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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 | 연재 [TV토피아]
왜 복고를 버렸나?
슬기로운 감빵생활
박창우(2018-02-07 17:22:45)

아마도 많은 드라마 팬이 깜짝 놀랐을 것이다. 특히, <응답하라> 시리즈에 푹 빠졌던 시청자라면 더더욱.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다시 만났다. 그리고 드라마를 만들었다. 제목은 당연히 ‘응답하라’로 시작할 거라 예상한 이가 적지 않았을 터. 그런데 웬걸.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기대한 시청자의 허를 찌르며 안방극장에 들어섰다.

바뀐 건 제목만이 아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이번드라마에서 자신들의 상징과도 같았던 한 가지를 더 버렸다. 바로 복고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시대적 배경은 현재다. 1997년도를 시작으로 1994년도, 그리고 1988년도까지 시계바늘을 돌렸던 신원호 사단은 팬들의 바람과 달리 ‘시간여행’을 멈추고, 대신 ‘공간여행’을 택했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교도소 생활을 드라마의 주요 스토라인으로 구성한 것이다.

다음번 이들이 찾아갈 시대를 두고 1980년도냐 아니면 2002년도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던 시청자 입장에서는 다소 김빠지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감빵’이라니. 여전히 ‘응답하라’의 향수에 젖어있던 대중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쉽사리 정(?)을 주지 않았다. 4.6%(닐슨코리아 기준)에서 시작한 1회 시청률은 그 방증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러했듯,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회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으며 이미 9회에 이르러 7.3%를 돌파, 지상파 수목드라마 시청률을 단숨에 넘어섰다. 신원호 사단 특유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개성 넘치는 캐릭터, ▲교차 편집을 통한 반전의 묘미 등이 어우러지면서 드라마의 매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교도소라는 제한 적인 공간에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혹시나 교도소와 수용자에 대한 지나친 미화로 욕을 먹는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도 앞섰다. 하지만,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복고를 포기한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복고를 벗어던짐으로써 보다 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메시지에 더 충실할 수 있었다.

가령, 국회의원 아들이 주도한 병영 사고로 살인자 누명을 쓰게 된 유대위 에피소드나 사장의 거짓말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공시생 민성(신재하 분)의 이야기를 보자. 이들은 결국 돈과 빽이 없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네 현실을 상기 시키며 비록 수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또한, 교도소 내부의 부정과 비리를 바로잡기 위해서 ‘적폐청산’을 외치며 공정선거를 추구하는 고박사(정민성 분)의 모습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던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배경은 바로 ‘복고’ 대신 ‘현재’에 집중한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만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혀 짧은 소리로 등장마다 웃음을 빵 터트리는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분), 천재와 바보를 오가는 헤롱이(이규형 분) 등은 이 드라마를 시트콤 못지않게 만들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국,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응답하라> 시리즈 전체를 관통한 ‘공감’과 ‘위로’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면서도, 결국 어디서 무얼 하며 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희노애락이 있으며, 인간이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각인시켜 준다. 따지고 보면 <응답하라> 시리즈가 뭐 별거 있어서 대중이 환호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점을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또 한 번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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