 가는 곳마다 마주친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여유로운 마음의 위안을 느꼈다.



블라디미르를 마지막으로 황금고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우리를 태운 대형버스는 4시간이 넘는 길을 달렸다. 창밖으로 러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작나무들이 흘렀다. 모스크바의 모습은 생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책에서만 보았던 붉은 광장엔 군복 입은 군인들의 행진 대신 독서 행사와 많은 야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동화책에서 바로 튀어나온듯한 ‘성 바실리 대성당’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바실리 대성당과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다시는 지어지지 못하도록 건축가 포스트니크 야코블레프의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곳의 아름다움이 더욱 눈부시게 다가왔다.
젊은이의 거리라고 불리는 아르바트 거리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유명한 푸쉬킨의 생가를 볼 수 있었고, 러시아 대표 보컬 빅토르 최 추모의 벽이 있는 골목에선 젊은 기타리스트의 버스킹도 감상할 수 있었지만 모스크바 일정의 제일은 볼쇼이극장에서 관람한 ‘카르멘’ 오페라였다. 예전과 달리 관광객들이 많아 드레스코드는 지키지 않아도 됐지만, 공연 문화가 발달한 만큼 그들은 드레스와 정장으로 예의를 차렸다.
금빛 찬란한 극장 내부는 금방이라도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딸과 나는 한 룸에, 아들은 다른 룸에서 관람했다. 혼자 둔 아들이 걱정됐다. 지루해하진 않을까? 내용은 알고 있을까? 자세가 삐딱하면 어쩌지? 같은 엄마의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관람을 마친 후 아들은 중학교 때 수행평가로 10번은 넘게 들었을 거라며, 공연 중간 같이 앉은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해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엔 모스크바에서 밤새 기차로 달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온 도시가 문화재였는데, 그중에서도 최고였던 것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이었다. 세계 3대 미술관이며 문화예술 박물관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곳이라 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천장과 바닥의 대칭 구조부터 압도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아이들과 나는 책이나 영상으로만 보았던 작품들을 가까이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기 시작했다. 제대로 돌아보려면 이틀은 더 걸릴 듯했다. 오후 무렵 숙소로 돌아가려 했더니 아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더 보고 가지 않는다며 한마디했다. ‘아들이 미술관을 이렇게 좋아했던가?’ 좀 더 관람한다는 이모들을 따라 아들은 미술관에 더 머물렀다. 아들이 미술관을 좋아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여행으로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스크바의 오페라에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2극장에서는 현대발레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내내 딸아이의 눈빛을 자주 지켜보았다. 딸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한국무용을 배웠다. 몇몇 친구들과의 거리감으로 전공을 접고 슈즈, 레오타드, 스커드 등을 모두 버리며 힘든 기억을 멀리하고 있던 딸이 다시 무용을 하겠다고 했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전 세계를 누비는 가이드가 되겠다고도 했는데, 어느새 그 마음이 한때 접었던 무용으로 바뀌어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다시 1년 뒤에 갈 여행을 준비한다. 올해가 결혼 20주년이다. 나는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갔던 여행지를 넷이 함께 가자며 제안했고 딸과 아들이 여행을 설계하고 있다. 첫 해외여행지에서 했던 봉사활동의 인연으로 딸아이는 올해 1월 베트남으로 일주일간 봉사활동을 갔다 왔다.



만약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무대를 그리워하는 딸아이에 대해서도, 아들이 오페라와 미술관을 좋아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며,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모습도 몰랐을 것이다. 여행에서 아이들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처음 여행의 맛을 알게 해준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시간과 돈이 아니라 용기야!” 나는 늘 시간이 없다고 했고, 여행 갈 돈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둘은 여행의 보조일 뿐 진정한 것은 ‘나설 용기’였다. 여행길에 언니가 개인 약 봉투에 넣어주었던 메시지를 이 글을 읽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제이다. -대니얼 드레이크-


장미희(교육컨텐츠연구소 이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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