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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 | 연재 [윤지용의 두 도시 이야기]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
투루판과 카슈가르
윤지용(2020-09-14 16:47:54)

윤지용의 두 도시 이야기 | 투루판과 카슈가르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



타클라마칸 사막은 중국 북서부의 신장위구르 자치주에 있는 광활한 사막이다. 북쪽으로는 텐산산맥, 남쪽은 쿤룬산맥과 티베트고원, 서쪽으로는 파미르고원에 둘러싸여 있는 황량하고 건조한 지역이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돌아올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지나던 이들은 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가장자리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들인 투루판과 카슈가르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들이었다. 지금은 중국 영토에 속해 있지만, 이 지역은 예로부터 투르크족의 일파인 위구르인들의 땅이었다.                     윤지용 편집위원


투루판의 카레즈, 인간의 힘으로 만든 경이로운 오아시스
타클라마칸 사막 북동쪽 언저리에 있는 도시 투루판은 해수면보다 154미터나 낮은 오목한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해(해발 고도 마이너스 421미터)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낮은 곳이다. 안 그래도 무덥고 건조한 사막지역인 데다가 분지지형이다 보니 여름철에는 기온이 섭씨 50도에 육박한다. 투루판 근교에 있는 화염산(火焰山)은 지면 온도가 섭씨 80도까지 나가기도 한다. 중국의 고대소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이 지나다가 파초선으로 바람을 일으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산의 불을 껐다는 곳이 바로 화염산이다.



투루판의 주된 생산물은 포도다. 수십 가지 종의 포도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거리 곳곳에는 노점상들이 여러 가지 색깔의 포도와 건포도를 판다. 연중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다 보니 포도가 달디 달다. 메마른 사막지역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비결은 ‘카레즈’라는 인공수로에 있다. 고대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에 건설한 관개용 수로를 ‘카나트’라고 하는데, 이 카나트가 중앙아시아에 전해지면서 카레즈가 되었다. 2천 년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투루판의 카레즈는 텐산산맥의 빙하가 녹아 땅에 스며든 지하수를 이곳까지 끌어온 지하수로인데, 총 길이가 5천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그 오랜 옛날에 손으로 땅을 파는 작은 괭이와 파낸 흙을 퍼 올리는 바구니만으로 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투루판 시내의 랜드마크는 44미터 높이의 에민 미나렛이다. 미나렛은 전 세계 대부분의 이슬람 사원들에 달려 있는 첨탑이다. 이슬람교도인 무슬림들은 매일 다섯 번씩 신께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성직자인 무아진이 미나렛에 올라 ‘아잔’을 낭송한다. 에민 미나렛이라는 이름은 18세기 무렵에 위구르인들의 지도자였던 에민 호자에서 따왔다. 그런데 중국이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 현지의 지명들을 한자식 이름으로 표기하면서 ‘소공탑(苏公塔)’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현지의 위구르인들은 여전히 에민 미나렛이라 부른다.


실크로드 교역로 한복판의 지리적 요충지인 투루판은 예로부터 여러 고대 문명들이 명멸했다. 투루판 근교에는 교하고성, 고창고성, 베제크리크 석굴 등 고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옛 교하국의 수도였던 교하고성은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곳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이름이 교하(交河)였다. 우리말로 하면 ‘두물머리’쯤 되겠다. 기원전부터 번성했으나 강줄기가 말라가면서 점점 쇠락하다가 14세기 몽골군의 침략으로 멸망해서 지금은 폐허가 된 토성(土城)이다. 화염산 근처에 있는 베제크리크 석굴은 수많은 동굴들에 고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어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는 77개의 석굴이 있다고 한다.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 카슈가르
타클라마칸 사막 서부의 카슈가르는 중국 영토 중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다. 중국식 이름은 ‘카스(喀什)’이다. 예로부터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나아가는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었으며 지금도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중국 쪽 출발점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고속도로’를 뜻하는 하이웨이가 아니라 카라코람 산맥을 넘는 고지대의 도로라는 뜻이다.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는 해발 4,693미터의 쿤자랍 고개를 넘어가는 험준한 산악도로다.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주도(州都)는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에 있는 우루무치이지만, 위구르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자 문화적 중심지는 이곳 카슈가르다. 우루무치는 중국 정부의 동화정책에 따른 한족(漢族)들의 이주로 이미 한족 인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져 위구르의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카슈가르의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꼽히는 곳은 아팍호자 묘당이다. 17세기 위구르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였던 아팍호자의 무덤이다. 초록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웅장한 건축물인 아팍호자 묘당은 아팍호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호자 일가 72명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앞쪽에 이슬람 사원 모스크가 있고 뒤편에 가족묘지가 있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은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이나 사람, 동물 모양의 장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이곳의 모스크도 코란의 구절을 아랍어로 쓴 캘리그래피와 기하학적 도형 문양으로 꾸며져 있는데, 그 장식이 매우 섬세하고 독특하다.


이 묘당에 묻혀 있는 호자 가문의 사람들 중에 ‘향비(香妃)’라는 여성이 있다고 해서 흔히 ‘향비묘(香妃墓)’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 발음으로는 ‘샹페이무’다. 몸에서 향기가 났다고 해서 향비로 불리는 이 여인은 아팍 호자의 5대 후손이었는데, 위구르가 청나라에 점령된 후에 청나라 건륭제의 후궁이 되었다. 그런데 청나라에 간 직후 바로 요절해서 이곳으로 운구해 와서 안치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였던 아팍호자의 신성한 묘당을 청나라 황제의 후궁이었던 향비의 이름을 딴 한자어 ‘향비묘(香妃墓)’라 부르는 것에 모욕감을 느낀다고 한다.



카슈가르 시내 곳곳에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곤봉을 든 중국 인민무장경찰들이 무리지어 순찰을 돌며 시도 때도 없이 현지인들을 검문한다. 시내 중심가에는 압도적인 크기의 조형물이 지나는 이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높이 44미터로 중국 전역에서 가장 크다는 마오쩌둥 동상이다. 카슈가르 전역을 굽어보고 있는 마오쩌둥이 ‘여기도 중국 땅이야. 분리독립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마!’라고 호령하는 듯하다. 이렇듯 카슈가르는 이민족에게 점령당한 땅이다.


잃어버린 나라, 동튀르크스탄 공화국
타클라마칸 사막을 둘러싸고 있는 신장위구르 자치주는 고대 한나라 시대부터 중국인들에게 ‘서역(西域)’이라 불렸던 곳이다. 10세기 무렵부터는 위구르인들이 살아온 땅이다. 그 밖에도 카자흐족, 키르키즈족, 몽골족 등의 유목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지만, 인구의 절대다수는 위구르인들이다.


18세기에 청나라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새로 개척한 영토라는 뜻으로 ‘신강(新疆, 중국 발음 신장)’이라 불렀다. 1911년 중국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한 뒤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어 1944년에 위구르인들을 중심으로 ‘동튀르크스탄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위구르인이 튀르크족의 일파이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튀르크 나라’라는 뜻이었다. 당시 전 세계의 민족해방운동에 우호적이었던 소련의 영향으로 처음에는 중국 공산당도 이 지역의 독립을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49년 동튀르크스탄 공화국의 수뇌부들이 탄 비행기가 원인불명의 사고로 추락하여 국가의 지도부가 공백인 틈을 타서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이 전격적으로 진주해 이 지역을 강제로 중국에 합병해버렸다.


중국은 이 지역을 자치주로 지정하고 제한적인 자치권을 허용하고 있지만, 민족과 언어와 종교가 다른 위구르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나라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는 이 지역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석유를 비롯해서 석탄, 철광석 등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21세기의 국가전략으로 추구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도 이 지역이 핵심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날로 거세지는 위구르인들의 분리독립을 가혹하게 탄압하면서 한족의 이주를 독려하고 있다. 이 지역에 이주해온 한족들은 마치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 이주해온 일본인들이 그랬듯이 지역의 개발을 주도하면서 경제권을 장악해가고 있다. 비록 서방측의 일방적인 주장이기는 하지만, 중국 당국에 의해 재판 없이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위구르인들이 백만 명에 이른다고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구르인들은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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