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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 | 연재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팥죽
백희정(2023-01-15 00:56:31)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1

팥죽



코끝으로 고소한 팥 냄새가 먼저 와 닿는다.

불을 줄이고 천천히 푹 무르게 삶은 팥은 단맛이 돌고 고소하다. 


팥을 씻어 소쿠리에 담는다. 물에 잠긴 팥 위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듯 조리를 돌리면, 빨간 팥이 떠올라 조리 안에 담긴다. 돌을 고르고 잘 여문 팥만 골라내는 것이다. 돌 하나 없는 깨끗한 팥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둘이 살 때의 일이다. 엄마와 둘만의 외식을 간혹 하곤 했는데, 외식이랄 것도 없이 때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한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엄마와 장보기를 함께 하거나 은행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외출한 날이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엄마는 함께 사는 딸을 앞세워 집 밖에 볼일들을 해결했고, 나는 이런저런 집안일이 내 차지가 되는 것을 투덜거렸다.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엄마의 다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다리만 안 아프면 살겠다’는 엄마의 하소연이 자주 내 귓전을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이 어느 만큼인지 헤아릴 수 없었고, 그러면서도 집안일과 밭일을 묵묵히 해내는 엄마였기에 ‘잠깐 때때로 왔다가는 감기 같은 것일까?’ 생각하며 가벼이 여겼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엄마는 통증이 진통제로 조절되지 않자 한 달에 한 번 뼈 주사라는 것을 맞기 시작했다. 뼈 주사를 맞고 나면 엄마는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며 다시 황소처럼 일했다. 하지만 그 효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엄마의 아픈 무릎은 다시 퉁퉁 부어 만져보면 뜨끈뜨끈하게 열이 났다. 


오전에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 볼일들이 마무리되어 갈 때면, 시간은 정오를 지나 한 시경이나 두 시경이 될 때가 다반사였다. 엄마는 그간에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딸이 모처럼 시간을 낸 그날 다 처리할 모양이었다. 면사무소와 은행 일을 마치고 이제 장 보는 일만 남았다. 마저 장보기를 하려니 점심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엄마 우리 밥 사 먹고 들어갈까?”

“그려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오늘 애썼슨게, 밥은 내가 살게~~”

“하하하- 정말!”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나는 금암동 팥칼국수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고, 집으로 가는 길과도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였다. 2차선 도로에서 골목으로 50m 남짓 들어가 위치한 오래된 분식집이다. 걷는 것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골목 안까지 들어가 가게 문 앞에 엄마를 내려주고 나는 다시 큰길로 나와 근처에 주차했다. 엄마가 어색하게 혼자 앉아 있을 것 같아 뛰어왔는데, 엄마는 들어가지도 않고 내려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엄마! 왜 안 들어갔어? 다리 아프게~”

“너 오면 같이 들어가려고.”


서둘러 엄마를 부축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터라 자리가 몇 개 밖에 비어 있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의자에 먼저 앉히고,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서둘러 주문을 넣었다. ‘사장님 여기 팥칼국수 2개요.’ 다행히 재료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주방 안에서 ‘예. 팥칼국수 2인분요.’라며 사장님이 얼굴을 내민다. 이 가게의 메뉴는 딱 4개. 팥칼국수, 새알 팥죽, 칼국수, 수제비. 점심시간이면 거의 자리가 없고, 1시 반 또는 2시를 넘기면 간혹 재료가 없어 주문이 불가능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테이블 위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칼국수 두 그릇이 놓였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보기만 해도 진한 붉은 팥 국물이 달콤하고 고소하게 느껴졌다. 나는 빈 접시 하나를 엄마 앞에 놓아주며 ‘엄마 뜨거우니까 덜어 드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천천히 팥국물을 입안에 떠 넣고 ‘달고 맛나다’며 나에게 어서 먹으라는 눈짓을 한다. 엄마는 빈 그릇을 기울여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드셨고, 나는 입천장이 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팥 칼국수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기억 저편에 동지죽을 먹으라며 자는 딸을 깨우던 엄마가 있다. 윗목 작은 소반 위에는 팥죽을 담은 사발들이 놓여 있다.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숟가락을 들어 입안에 팥죽을 떠 넣는다. 아이는 차갑게 식은 팥죽을 오물거리며 숟가락을 든 손으로 눈을 비비며 방안을 둘러본다. 


매번 동지마다 팥죽을 끓이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는 애기동지라며 팥시루떡을 해 먹었고, 중동지(中冬至)나 노동지(老冬至)에는 새알심을 만들어 팥죽을 끓여 먹었다. 팥죽을 끓이는 시간도 해마다 달랐다. 동지가 다가올 때쯤이면 ‘올 동지는 시가 몇 시다냐?’며 마을 어른들에게 물어 집집마다 그 시간에 맞춰 팥죽을 끓이고, 간단한 예식을 갖추었다. 


동지가 아니어도 엄마는 간혹 팥죽을 끓여주셨다. 농번기가 지나고 조금 한가해지면 엄마는 하루 날을 잡아 팥을 삶고 밀가루를 반죽했다. 그리고 반죽한 밀가루를 얇게 밀어 썰어 놓은 칼국수를 넣고 팥칼국수를 만들었다. 시어머니를 위한 며느리의 특식이었다. 할머니가 특별히 좋아하기도 했지만,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3대가 모여 살았던 우리 집은 끓이는 양도 만만치 않아 엄마의 수고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지금은 언제라도 먹고 싶으면 돈을 주고 사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그때에는 엄마의 수고가 아니면 쉽게 해먹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엄마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자식들에게 행복했던 기억으로 소환되는 팥칼국수는 엄마가 준 선물이다. 여름 저녁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던 그 팥칼국수는 참 맛있었다고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직접 음식을 하고부터 나는 계절과 상관없이 냉동실에 팥과 찹쌀가루를 장만해 둔다. 시간이 나면 찹쌀가루는 익반죽하여 새알심을 만들고, 마른 가루를 조금 섞어 두세 그릇 분량으로 소분해 넣어 둔다. 삶은 팥도 소분하여 냉동해 둔다. 그러면 그때그때 팥물을 만들어 번거롭지 않게 바로바로 맛있는 팥죽을 끓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인을 초대해 집에서 동지팥죽을 함께 끓여 먹기로 했다. 엄마의 팥죽 사랑을 아는 지인이고 가끔 팥죽을 포장해 우리 집을 방문하기도 하는 이웃이다. 뒤안에 있는, 김장을 하고 담근 겨울 동치미도 꺼내어 온다. 알맞게 익었을 것이다. 팥죽과 함께 먹으면 딱일 것 같다.





새해를 맞아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를 연재한다. 현대인들은 현재를 동강내며 살아간다. 1년을 365일로, 그것을 다시 24시간으로 나누며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 이렇게 일각을 다투며 경제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번아웃이 찾아와 금새 지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다시 '먹고 사는'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용진에서 텃밭을 일구고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가는 백희정 씨의 글은 제철 음식을 가득 담은 시골 밥상처럼 매달 따뜻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백희정 씨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일했다. 40대, 요리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홍승스님 문하에 들어가 사찰음식을 배웠다. 현재 완주에서 비혼으로 어머니를 돌보며 텃밭을 가꾸고, 요리하고, 글쓰는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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