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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위안부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아찔한 장르적 변주
<아이 캔 스피크>
김경태(2017-12-11 13:23:20)



이 영화는 위안부 문제를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대중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우회로를 개척한다. 그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까지, 우리가 한참 동안 목격하는 것은 8,000건이 넘는 민원을 넣은 '민원왕' 할머니 '옥분(나문희)'과 구청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재개발과 영어 공부를 둘러싸고 티격태격하는 코미디이다. 이와 맥락을 같이 하며, 영화는 구체적인 시대성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민원왕이라는 민폐 캐릭터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갈등은 동시대의 어느 도시와도 충분히 공명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심지어 민재는 '명진구청'이라는 가상의 구청에서 근무한다. 이로써 영화는 서울의 익숙하고 흔한 어느 동네라는 시공간의 익명성을 획득한다. 그 동네는 그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닮아있을 뿐이다. 영화는 그 속에 역사를 기입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 그만큼 관객은 부담 없이 편안하게 그 '픽션' 속에 몰입해 들어간다.

옥분은 오랜 친구인 '정심(손숙)'을 만난다. 그들에게는 함께 공유한 무슨 힘겨운 사연이 있는 듯하지만, 영화는 아직까지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영화는 그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는 시점을 계속 지연시키며 민재와 옥분의 관계 변화에 주목한다. 원칙과 절차에만 충실했던 민재는 옥분과 진심어린 소통을 하면서 인간적인 공무원으로 변해간다.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의 전개에는 차츰 실제 사건이 스며든다. 그것은 2007년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한 미의회의 위안부 청문회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사건과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자막을 적극 사용한다. 위안부 문제의 급작스러운 개입은 마치 영화가 준비한 반전처럼 보인다. 아니, 영화의 진정한 반전은 익명의 시공간이 갑자기 실제 사건에 의해 고유명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장르의 변주, 혹은 심하게는 장르의 배신이다. 그와 더불어 관객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 혹은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층위로 올라서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제 코미디 속 과장된 허구의 캐릭터는 현실의 말쑥하고 진지한 옷을 차려 입는다. 

치매에 걸린 정심을 병문안 온 옥분에게 증언을 부탁하는 인권단체에 의해 관객은 그녀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옥분은 정심을 대신해 용기내어 미의회에 나가 당시 위안부로서로서 겪었던 치욕들을 털어놓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기로 결심한다. 뒤이어, 민재를 비롯한 그 주변 사람들은 관객보다 조금 늦게 언론을 통해 그 소식을 듣는다. 그렇게 그녀가 위안부로서 '커밍아웃'하는 순간, 모든 갈등들은 일거에 해소된다. 위안부로서의 끔찍한 경험을 혼자 감내하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고행 아닌 고행을 평생 했는데, 무슨 행동인들 용서받지 못하겠는가! 민재는 옥분과 갈등을 빚은 후 그녀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그리고 민원을 쏟아내며 주변 사람들과 구청 직원들을 귀찮게 했던 과거는 모두 이해되고 또 용서된다. 관객도 예외 없이 그녀를 응원한다.

마침내 부모가 없는 민재와 자식이 없는 옥분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준다. 이제 갈등의 구조는 옥분 대 민재와 주변 사람들을 넘어 한국 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과의 대립으로 치환된다. 그것은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다. 마지막으로, 2017년 현재의 위안부 상황에 대해서 자막으로 설명하면서 그 사실을 명백히 환기시킨다. 동시에 옥분의 모델이 된 위안부 할머니가 증언하는 실제 사진을 함께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완전한 픽션에서 완전한 사실로 아찔하게 돌아 나오며 끝을 맺는다. 그리하여 익명으로 앉아있던 관객들에게 시대의 아픔을 각인시키며 그들을 '한국인'으로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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