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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 | 연재 [수요포럼]
밥꽃, 사랑을 가르쳐주다
밥꽃 사랑, 밥꽃 마중
문성희(2017-10-25 16:50:20)



일시 | 9월 20일(수) 오후 7시 30분
장소 |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
연사 | 『밥꽃 마중』 저자 장영란·김광화 부부


살몃살몃 걷는 부부의 발걸음이 닮았다. 그들의 삶이 발걸음에 고스란히 담겼다. 함께 살아간 오랜 세월속에 방향과 속도가 천천히 맞춰졌나 싶다. 부부가 함께 책을 지었다. 함께 겪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다보니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다. 알아갈수록 부부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나눈 대화로 책을 지은 것이다.
부부가 함께 지은 밥꽃을 마중하기 위해 만난 수요 포럼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과 끝을 가득 채웠다. 서로 다른 암수가 만나 사랑을 하고 꽃을 피워내듯, 밥꽃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배웠다는 부부의 첫 마디에는 가을바람같은 간지러움과 신선함이 느껴졌다.


그꽃, 밥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못한
그꽃.

- 그꽃, 고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이들이 사랑하는 시인 고은. 고은시인의 그꽃이라는 시는 짧은 시지만 울림이 강하다. 한 살 두 살, 한해 두해 삶을 살아가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 없었던 것들이 아니다. 관심을 갖고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른살이 넘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야생화이다. 이른봄 큰개불알꽃부터, 아주작은 꽃망울을 틔우는 꽃마리까지, 야생화는 하나씩 알아가고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부에게도 곡식꽃,채소꽃이 '그꽃'처럼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됐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들꽃(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관련 책도 많았는데, 들꽃(야생화)에 관심을 기울이던 때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던 시기와 얼추 맞물린다고 한다. 이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 삶에 '그꽃'이 되는 것들을 살피면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을 알아 갈 수 있는 듯 하다. 민주주의 발전으로 민초로 대변되던 들꽃(야생화)의 관심이 높아졌듯, 부부는, 이제 민주주의를 넘어 생명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주의라는 거창한 말로 정의 내렸지만, 우리의 밥상에 항상 올라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목숨꽃에 괌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밥꽃,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꽃中, 김춘수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꽃이기에, 부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꽃이다. 이름을 지어 계속 불러 주고 싶었나 보다. 더불어 그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불리면서 하나의 의미로 자리잡기를 바란 듯 하다. 목숨꽃, 농작물꽃, 곡식꽃 채소꽃등 다양한 이름을 생각해 냈다. 그런 고민 끝에 밥상에 올라 사람을 먹여 살리니 밥꽃이라 하자 했다. 처음듣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고, 소리내서 읽어봤다. 원래 있었던 단어인냥 어색함이 없다.



순간의 영원한 기록, 사진
밥꽃마중의 책을 내기까지 9년의 세월이 걸렸다. 모두에게 동등하여, 잡아둘수도 없고, 저축할 수 도 없는 것이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신의영역'이라 생각할 만큼 힘든작업이라 부부는 이야기 했다. 사진만 찍는게 본업이 아닌 부부는 농사를 지으면서 책을 지어야 했기에, 꽃의 찰나를 찍기위해 몇곱절의 노력이 필요했다. 꽃이 피는 시기가 특별했던 벼꽃은 한여름 해가 가장뜨거운 11시~2시에 잠깐 피고 지는 특성상, 그 특별한 때를 놓치면 꼬박 한해를 다시 기다려야 했다. 비단 벼꽃 뿐이었으랴. 때를 놓친 꽃들, 알지못해 암수와 구분하지 못한 꽃들, 찍었는데 흔들림이 있는 사진은 다시 찍기를 반복해야 했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순간의 기록은 영원하기에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 노력들이 지금의 밥꽃 마중 책으로 엮였고, 동영상 작업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아이들의 교육등에 활용되고 있다.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해준 밥꽃
부부가 전해준 첫 번째 밥꽃은 벼꽃이다. 우리가 제일 많이 먹는 곡식 중에 하나지만, 잘 모르는 식물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벼를 본적도 없는 도시 아이들도 많다. 그러니, 밥이 되어 나온 뜨끈한 쌀이 사랑스러 보이기 만무했다. 포럼 자리에서도 살아가며 벼꽃을 처음 본 사람이 많았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한철, 짧은시간 피고 지니 농부들도 잘 못보는 꽃중에 하나가 벼꽃이라 한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암수가 만나 새로움을 창조해 낸다. 그 진리를 잊지 않으면 밥꽃은 모두 고은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꽃'이 되어 우리 삶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꽃 한다발이라 말하는 부부는 밥상에 올라온 곡식과 채소는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 식물이 서로사랑한 결실을 먹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서로 사랑한 결실을 먹는 것
벼꽃 외에도, 오이꽃, 더덕꽃등 사진을 통해 만든 동영상을 보며 부부가 왜 밥꽃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부는 포럼을 듣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선물을 준비했다. 집에서 직접 토종씨앗과 먹거리를 준비해 왔다. 전주에 오기 방금직전에 밭에서 따온 오이를 그 자리에서 싹싹 썰어 한입씩 먹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오이의 맛은 떫기도 하고 쓰기도 한 반면, 토종오이는 달큰하고 시원했다. 다들 그 맛과 향에 놀랐다. 옥수수를 삶지 않고 생으로 먹은 경험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생 옥수수를 아그작 씹어 오물오물 거리는 입가에 미소들이 번졌다. 생옥수수를 처음 맛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흡사 아이들이 신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의 표정 같았다. 나름 다들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처음 느끼는 맛이라니. 놀랍기도 했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왜 붙어있을까 가끔 궁금했던, 옥수수 수염 하나하나가 수꽃가루를 만나면 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가 된다는 사실이다. 벼꽃도 이삭 하나에 작은 벼꽃 100여송이가 피고 우리가 먹는 쌀 한 알 한 알이 그렇게 영그는 것이라 한다. 암수가 사랑을 해서 얻은 것들. 모두 사랑의 결과물이 열매 하나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개량종들에는 암,수가 사랑을 하지 않고도 열매가 맺히기도 한다. 부부는 이를두고 사랑을 모르는 놈이라 칭했다. '사랑을 모르는 놈'이라는 문장을 가만이 생각해봤다. 우리 삶에도 씨앗의 품종이 개량되듯, 사랑의 의미도 개량되어 퇴색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도 모른채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는가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답은 없지만 본질은 있지 않을까?


사랑의 의미, 사랑할수록 더 알아가고 싶은 것
"사람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나 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 저에게는 사랑, 창조, 생명이 그 철학과 가치를 반영하는 키워드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고, 사랑의 결과물인 밥꽃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랑을 이해하고, 알아가며 실현하고 키우는 것들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삶의 철학을 나누며, 포럼을 듣는 이들에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물었다.
차갑지 않은 따뜻한 것, 더덕 꽃받침처럼 조건없이 받쳐주는 것, 줄 때 더 행복 한 것,
생명체들이 가져야만 하는 감정, 마음이 닿는 것, 서로 알아가는 것, 더 생각하는 것,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다른게 신기했다. 아마도 본인이 경험하고, 공부한 사랑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단어에는 에너지가 존재한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불리우며 쌓인 힘. 그것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본질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본질에 어떤 생명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창조가 일어난다. 사랑은, 창조하여 생명을 길러내는 위대한 힘이다. 그 위대한 힘이 열매 하나, 낱알 하나에 들어있기에, 포럼의 처음과 끝이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장영란, 김광화 부부 덕분에 이제 보이지 않았던 밥꽃들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밥꽃이 그꽃이 되어 우리 삶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더 많이 바라보고 더 많이 사랑하며, 낱알 하나와 열매하나에 들어 있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계속 알아가는 삶을 살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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