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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⑰
박형진, 이현배(2022-06-10 11:45:26)


손내 선생님!

바빠졌다는 소릴 한지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농사일이 이제는 정말 많이 바빠져서 몸이 힘든 계절이 되었습니다. 양파나 마늘, 밀, 보리 따위의 월동 작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많은 작물들을 때맞춰 심고 가꿔야 하기에 몸이 두세 개라도 모자라 게으른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갈수록 몸이 따라가 주질 않아 어언간 부지런하지 못한 농부가 되었습니다. 한나절, 아니 한두 시간만 일을 힘들여서 하게 되면 나무지 한나절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튿날까지 입에서 아이구 소리가 나오게 되니 일을 하기가 걱정스럽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논 한 뙈지기를 제하고는 밭에다가 돈이 될 만한 작물들을 재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려 때나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눠먹을 정도의 몇 가지만 심을 뿐입니다.


그래도 바쁩니다. 풀의 생리와 농작물의 생리가 바꾸어졌다면 저 같은 농사꾼도 한몫을 단단히 챙기겠지만 언감생심, 하나님은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결단코 그런 일은 만들지 않으셨죠. 그래서 농작물을 많이 심지 않아도 이놈의 풀 때문에 상당 부분 바쳐온 인생을 또 바쳐야 하므로 바쁜 것입니다. 오월을 일러 계절의 여왕이니 가정의 달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서 무언가 좀 품위를 높여보려는 분들은 부디 한 번쯤은 농촌에서 흙 둥구레미가 되어 사는 농민들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어제는 조금 짬을 내서 아주 오랜만에 바다에 나갔습니다.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하겠다는 핑계이긴 한데 밥상 위에서 날마다 먹는 같은 반찬들을 보려니 은근히 갯것들의 비린내가 그리워졌지요. 오월 달에는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날이 거의 없지만 어제가 그래도 그중 많이 빠져서 고둥 정도는 잡을 만하다 여겨졌어요. 그래 장화 신고 바구니 하나와 조개망을 챙겨서 바다에 갔지요. 집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바다지만 바다 앞에 섰을 때의 그 설렘이라니-


바다도 말하자면 고둥이 많이 붙어있는 곳, 바지락이 많이 박혀 있는 곳, 게가 숨어 있는 곳, 톳이나 지충이, 파래, 청각 따위가 많이 있는 곳, 굴과 홍합, 담치들이 많이 붙어 있는 곳, 소라와 피조개가 많이 있는 곳, 맛조개가 많이 박힌 곳이 다 달라요. 어제는 정말 이런 것들은 거의 잡을 수 없게끔 물이 빠지지 않고 조간대의 상부, 그러니까 바위에 붙어있는 대수리 고둥 정도나 잡을 수 있어서 오직 그것 한 가지만 주워왔습니다.


대수리는 하도 그 개체수가 많아서 비로 쓸어 담을 지경이라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그런데다 이게 또 몸집이 작아요. 하지만 이맘때는 몸집이 커지고 알이 영글어서 가성비가 높다고나 할까, 저처럼 조금 전문가적인 사람은(!) 년중 한두 번 꼭 이것을 주워다가 삶아서 즐기는데 이게 참 대단한 심심풀이 땅콩이랍니다. 하나씩 톡톡 까먹노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요,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이것도 섭취의 경계를 아주아주 잘 지켜야 하는 식품 중 하나랍니다. 맛있다고 조금 많이 먹었다간, 거기에 입을 행군다고 찬물이라도 한 대접 들이켰다간 백발백중!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는, 그래서 새벽쯤에는 화장실에서 벌벌 기어나와 거실에 큰 大자로 뻗어야 하는 영물이지요. 이것은 대수리 고둥이나 소라 따위가 자기 몸의 한 부분에 시퍼러둥둥하니 달고 있는 것 때문인데 소라는 덩치가 크니 쓰고 아린 맛이 나는 이것을 떼어내고 먹을 수 있지만 대수리고둥은 작아서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럴뿐더러 대수리고둥의 이것은 소라와는 달리 개미가 있는 쌉소롬한 단맛이어서 먹을수록 땡긴다는 점입니다. 우리 같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늘 먹어오면서 면역력을 키워온 거라 많이 먹어도 괜찮지만 그러지 않은 분들은 단 몇 개로 큰 탈이 나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즐겨하지 않아서 그나마 개체수가 많은 겁니다.


탈이 나지 않게 먹는 방법이야 있지요. 삶을 때 식용 소다를 한 수저 넣거나 된장을 넣고 조금 오래 삶아서 까먹으면 탈이 좀 덜 납니다. 이왕에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덧붙이면 저는 이것을 까서 들깨즙나물로 2차 조리를 해서 많이 먹습니다. 이맘때는 머윗대가 좋은 식재료이므로 이걸 끊어다가 삶고 껍질을 벗긴 다음, 조금 물에 우렸다가, 적당한 길이로 잘라, 냄비에 넣고, 들깨가루를 풀고, 까놓은 대수리고둥을 넣고 끓이는 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머위고둥즙나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보통은 바지락을 넣고 하지만 고둥 까 넣고 해야 한 수 윗길의 맛이 나오죠.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모내기하는 들판으로 못밥을 해서 내가실 때 반찬으로 이것과 고사리 조기탕과 꽃게무젓을 자랑스럽게 내가시고 국으로는 햇감자 된장국, 새하얀 쌀밥에는 새파란 애콩(완두콩)을 따서  넣었죠. 이런 것은 다 사지 않고 우리 고장의 산들바다에서 나는 것들로 주부의 바리지런하고 매운 손끝이라야 나오는 음식입니다.


먹는 이야기는 언제 해도 재밌고 한없을 것 같군요. 하지만 듣는 분이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생각해보니 가벼워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지난번 보내주신 옹기 솥은 책상위에 두고 보기만 해도 입에서 군침이 돌고 기대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시 한편 덧붙이며 이만 마칩니다.


진달래


이제 지는구나
저 꽃
스스로 도취하지 않고
꽃다웁기 위해 견뎌왔던 시간들
보내고
임종하는 한 정신


누구인가 너는


나를 물들였으나 나
아무것도 물들이지 못하는
이 서글픔
눌러 깊이깊이 삼키고
서있는데
다시 푸른 잎으로


몸을 바꾸는 저 꽃

2022. 5. 18
박형진 드림



모항 박형진 시인께

목수처럼 일을 했습니다.
배운 바 없는데 제법 합니다.


스스로 의아하여 이 옹구장이의 전담비평가(?)께 ‘배운 바 없는데 잘한다’고 했는데 당연한 비평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반지하식 가마의 천정에 이긴흙을 얹기 위해 나무로 헛집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진 일이라 혼자서 해야 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지어졌지만 큰무게를 견딜 수 있게 짱짱한 것이 참말로 목수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도 희한했기에 괜한 소리를 해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마 몸을 미세하게 다듬어 선형을 잡을 때도, 또 몸흙을 씌우기 위해 헛집을 지을 때도 정태춘, 박은옥의 ‘떠나가는 배’를 계속 읊조리게 되더라는 거. 가마 모양이 꼭 배모양이어서 그랬을 것인데 마침 또 두 분의 다큐 영화 [아치의 노래]를 보게 되었고, 몸흙을 얹질 때도 그랬습니다. 영화를 본 여운이 아직까지도 여전합니다. 그러니까 오래전에 뵈었을 때가 영화의 제목이 된 “아치의 노래”가 만들어지던 때였던가 봅니다. 아치는 잉꼬의 이름이고, 우리가 흔히 잉꼬부부라고 하는데 혼자되어서도 혼자서도 잘 살더라는. 그렇지만 노래되어진 것처럼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돌이켜보니 그때가 IMF 이후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도래로 자본의 논리에 맞서 음악 활동을 접었던 시기였었나 봅니다. 재떨이라고 만든 그릇이 서울로 가서는 소스볼이 되었는데 정 선생께서는 배짱 좋게(?) 재떨이로 쓰고 계셨고, 그날 이후 늘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가 칼을 모았는데 새 칼을 들이면 밤새 갈아 날을 세웠답니다. 날을 새워 날을 세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박용수 선생께서 ‘그 안에 이미 날이 있는데 무어 날을 세우느냐’는 말에 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그 이야기처럼 다큐라는 긴호흡으로 보니까 삶 속에 음악이 있고, 음악 속에 삶이 있는 시와 음악과 삶의 일치와 일체였습니다.


그 며칠 전 일입니다.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차편이 어쩌고 읍내 식당이 저쩌고 합니다. 가만 들어보니 서울 사는 친구들이 오는데 이래저래 점심시간이 걸리니 점심밥을 사 먹고 들어온다는 거였습니다. 듣다가 듣다가 먼 길을 오는데,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있는데 밥때가 되어서 밖에서 먹게 한다는 것은 좀 그렇다고 우리가 밥상을 차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식은 그게 또 불편인지 옥신각신합니다. 우리식은 그렇다고 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십 대가 되면서부터 제 삶에 밥상을 차릴 일이 많겠다 싶었습니다. 그래 ‘밥 잘하는’ ‘이쁜 누나’를 만나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더랬습니다. ‘이쁜’은 기왕지사였고, ‘누나’는 제 삶이 가프게 전개되리라 예감했기에 아무래도 연상의 이해심을 얻고 싶었더랬습니다. 가히 삶이 그런 식으로 꾸려졌고 돌아가신 장모님의 노고가 많았기에 늘 고맙고 죄스럽고 그렇습니다.


몇 해 전에 화제가 되었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드라마처럼 그야말로 ‘외식의 시대’이고, 잘 살 수 있게 ‘돈 잘 벌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부질없는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 생각의 잔재인지 여전히 사 먹는 것이 불편하고 시달리기까지 한답니다. 살자니(생존) 먹기 욕구를 원초적으로 가졌지만 선택적으로는 사회문화적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농업의 가장 완성된 형태로의 음식’이었습니다. 농업의 문화상품화로 음식이면 농업의 교환가치를 높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면 생업으로 농업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그렇지만 정교하게 산업화된 먹거리 체계에 의해 ‘차라리 사 먹는 것이 싼 음식’ 천지가 되었고 말 그대로 그 싼 음식에 몸과 마음을 다치곤 한답니다. 그렇지만 꼭 먹던 밥만 먹는 것은 아니랍니다. 외식이 좋을 때도 외식이 좋습니다. 바로 어제 섶밭들 논에 갔다가 용광리로 해서 천천엘 들려 먹은 다슬기수제비도 좋았습니다. 아내가 장모님께 사드린 적이 있는데 매우 좋아하셨다는 추억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집은 쏘가리(매운탕, 회)와 자라(용봉탕)를 특식으로 다루는 집이었습니다. 금강의 발원지 뜸봉샘과 동촌에서 내려오는 장수물과 남덕유산과 장안산에서 내려오는 장계물이 합쳐져 제법 큰물이 되어 쏘가리니 자라니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의 생선처럼 먹을 수는 없고 거의 거습(시래기) 맛이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슬기라는 말도 나중에 나온 말이고 박 선생님께서 고둥이라고 한 것을 저희는 고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옹기에서는 물은 새지 않으면서 공기는 통하게 하는 기능을 얻기 위해 자연 유약인 오짓물을 입히는데 굳이 색을 얻고자 하면서 ‘고동색이면 좋다’고 한답니다. 옛날에는 겉이 매끄러웠고 양념 없이도 맛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물이 탁해지면서 겉이 꺼칠꺼칠해졌고 비려져 양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수리라는 말은 서쪽이나 동쪽이나 같이 쓰고 있네요.


요새
선거 관련 현수막이 풍년인데
마침 가로수로 많이 심은 이팝나무가 꽃을 피워
온통 꽃풍년입니다.

일풍년에
몸 상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이만 줄입니다.


2022. 5. 22
옹기장이 이현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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