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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박제된 기억을 넘어 생동하는 관계로
원더풀 라이프
김경태(2018-03-15 10:21:19)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원더풀 라이프>(1988)는 죽은 이들이 영원한 안식에 들기에 앞서 머무는 림보를 배경으로 한다. 망자들은 그곳에서 7일 동안,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골라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 완성된 영화가 마음에 든다면 그들은 다른 모든 기억들은 잊고서 그 기억 하나만을 간직한 채 영원히 잠들 수 있다. 그러나 끝내 선택을 하지 못한 이들은 그곳에 남아 다른 망자들의 기억을 영화로 만드는 일을 도와야 한다.
직원들 앞에 마주앉은 망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소중한 추억들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그러면 직원들은 그들이 단 하나의 기억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길잡이 노릇을 한다. 섣부르게 고른 기억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처음에는 디즈니랜드에서 핫케이크를 먹고 놀이기구를 탔던 기억을 선택했던 여중생은 '시오리(오다 에리카)'의 조언으로 어린 시절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기억으로 바꾸게 된다. '모치즈키(이우라 아라타)'는 선택에 어려움을 겪던 노인에게 그의 일생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들을 건넨다. 그것들을 재생해서 찬찬히 지켜본 노인은 마침내 아내가 죽기 전 함께 했던 어느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로 결정한다. 그밖에도, 직원들은 기억을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게 더 중요한 사람, 그리고 선택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 등과 마주하며 갈등을 겪기도 한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하나. 분명 림보에는 망자들의 기억이 담긴 테이프들이 보관되어 있다. 왜 그것들을 그냥 보여주면서 그들의 기억을 뚜렷하게 환기시켜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세트를 꾸미고 소품을 챙기며 연기를 시키는 번거로운 연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당연하게도, '재연'으로 재구성된 기억은 원래의 그것만큼 완벽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완성된 영화는 과거의 실제 경험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결국 앞선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왜 재연을 개입시켜 날 것 그대로의 기억에 변형을 가해야만 할까? 아마도 그것은 기억 자체가 물신화되는 것에 대한 회피일지 모른다. 다시 말해, 기억의 훼손을 감내하면서까지 획득해야만 하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화 과정은 현실과 그것의 재현 사이의 간극을 의도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에 다름없다.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을 모방하고 흉내 내지만, 결코 현실과 똑같아질 수 없기에 언제나 현실보다 열등하다. 감독은 현실과 재현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그 거리를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간극을 사람들의 분주한 소통으로 채운다. 내밀한 추억을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과 공유해야만 한다. 영화라는 집단 창작 작업은 타인들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따라서 그것은 그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낯선 타인들을 통해 마지막으로 체온을 나누도록 해준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친밀한 소통이라고 재차 강조하듯, 감독은 열심히 촬영한 재연 장면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 과정은 상호적인 것이라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깊은 인간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모치즈키는 시오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영원히 간직할 기억을 찾게 된다. 그것은 사후에도 지속되는 무수한 관계들 덕분이다. 현재의 관계가 과거의 관계를 구원한다. 그러나 현재의 관계가 과거의 관계를 밀어내기도 한다. 모치즈키를 짝사랑하는 시오리는 그와 함께한 림보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선택을 보류한다. 그녀에게는 생전의 기억보다 사후의 기억이 더 중요하다. 관계들은 그렇게 뒤얽혀서 기억들의 경쟁을 유발한다. 그리하여 망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물은 박제된 기억을 넘어 그 생동하는 관계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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