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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 | 칼럼·시평 [문화칼럼]
시민의 힘으로 미얀마 언론을 지키는 방법
김영미 PD(2021-05-07 10:22:44)


문화칼럼│미얀마 언론을 지키는 방법



시민의 힘으로 미얀마 언론을 지키는 방법



김영미 PD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난 후 친군부 매체인 MRTV, MWD를 제외한 거의 모든 매체가 사라졌다. 미얀마 군부가 미얀마나우와 세븐데이 뉴스, 미지마, DVB(버마 민주의 소리), 킷띳미디어 등 미얀마의 유력 언론 매체의 면허를 취소, 폐간했기 때문이다. 그 많은 매체에 종사하던 기자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나와야 했다. 사진 기자인 튤립(가명)은 그날 오후에 회사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짐을 주섬주섬 들고나와서 이제 어디에 마감을 하고 사진을 누구에게 보여줘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일주일 후, 사람들이 거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튤립은 카메라를 들고 그들에게 갔다.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사진을 본능적으로 촬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위대를 촬영하다가 쫓기면서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한 달간 교도소에 수감되어 수없이 구타당하고 고문을 당했다. 아직도 그는 나에게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충격이 너무 커서 그가 기억하는 것은 고통과 공포, 죽음뿐 상황에 대한 기억은 상실한 것이다. 이것은 미얀마 기자들이 겪는 일상이다.

 


이들이 쓸 수 있는 지면도 없고 데스크도 없다. 고작 SNS에 가명으로 글과 사진을 올리는 일을 할 뿐이다. 그나마도 군부에 들키면 체포당하고 구금되는 순서이다. 운 좋게 외국 언론사와 일을 해도 자신의 이름을 낼 수도 없다. 한 사진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다가 날아온 총알에 손바닥이 관통당했다. 미얀마에서 정식 취재는 불가능하다. 외신도 마찬가지이다. 미얀마 현지 취재는 전면 통제다. 어떤 오신도 들어갈 수 없고 그나마 CNN이 군부의 협조하에 미얀마에 들어갔는데 엄청난 숫자의 군인들에 둘러싸여 취재가 자유롭지 못하고 인터뷰이마저 끌려가는 상황이라 단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미얀마를 빠져나왔다.



언론의 자리가 비어버리니 미얀마에서 정확한 뉴스가 나오지 못했다. 시민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리는 SNS나 확인되지 않는 루머, 군부의 홍보성 뉴스만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 누구도 미얀마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군부는 아예 쿠데타라는 단어를 그 어떤 방송과 출판물에 쓰지도 못하게 한다. 국민의 귀와 눈이 막힌 암흑의 세상이 된 것이다. 갑자기 정전으로 암흑에 빠진 듯 미얀마 언론의 부재는 심각한 정부의 부재로 다가왔다. 미얀마에서 뉴스가 멈추면 그들의 저항은 사그라들 것이다. 국제 사회가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식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시위가 한창이었던 2월과 3월 초까지는 미얀마의 뉴스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론인 체포가 본격화된 3월 중순부터 미얀마 뉴스는 급격히 적어졌고 그나마도 시위 관련 뉴스 외에 더 자세하고 분석이 가미된 심층적인 뉴스가 나오지 못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미얀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많으나 더 새로운 것이 없자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국제 사회 또한 쿠데타 초기보다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을 뚫고 미얀마 기자들은 어떻게든 그들의 뉴스가 세상으로 나가길 원했다. 암흑의 상황을 뚫고 기자들은 SNS상에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시민들이 접촉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소식을 전하고자 노력했다. 비밀리에 조직을 만들고 외신들과 접촉하여 자신들의 기사와 사진을 전달했다. 길거리에서 군인들이 휴대폰의 사진을 뒤지고 불시에 집에 쳐들어온다. 집안에 카메라 장비나 노트북이 있으면 끌려간다. 취재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죄다. 이렇게 체포당하는 언론인들이 파악된 것만 70여 명이다. 그 외에 숨어 지내며 은신처를 옮겨 다니는 기자들만 수십 명이다. 이들은 지금 취재 활동은커녕 자기 한 몸 숨기기도 벅차다. 한국에 기사를 보내기로 약속했으나 사라져 소식조차 없는 기자가 두 명이나 된다. 나는 최대한 그들을 수소문해보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서울에 사는 내가 사람을 시켜 미얀마 양곤을 뒤지는 데에는 한계가 많았다. 끌려간 기자들은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고 교도소로 향한다.

 


이는 외국 언론이나 국제 사회에 타격이 크다. 외신 입장에서는 현지에 들어가지 못하니 취재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원격 취재로 뭔가 알아내고 미얀마 뉴스를 전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미얀마 기자들이 움직여줘야 외신들도 뭔가 확인을 하고 기사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미얀마에서 뉴스가 나올 수 없다. 그럼 미얀마에서 뉴스가 제대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미얀마 기자들의 생계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재 미얀마 기자들은 생계조차 막막하다. 쿠데타 이후 3개월가량 수입이 0이다. 생활고와 체포 위험은 그들을 취재현장에서 사라지게 한다. 이들이 취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미얀마에서 뉴스가 끊이지 않게 된다. 사태가 장기간 지속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이들을 비밀리에 장기 고용하고 취재할 수 있도록 취재 지원이 절실하다.


 


나는 미얀마 기자들에 대한 취재지원도 저널리즘의 한 영역이라고 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2012년 독재 정부인 알 아사드 정권에 맞서던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시리아 내전 당시. 시리아 알레포에서 한 무리의 기자들이 나를 부른 적이 있다. 어느 집에 초대되어 갔더니 우리로 치면 시리아의 나름 대기자들로 불리는 이들 십수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경제적 취재지원을 요청했다. 시리아 내전을 자신들이 현장 취재할 수 있게 지원해주면 제대로 된 시리아 뉴스를 세상에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그 부탁을 거절했다. “나는 취재하는 사람으로 당신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줄 형편도 안 되고 그건 나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알았다며 자신들 힘으로 알아서 해보겠다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후 그들은 지역마다 시리아 미디어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취재를 이어갔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 10년이 지나 그들 중 대부분이 사망했거나 난민으로 전락했음을 알게 됐다. 또한 그들의 취재 활동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슬람 국가(IS)의 선전 매체와 알 아사드 독재 정부의 찬양 매체만 남고 그 어디에도 시리아 뉴스를 진실하게 전하는 기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지금 미얀마 기자들을 살리고 그들이 취재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저널리즘의 한 영역임을 깨달았다. 지금 간간이 나오는 미얀마 뉴스는 현지 기자들의 목숨 걸고 취재해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우리 국민들이 미얀마 기사를 많이 봐준다면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미얀마 뉴스를 선호하게 된다. 그럴수록 미얀마 기자들에 대한 지원이 늘어갈 것이다. 시민의 힘은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세력이다. 연일 안타까운 뉴스만 나오는 미얀마이지만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목숨을 건 뉴스의 클릭 수를 높이는 것이 미얀마 기자들을 돕는 길이다. 또한 인터넷 상황이 안 좋은 미얀마 현지보다 우리가 그들의 저항의 역사를 기록해 주면 훗날 그들 역사 진상 규명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취재 지원을 위해 우리 언론이 나서서 현지 기자를 채용하고 그들의 기사나 사진을 실어 준다면 좋겠다. 우리가 시민의 힘으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면 다음 세대가 사는 세상에는 쿠데타 같은 미개한 정권 창출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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