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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 | 칼럼·시평 [문화칼럼]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
하병두(2017-10-25 16:22:53)

책을 읽으라구요?
책? 왜 읽어요? 책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가요? 책이 정말 좋다면 어른들은 왜 책을 읽지 않죠? 독서는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나요? 독서로 자신을 바꿀 수 있나요? - 얼마전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 관한 토론을 했을 때 나온 질문들입니다. 말문을 트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자, 이 반 저 반에 나온 고1 학생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책과 독서가 그리도 좋다면 어른들부터 열심히 가까이 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마땅하게 기성세대를 변호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간단 명료하게 대답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바로 그렇게 안 읽으니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이다. 자신들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심지어 너희들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힘들 게 사는 거다. - 자신들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그리고 덩달아 너희들까지 말이다. 시험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금세 공감하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말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까지 책과 독서를 멀리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독서로 세상과 자신을 바꿀 수 있다고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꾸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그럼 무엇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바꿀 수 있으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 행복해지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 곰곰 생각하는 표정들이 하나 둘 늘었습니다.


독서하는 사람은 줄고 있지만...
최근 관련 통계들을 살펴보면 독서인구가 얼마나 심각하게 줄어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극지의 거대한 얼음 절벽들이 와르르르 떨어져 사라지는 듯 합니다. 애초에 극지만한 정도의 탄탄한 독서 문화도 없었기에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옵니다.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지면서 독서 생태계는 급속도로 망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눈여겨 볼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무엇인가를 더 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버스나 전철에서 책 대신에 모바일, 곧 휴대전화로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개중에는 게임이나 드라마, 대화창 등에 빠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뉴스나 블로그, 웹사이트들을 자유롭게 찾아다니며 유익하게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줄어들지만 무엇인가 읽는 이들은 더 많이 늘었습니다.
눈 밝게 잘 골라 읽으면 쉽게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정보나 사실, 살아 숨쉬는 물고기 같이 싱싱한 최신 자료들도 금세 접할 수 있습니다. 종이 신문들의 독자는 급속도로 줄고 있지만 인터넷 신문 기사들은 더 많이 읽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렇듯 글을 읽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접하는 정보와 자료들이 다양하고 최신이라고 해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파편처럼 쪼개진 지식들은 쉽고도 충분하게 갖출 수 있으나 그런 글과 정보, 자료 들을 꿰뚫고 있는 기본적인 사고의 틀, 이를테면 패러다임과 프레임을 파악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자신만의 통찰력과 가치관, 세계관을 책 없이 키워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글모음이 책이 아닌데요!
책은 단순한 글모음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글을 단순히 모아놓았다고 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글들이 선택되고, 배열되고, 조절되면서 마침내 책이라는 거대하고 특별한 언어 구조물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글 한 편에서도 이러한 과정은 똑같습니다. 꼭 써야 할 것들이 선택되고, 꼭 써야 할 곳에 배열되고, 꼭 써야할 만큼 조절되면서도 글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책은 글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입니다. 낱낱의 글들이 주옥 같은 구슬이라면 이들을 꿰어낸 보배가 바로 책입니다. 비슷한 과정을 보이는 듯 싶어도 글이 책으로 묶이는 순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더구나 시대 발전에 따라 최근에는 책의 개념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는 시각도 여전히 있지만 그것은 양피지에 익숙한 독자들이 종이책 독자들을 경멸하는 태도와 비슷할 뿐입니다. 예전에는 양피지 책들이 사라지면서 종이책들이 주역으로 떠올랐다면, 이제는 종이책들도 그대로 살아남으면서 전자책들이 다양하고 창조적으로 개발되면서 책의 특성과 외연을 확대하고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책이라는 개념도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사람책이란 말 그대로 사람을 한 권의 책으로 보자는 발상입니다. 따지고 보면 어떤 책이든 생존 아니면 사망 저자들의 사고와 감성의 고갱이들입니다. 아직 기존의 형태인 책으로 묶지 않을 뿐, 충분히 자신의 삶과 경험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대화가 바로 사람책을 읽는 행위입니다. 이는 구술을 듣고 기록하는 구술사 기록 수준을 넘어서서 살아 숨쉬는 책읽기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새로운 책, 제대로 책 읽는 방법
이렇듯 책을 읽으면 개별 글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장점들을 아우르면서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특별한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자책과 사람책 등의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도 쉽사리 기존의 책이 담고 있는 엄청난 정보량, 종이책 중심으로 안착된 독서 방식 등을 쉽사리 대체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금상첨화란 말처럼 종이책을 읽는 혜택을 누리면서 이에 더하여 새롭게 제시되고 구현되는 전자책이나 사람책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특별히 제대로 책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즉 책을 그냥 수동적으로 읽지 말고, 나중에 자신의 책을 직접 쓰겠다고 능동적으로 읽으라고 말씀드립니다. 손으로 쓰면서 책을 읽어야 자신의 책을 직접 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저 기존의 저자가 제시하는 책에만 갇혀 자신만의 사고와 감성을 펼치지도 못한 채 단순히 독해 위주로만 책을 읽으면 곤란합니다.
책을 쓰고자 읽을 때 독서는 훨씬 재미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자유롭게 펼 수 있고, 수많은 인물들과 날카롭게 맞설 수 있고, 사실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검증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책을 한없이 즐겁고 의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책읽기를 싫어할 기성세대들 또한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냥 책을 읽지 말고,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종이책을 안 읽는다고 개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전자책이나 사람책 같이 책의 범위를 넓혀서 책의 진화 속도보다 빠르게 세상과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책을 쓰고 사람책이 되겠다고 나서면서 읽어야 합니다. 책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시키고 진화시키는 만큼 우리들의 삶 또한 근사한 한 권의 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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