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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 | 기획 [기획]
장인의 공방 ② 전라북도 서부권
김제
이동혁, 김하람(2020-08-10 19:57:18)

장인의 공방 ② 전라북도 서부권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다
한지공예장인 김경순 <전통공예 한지사랑>



“여기가 바로 별천지였네.”
한지공예장인 김경순 씨의 공방을 찾는 이들이 저마다 감탄하며 늘 입에 담는 말이 바로 이 ‘별천지’다. 강렬한 색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균형을 깨기 마련이지만, 전통 오색 한지의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한 색감은 서로의 색을 돋보이게 하며 공간에 화사함을 더한다. 오방색 한지의 아름다움이 눈동자 가득 뛰어들어 마음을 훔치는 ‘전통공예 한지사랑’을 찾았다. 선반 위에서 반갑게 눈인사를 건네는 작품들의 표정이 주인인 김경순 씨를 쏙 빼닮았다.


다양한 한지공예 기법들과 만날 수 있는 이곳에서 특히 빼어난 솜씨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전지공예 작품들이다. 한지를 덧발라 만든 틀에 색지로 옷을 입히고 여러 가지 문양을 오려 붙여 만드는 전지공예는 장인이 한지공예에 입문할 때 가장 처음 배운 기법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삼층장, 의걸이장 등과 같은 대형 작품들은 자택에 보관돼 있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 했지만, 색실첩, 예물함, 예단함, 동고리 등의 작은 작품들만으로도 그 섬세한 솜씨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한지공예는 대단히 고된 작업이에요. 팔 전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팔목이나 어깨에 오는 부담이 크죠. 제대로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께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가르쳐 드리고 있지만, 취미로 배우시는 분들은 먼저 한지공예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현대적인 방법들도 열어 놓고 있어요.”


이곳에서 장인은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다양하게 기울이고 있다. 레이저로 잘라낸 한지 문양이나 기계로 꼬아 만든 빔지, 반제품으로 판매되는 합지 등을 수업에 사용하기도 한다. 전통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한지공예의 보급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고 있는 중이다.


8월부터 벽골제 단지 내 공예체험관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장인은 요즘 이사 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부로 출강하는 공예 수업도 코로나로 인해 하반기에 집중되면서 주중에는 공방에 있지 못 하는 날이 많다. 하지만 전에 없이 바쁜 나날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없는 주말만 되면 늘 공방에 나와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힌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지에 파묻혀 온전히 집중하는 그 시간이 장인은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김제시 콩쥐팥쥐로 64



불 속에서 피어나는 꽃
칠보장인 김정화 <김정화칠보연구소>





푸른 정원과 산속에 안겨 있는 이곳은 칠보장인 김정화 씨가 작업하며 거주하는 공간이다. 공방 내부에 가로로 긴 창이 뚫려 있어 어디에서나 푸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곳만의 특징이다. 풍수지리적으로도 좋은 땅이어서 그런지 땅이 편해서 작업하기에 좋다고.


그의 공방에 들어서면 사방에 걸린 칠보 작품이 시선을 잡아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칠보로 만든 전통 장신구뿐만 아니라, 수채화나 유화처럼 붓으로 그린 듯한 작품도, 얇은 펜으로 드로잉한 듯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칠보 작품이 아닌 회화 작품 같이도 느껴져 칠보의 기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무장이나 그릇을 칠보로 장식한 작품들을 보며 무궁무진한 칠보의 쓰임에 감탄하게 된다.


일곱 가지 보물 같다는 뜻의 칠보는 유럽에서 시작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사극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떨잠, 비녀, 노리개 등 궁중 장신구에 주로 사용됐으며, 서민들은 결혼식 때에나 사용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칠보단장’이라는 말이 유래됐다. 예전에는 빨간색, 물색, 남색, 노란색 등 유약의 색이 적었지만, 최근에는 회화 물감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색상의 유약이 개발되어 칠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칠보는 금, 은, 동 같은 금속 재료에 광물 유약을 올려 가마에 굽는 불의 예술이다. 단순히 금속판에 유약을 올리는 기본적인 기법의 경우 우연의 효과가 커서 어린아이나 초보자의 작품이 전공자의 작품보다 멋지게 나오기도 하며, 실수로 태운 자국조차 신비로운 무늬처럼 보이게 한다.


불에 굽는다고 해서 도자기처럼 큰 가마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장인의 공방에는 A4보다 작은 사이즈부터 팔 길이 정도 되는 가마까지 크기별로 네 개의 가마를 갖추고 있어 작품 크기에 따라 가마를 달리한다.

작은 크기의 가마는 이동이 용이해 실제 장인이 체험 활동을 할 때 가지고 나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칠보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만 만드는 과정도 간단하고, 결과물도 바로 나와서 아이들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칠보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기 바라는 마음으로 장인은 많은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김제시 금산면 선동로 70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도공의 꿈을 심다
도자기장인 박광철 <팔봉도예>



증조부와 조부,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까지 무려 4대를 이어 온 도자기 명가가 있다. 김제 죽산면에 위치한 ‘팔봉도예’다. 투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서민들의 그릇 옹기에서부터 생동감과 자유로움이 돋보이는 분청사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있는 박광철 씨는 이곳 팔봉도예에서 도예 문화의 보급을 위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팔봉도예는 그 이름처럼 과거 익산군 팔봉리 옹기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 옹기 보급에 힘을 쏟았던 1대 고 박준석, 2대 고 박복래 씨에 이어 3대 박창영, 4대 박광철 씨는 영역을 확대해 분청과 청자까지 연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박광철 씨는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문양을 내는 일명 ‘박광철 기법’을 창안해 내는 등 전통 기법의 바탕 위에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매화꽃 시리즈, 박광철 기법을 활용한 호롱불 등 관광 상품 개발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자기 대중화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그는 1997년 김제 백산면에 위치한 농업용 창고를 빌려 공방 겸 체험장으로 활용하며 연간 7,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도공의 꿈을 심어 주는 데 노력해 왔다. 당시 체험장의 규모는 최대 5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해 전라북도에서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했으며, 체계적이고 꾸준한 도자기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2008년에는 한국공예협동조합연합회로부터 전국에서 세 번째, 전라북도에서는 제1호로 ‘공예현장체험 전문교육기관’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이곳 공방에서 배움을 얻어 도자기 기능사 취득과 공모전 수상을 이룬 이들도 다수다.


그러나 체험장이 있던 자리에 새만금 고속도로 휴게소 건설이 결정되면서 현재는 김제 오봉마을 입구로 공방과 체험장을 옮긴 상태다. 비록 규모는 그전과 비교해 4분의 1 정도로 적어졌지만,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여전히 인근 초등학교 학생, 주민들과 함께하는 지역 친화형 프로그램들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2



장작 가마의 뜨거움과 정성을 담은 옹기
부거리옹기장 안시성 <안시성 옹기>



숨 쉬는 그릇 옹기는 전통적으로 장류 등의 보관을 위해 사용됐다.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만큼 전국에서 만들어졌으나, 플라스틱과 서양 자기의 보급으로 점점 옹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200여 년 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이 만든 김제 백산면 부거리 부창마을의 옹기가마들도 그러한 이유로 사라질 뻔했으나, 옹기장 안시성 씨의 신념 하나로 한 개의 옹기가마를 보존할 수 있었다.


장인은 1992년 부거리 옹기마을에 옹기 만들기로 명망이 높았던 고 변동순 씨에게 전통 작업 방식과 옹기 장인으로서의 정신을 사사해 부거리 옹기가마와 작업장을 지켰으며, 부거리에 전승되어 온 전통 제작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여 옹기의 고장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그는 원광대 미술대학 도예과를 졸업하고 옹기 작업만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그의 작품의 특성인 그을린 표면 느낌은 지난 역사의 흔적을 자연스레 드러낸다는 평을 받는다.


부창마을에 남아있는 옹기가마는 직접 장작을 피워 사용하는 전통 방식의 가마로, 구릉지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흙벽돌을 쌓아 가마를 만들었다. 측면의 작은 불구멍으로 땔감을 넣어 전체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길이 22.5m, 넓이 1m, 높이 1.6m, 면적 124㎡의 긴 형태의 통가마임에도 균일하게 굽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아궁이의 일부가 파손됐으나, 그 원형이 제대로 살아있어 보존 가치를 크게 인정받고 있다.


100년 정도 되는 초가 형태의 옹기 작업장에는 옹기 물레 세 대와 그 외 작업 도구가 남아 있으며, 지금도 용도에 따라 아주 작은 옹기에서 대형 옹기까지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다.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 옹기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장인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마에 불을 지피는 불때기 행사나 옹기 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도 끊임없이 개발하며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김제시 백산면 옹기가마길 10



나무에 서린 부처의 자비
불교목조각장 임성안 <가람불교조각원>



삼국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오랜 역사와 전통의 종교 불교. 현재 국내 신자 수는 1,0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비로 대표되는 불교의 정신은 점점 각박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놓치기 쉬운 가치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고, 이런 점 덕분에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찰을 찾아 자신을 돌아보며 안식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가 조형물로서 극대화된 것이 있으니 바로 불상으로 대표되는 미술 작품들이다.

김제 금산사 주차장과 맞닿은 계룡마을 안쪽. 흔한 안내판 하나 없지만, 이곳에 우리 지역 불교 조각을 대표하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2호 불교목조각장 임성안 씨의 공방이 있다. 공방의 이름은 ‘가람불교조각원’. 이곳에서 그는 절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부처님의 모습이 서린 나무와 마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도안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예요. 소재를 붙여 가면서 만드는 소조와 달리 나무는 한 번 잘못 깎으면 수정을 할 수가 없어요. 도안을 따라 형체를 잡아 가면서 완벽한 위치를 찾아가는 거죠. 그리고 도안 작업 역시 자신이 직접 하지 않으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밑바탕부터 작품에 대한 내용을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불상의 완성도가 제대로 나와요.”


그 말처럼 처음 도안 작업부터 시작해 목재 선택, 조각, 건조, 배접, 개금, 개안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는 작업 과정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 없이 작업 일체를 자신의 두 손으로 오롯이 해낸다. 사용하는 칼의 종류만도 무려 400여 가지. 작은 불상 하나를 조각할 때도 100여 종류가 넘는 칼들이 사용된다.


정성으로 시작해 정성으로 끝나는 작업이다 보니 일반적인 불상을 깎는 데도 6개월가량이 소요된다. 커다란 작품의 경우엔 사계절 내내 공을 들여도 부족하다. 그가 이토록 불상 조각에 갖은 정성을 쏟는 이유는 지켜 가야 할 전통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 때문이다. 옛것을 보전함은 물론 후대를 위해 더 발전시키려는 일련이 노력들이 이곳 공방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80-41



혼이 빚어지는 인고의 공간
사기장 장동국 <토광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 민초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그 집필 과정을 전시한 김제 ‘아리랑문학관’ 바로 옆에 똑같이 민초들의 향기가 풍기는 분청사기 공방이 있다는 사실이 작위적이면서도 절묘하다. 공방의 이름은 ‘토광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9호 사기장 장동국 씨가 흙에 혼을 불어넣고 있는 공간이다.

나고 자란 이천에서 도예작업을 펼쳐 오던 장인이 김제에 공방을 마련한 이유는 바로 흙 때문이었다. 도예가에게 있어 흙은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이자 작품의 질을 끌어올리는 토대. 전북 서해안은 고려시대 청자요가 있었을 정도로 흙이 좋은 곳이어서 엄격한 장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렇게 김제에 정착해 공방을 운영해 온 세월이 어느새 16년이다. 흙과 함께해 온 세월은 무려 50년에 달한다. 긴 세월 흙을 만져 오는 동안 열 손가락에 남아 있던 지문도 어느새 전부 닳아 없어지고 말았지만, 아직도 옛 도공의 정신을 따라잡기 위한 장인의 열정은 식을 기색이 없다. 도자가 흙과 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공의 혼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만든다고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하지요. 빚는다는 건 혼을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혼을 나누어 받은 장인의 분신인 것이죠.”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보다 적절할 수가 없다. 그가 물레를 돌리는 공간엔 미처 치우지 못한 작업의 흔적들이 마치 오랜 세월 퇴적된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매일 흙을 매만지는 장인의 인고를 엿보게 한다.

도자 문화 확산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장인은 공방 한편에 마련된 체험장에서 다양한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핀칭, 흙가래, 점토판, 물레 등 다양한 성형기법을 활용해 컵, 화분 등 본인이 원하는 작품들을 자유롭게 제작해 볼 수 있다. 물론 장인의 주옥 같은 작품을 가까이서 감상해 볼 수 있는 점 역시 참가자들에겐 큰 행운이다.
김제시 부량면 용성1길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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