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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 기획 [창간기획 ⑤]
제주를 기록하다
김순남(2017-12-11 11:52:11)



험난한 지역출판의 인연

지역에서 출판 사업을 한다는 것은, 그곳이 특히 제주도라는 섬일 경우, 상당히 비현실적인 일이다. 어쩌면 무모함을 넘어선 무식한 짓일 확률이 아주 높다.

우리 출판사의 규모는 단출하다. 시인이신 김순남 대표님과, 북 디자이너 1인, 교정교열 담당 1인, 총무회계 담당 1인으로 총 4인이 운영하는 지역출판사다. 출판사의 창립연수는 18년이나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꽤 알려진 출판사다.

전임 출판사 사장님이 출판에 손을 댄 건, 순전히 주변에 문학한다는 선후배가 많았던 탓이다. 1999년 당시 제주도에는 이름만 있고 진짜 출판사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소위 서울이나 뭍나들이를 통해 책을 발간하기 마련인데, 대부분 조악하기 그지없는 삼류출판사에서 비용은 줄만큼 충분히 주었으나 결과는 별로인 자비출판이 대부분이었다. 비용을 댄 만큼 책이라도 예쁘게 나와야 하는데, 그도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화가였던 전임 사장님이 순전히 컴퓨터그래픽을 한다는 죄 때문에 장정을 몇 권 해준 게 시작이었다.

모르고 덤비면 용감하다고 장사의 기본인 손익계산 안하고, 그래도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서적이라면, 출간 이유가 서기만 하면 가능한 출판하다보니 어느새 200여 권을 넘겼고, 출판사도 18년이나 버텨 온 것이다. 사실 자본을 투자해 시작했다면, 첫해에 거덜 날 일이기도 한데, 다행히도 사장님의 손재주에 기댄 디자인 외주 수입은 나름대로 괜찮아서 디자인으로 번 수입으로 출판에 충당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언제든 '아니면 털면 된다.'라는 짧은 생각이 18년을 이어 온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문화계의 다른 일 때문에 잠시 출판사를 떠난 전임 출판사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판사 등록하고 사무실을 낸지 3년 만에 아! 내가 저지른 일이 무모한 것임은 깨달았으나, 그것이 무식까지 한 짓인 줄은 깨닫는 데는 몇 년 더 걸렸지."



지역출판은 남는 장사다

각 출판사는 그동안 제주지역의 문화예술과 인문학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해왔다. 이는 본격적인 기획출판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지인들로 이루어진 필진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때문에 원고를 가져오는 학자들의 글을 마다하지 못하여 앞뒤 계산 없이 출판하여 그 데미지를 자초하는 경우가 빈발한다.

또한, 제주4·3과 관련된 서적들은 우리 출판사의 가장 중요한 관심영역이다. 과거엔 책의 성격상 아무데서나 출판하기도 꺼려해서 출판한 경우도 많았다. 실제 4·3시집 중 하나는 서울출판사에서 부드러운 시는 따로 묶고 거기에 실리지 못한 소위 "피 냄새 나는 낙시(落詩)"들만 모아서 와 출판한 경우도 있었다.

제주도는 신화의 섬, 무속의 섬이기도 하다. 당연 민속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출판사의 저작물들 중 민속학이나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제주학 관련 서적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 주종인 4·3과 제주학의 전문서적들은 그야말로 대중성에선 빵점인 책들이다. 이 책들의 출판이 18년차 각 출판사가 아직까지 임대사무실을 사용하는 근본적 배경이다. 이 서적들은 내고 싶은 책이긴 하지만 각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주요인이다. 그렇지만 이 책들은 하나같이 소중하다. 온전히 지역문화의 아카이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출판이 그 지역문화의 총량이라고 본다. 즉, 지역에서 생산된 지식은, 특히 인문지식은 출판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므로 잘 팔리지 않는 제주문화 제주학 관련서적들은 제주인문지식의 총화이기도 한 것이다. 지역출판의 근본적 존재이유를 보여주는 책들이다.

잘 팔리면 이문이 남겠지만, 각의 책들은 지역의 지식저장고로 남는다. 잘 팔리지 않지만 지역의 지식과 문화의 거처로 오래도록 남는 책, 그 책을 만드는 일이 각이 가고자 하는 길이다. 그래서 험난하긴 하지만 제주의 책으로 오래 남을 책들을 만드는 일, 각이 지속하고 싶은 일이며 존재이유다. 이 길을 오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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