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7.9 | 칼럼·시평 [문화시평]
밤나들이 하다 秀作에 빠지다
윤희숙(2017-09-19 11:03:08)



'문화재 야행'은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문화재가 집적·밀집된 지역을 거점으로 다양한 역사문화콘텐츠를 융·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지역의 문화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문화유산이 지역발전의 핵심 관광자원으로 거듭나 중·장기적 지역재생을 위한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이다.

문화재청이 2016년 처음으로 사업을 공모, 10개 지역을 '문화재야행 10선'에 선정하였고 올해에는 18개지역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전통문화자원과 콘텐츠가 풍부한 전라북도는 올해 문화재야행에 전주와 군산, 고창등 3개 지역이 선정되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의 본향에서 만나는 빼어난 수작인 우리문화유산을 직접 경험하는 전주문화재야행은 5월27일 부터 9월 16일까지 모두 5회에 걸쳐 진행하며 기간이나 규모면에서 단연 전국 최고의 야행으로 손꼽히고 있다.

2017 전주문화재야행 키워드인 '수작'은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유무형문화재가 선조들의 호흡과 손끝에서 시작된 빼어난 문화이자 정신의 뿌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가 지고 또 다른 시간의 문이 열리면 야행이 시작되고 유·무형문화재는 누구나 향유하는 즐거움의 대상으로 마주한다. 박제된 채 과거 속에 갇혀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역할하던 유·무형문화재를 현재에 소환, 미래로 나아가는 중심에 두었다.
전주문화재야행은 축제버전의 종합선물세트다. 체험과 전시, 게임, 공연, 해설투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선물보따리를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문화재를 향유하는 프로그램으로 '달빛기행', '별빛기행', '태조어진 흩어진 빛의 조각을 찾아라'가 모두의 수작에 속한다. 경기전에 있는 태조어진을 지키는 어진수호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해가 진후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지는 한옥마을의 야경을 감상하며 곳곳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전문가의 해설을 통해 하나하나 확인해 가는 찾아가는 참여형 문화체험들이다. 유료참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과 시민들에게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태조어진, 흩어진 빛의 조각을 찾아라'는 참가자 10명씩 한 조를 이뤄 주어진 미션에 따라 어진을 빼앗으려는 세력을 피해 한옥마을 근처, 문화재 및 명소 12곳에 감춰진 태조어진의 조각난 퍼즐을 찾아나서는 어드밴처 게임으로 '런닝맨'이라는 인기방송을 밴치마킹 한데다 우승 팀에게 100만원상당의 상품권이 경품으로 제공돼 젊은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며 야행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 남부시장 청년몰, 남천교, 향교, 자만벽화마을, 이목대, 오목대, 은행나무길, 승광재 등을 모두 거쳐야 하는 이 게임은 한옥마을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전주이씨의 본향인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제대로 다니려면 3시간은 족히 걸리는 답사코스다. 정작 전주에 살고 있는 시민들 조차 한꺼번에 답사하기 쉽지 않은 여정이다. 참가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주어진 힌트에서 미션을 찾으며 1분이라도 시간을 단축하려고 동선을 짜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문화재는 두고 야행만 다녀온 것 같아 아쉬웠지만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는 말하는 한 참가자의 소감처럼.  미션을 풀고 문화재에 접근하는 방식은 재미있지만 1등을 거머쥐는데 급급해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고 다음 미션을 찾아 급히 떠나버리는 등 기획에서 의도한 '재미'와 '전주의 유·무형유산 제대로 알리기'라는 본래의 취지를 크게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문화재 야행'에 가장 걸맞게 유유자적하며 한옥마을의 밤풍경을 즐기는 동시에 유·무형문화재를 잘 활용한 프로그램은 '달빛기행'과 '별빛기행'인 것 같다.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한옥마을 명소와 좁은 골목길을 답사하며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해설을 듣고 은은한 달빛아래 청사초롱으로 어둠을 밝히며 경기전 야경투어를 하고 수복청 대청마루에 앉아 국악공연을 즐기거나(달빛기행) 경기전에서 차를 마시고 어진박물관 앞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 속 숨겨진 역사스토리와 천문학 강의를 듣고 천체망원경으로 별자리를 찾아보는 체험(별빛기행)이야말로 야행을 통해 한옥마을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잔잔한 프로그램이다. 한번에 100명으로 한정한 경기전 야간입장은 참가자들에게 낮에는 맛볼 수 없는 한가로움과 여유가 있는 한옥마을, 경기전의 고즈넉함과 시대를 거슬러 시간여행을 한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전주문화재야행이 다른 지역의 야행과 차별화된 최고의 자랑거리는 고품격 전통문화공연을 열린 무대에서 쉽게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수작, 한국의 수작, 미래의 수작은 인류무형문화의 자산인 전통을 배우고, 지키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빼어난 수작이 되는 기능보유자와 문화재 중견 및 차세대 예술인들의 기량을 선보이는 다양한 공연이다. 
지난 8월26일에도 경기전 광장에서도 대한민국 최고 명인인 김일구(아쟁), 이생강(대금), 김무길(거문고), 지성자(가야금)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문화재급 연주자들의 산조무대가 펼쳐졌다. 국악의 본 고장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매주 인류무형문화의 빼어난 수작인 명인명창을 만나고 중견 국악인, 차세대를 이어갈 젊은 연주자, 국악과 현대음악을 크로스오버한 퓨젼 연주자들을 경기전 광장과 어진박물관 앞, 전주소리문화관, 은행나무정, 오목대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문화적으로 대단한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전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주문화재야행 기간 내내 한옥마을의 곳곳은 기량 있는 명인명창들의 풍성한 공연으로 넘쳐났다.

이제 마지막 남은 9월 폐막야행을 끝으로 2017전주문화재야행의 긴 여정은 마무리될 것이다. 직접 야행의 몇몇 행사에 참여한 첫 소감은 '엄지 척'이다. 전주토박이로 전주와 한옥마을을 너무 잘 안다고 과신하며 너무 혼잡해져서 낯설어진 한옥마을을 멀리했는데 야행참여를 통해 몰랐던 숨겨진 이야기와 장소를 찾아가는 재미와 한옥마을 재발견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주문화재야행이 보여주고 담아내고 싶었던 너무 많은 내용과 형식의 과잉은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너무 많은 개념과 의도가 오히려 야행참여에 걸림돌이 되었다. 너무 많이 차려진 밥상도 문제였다. 소중한 것일수록 아끼고 귀하게 자랑하며 하나하나 맛을 느끼게 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너무 진귀한 음식을 한꺼번에 내어 놓으니 그 맛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너무나 자랑스런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장터에 내다파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 야행에서는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밥상을 기대해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