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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 | 연재 [이정현의 환경리포트]
잘려나간 오목대 숲 상수리나무 곁에서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선임활동가(2023-03-16 11:25:03)



잘려나간 오목대 숲

상수리나무 곁에서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선임활동가








1월 11일 아침, 한옥마을 오목대(梧木臺) 숲에서 나무를 베고 있다는 민원 전화를 받았다. ‘그럴 리가 있을까... 아마 조망권 확보를 위해 강하게 가지를 쳤나’ ‘그 와중에 아카시아 같은 외래수종 몇 그루를 잘랐나?’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급히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아, 너무 늦었다. 이미 근경이 60cm에 이르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 45여 그루가 잘려나갔다. 베기로 한 나무 중 작은 상수리나무 2그루만 남은 상태였다.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처참하게 잘린 나무들의 아우성 같았다. 나무들이 잘린 주변에는 외래 도입종이자 조경수인 배롱나무 35그루와 목수국 400주를 심고 있었다. 한옥마을의 지문 같은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세보니 50년 정도 되는 나무들이 많았다. 


다음날, 전주시는 현장 설명회에서 ‘오목대 글로벌 관광환경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심의를 거쳤으며, 조경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산책로 정비, 목재 데크 교체와 난간 설치, 배롱나무 35주와 목수국 400주 식재, 흙콘크리트 포장(1,054㎡)을 하는 것이다. 


오목대가 어떤 곳인가. 한옥마을 역사문화환경보존지구에 도 지정 문화재 보호구역이다. 문반경 300m 이내에서 공사와 수리, 수목을 심거나 파내거나 베어내는 행위는 현상변경 심의를 거쳐야 한다. 문화재는 공간적인 환경 특성과 지역성이 함께 어우러질 때 보존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기린봉 끝자락에 있는 오목대 숲은 남쪽 사면에는 차나무가 자생하고 오동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대나무, 은행나무가 자라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마을 숲이다. 전주 향교, 경기전, 한옥마을은 오목대 숲이 병풍처럼 감싸 더 빛나고 아름답다. 누구나 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고 아담한 숲이다.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자생 수종이다. 옛날부터 마을의 정자나무나 마을을 감추고 보호하는 숲, 사람이 모이는 자리 등에서 심고 가꿔 온 나무이다. 반면, 나무를 베고 심은 배롱나무와 목수국은 중국과 일본이 고향이다. 우리 나무를 베고 외래 나무를 심는 것이라서 오목대 글로벌사업이란 말인가. 기가 막힐 일이다. 


괴목이라 불리는 느티나무는 오래된 마을을 대표한다. 무주와 장수는 등 여러 곳에 괴목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는 건강한 도시 숲의 상징이다. 경관은 물론 소나무보다 탄소흡수율이 1. 8배 높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기능도 크다. 도토리를 줍고 놀던 아이들에겐 신나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사람이 심거나 옮긴 나무는 뿌리를 잘 내리기 어렵고 관리도 쉽지 않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시가 제출한 문화재 심의자료와 두 번의 회의에서 ‘오목대 숲의 고유 자생 수종을 제거하라’라는 논의가 있었는지 알아봤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시가 제출한 안건 설명 자료와 7월 8일 심의의 보완 요구와 8월 5일 심의의 조건부 승인 회의록에도 고유 수종을 포함한 수목 제거 결정은 없었다. 가지치기나 숲 정비와 관련해서는 조경 전문가 자문을 하고, 수목 정비 시 “외래수종 같은 경우 주요 부분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조망권을 확보하여 밀폐된 식생 구조들을 정비하도록 해주셨으면 한다”라는 것이 위원회의 의견이었다. 


전주시는 나무를 자르기 전에 조경 부문 문화재위원의 자문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가 확보한 자문 의견서는 벌목 사태 후 8일이 지난 1월 19일에 작성된 것이다. 이 사업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반이다. 나머지는 향후 대책 등 사후 자문일 뿐이다. 해당 전문가는 “상수리나무 등 향토 수종이 제거되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외래수종 제거 및 차폐수목에 대한 조망권 확보를 통하여 전통성 및 활용성이 제고되었다”라고 썼다. ‘잘못했지만 잘 됐다’라는 황당한 모순어법이다. 


시와 전문가는 한옥마을 오목대의 ‘조망권 확보’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보호해야 할 고유 수종을 제거하는 자의적 판단을 내렸다. 시가 계획한 오목대 주변 환경정비사업 사업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심의를 받았으나 안건으로 제출한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음으로 심의를 받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문화재보호법 시행령과 제 21조의 2항 ‘나. 수목 심거나 제거하는 행위’를 위반한 것이다. 도시 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26조 2항, 정당한 사유 없이 도시 숲 등과 그 부대시설을 훼손한 자’에 해당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전주시에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전달하고, 문화재 현상변경 조건부 심의 결정을 벗어났고, 도시 숲의 원형이 크게 훼손된 만큼 민관협의체를 구성해서 오목대 숲의 복원 계획 수립을 촉구했다. 식생 조사와 동물상 조사를 통해 복원관리 방향을 세우고 자연성과 역사적 공간성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 관리계획 수립을 제안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전주시도 이 같은 제안을 최대한 수용하겠단 의견을 전달해 왔다. 전문가, 환경단체, 주민들과 같이 잘려나간 나무 그루터기 주변에 진달래나 수수꽃다리 등 군락 식재하고, 오목대(梧木臺)란 이름에 맞게 벽오동을 심는 등 숲 전체 복원관리 계획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오목대 숲은 어디에나 있는 도시 근린공원이 아니다. 천만 관광객이 찾는 한옥마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잘 여문 도토리 한 알이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다람쥐와 어치가 바삐 움직여야 한다. 햇빛과 바람과 땅심 등 온 우주의 기운이 보태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목대 숲의 복원과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땅에 자라는 나무를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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