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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 | 연재 [여행유감]
여행에서 나를 바라보다
방송 프로듀서 정혜강의 장가계여행
정혜강(2018-03-15 11:00:03)

이 모든 것이 한 종편 채널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다.
연예인들이 모여 일반 관광객과 함께 패키지 여행을 떠나는 예능 프로그램 말이다.
재방송까지 보며 감탄을 했던 나의 부모는 지난해 늦은 가을, 휴가를 하루도 못쓴 딸(바로 필자)에게 중국 장가계에 함께 가자며 말씀을 꺼내셨다. 물론 비용은 내가 내는 것으로 하여.
효도 관광의 꽃. 죽기 전에 봐야하는 세계 최고의 절경. 장가계.
효도 관광에서 한번(어르신들만 가는 곳에 따라가는 아이 같아서), 패키지에서 또 한번(필자는 자유여행 애호가라고 주장), 슬그머니 내키지 않은 감정을 느꼈지만 나는 거부하지 못했다. 나는 이분들게 효도라는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의 절경이란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검색창에 장가계를 쳐보았다. 중국 후난성 북서부에 있는 관광도시로, 중국 최초 국가삼림공원으로 지정,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록, 영화 아바타의 배경. 화려하다.
뾰족뾰족한 산봉우리가 마치 잘 깎아 모아놓은 연필처럼 보인다. 그 아래로 신비로운 구름이 흐른다. 오래 전 삼국지에서 본 산수화인 듯도 보인다. 
대표적인 효도관광 상품이라고는 하지만, 아니 세상 구경에 노인과 어린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닐테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덜컥 인터넷을 뒤져서, 가장 저렴한 패키지로 내친 김에 예약을 하면서 칠순 부모와 마흔 넘은 딸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예약 당일부터 출발 전까지 약 3주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린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체력을 만드셨다. 체력이 달려 행여 단체여행에 폐를 끼칠까 미리 걱정을 하셨다.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여행 준비를 철저히 하셨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작 힘든 사람은 젊은 나였다. 저질 체력에 힘들고, 고소공포증에 힘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정에 힘들었다.


몇 년 전 유럽으로 오랜 친구들과 자유여행을 떠났었다.
일정부터 교통편, 식사, 잠자리까지 내 손으로 정하다 보니 떠나는 일보다 준비하는 일이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었는데, 고된 만큼 기억에도 오래 남아서 다음 여행도 자유여행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패키지라니. 부모는 외국까지 나가서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정해진 코스로 가는 여행 또한 의미있는 거라고 설득하셨다. '그래, 나는 바쁘고 시간이 없지'라고 시간 핑계를 대며, 가자가자. 가도 된다. 스스로 타협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의 염려는 날씨였다.  
출발이 11월 24일이었고, 이미 한국에는 그 일주일 전 첫눈이 내렸다. 올해 겨울은 일찍 시작이 되고 생각보다 혹독했다.
중국에서 우리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고산지역이니 분명히 추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방한 관련 용품을 여러 번 장만했다. 서른 장의 핫팩과 1인용 전기요와 눈이 올때를 대비해 아이젠과 등산용 스틱과 마스크, 모자, 장갑 등등 거의 이삿짐 수준의 여행가방을 쌌다가 풀었다. 그런데 다 필요 없었다. 그곳은 11월 24일, 한국이 영하의 기온을 넘나들 때, 약 3월 중순 정도의 느낌이 나는 적당한 따뜻함이 있었다. 산 정상에 올라도 독하게 춥지 않았다. 신선하고 따뜻하고 신성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평소 사소한 일에도 감동을 하는 우리 가족은 역시나 축복을 받은 듯 행복해 했다.   


장가계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관광지였다.
삼십 층씩 하는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밤늦게까지 조명이 화려했다. 음식이 관광객의 입맛에 맞춰져 있고, 잠자리도 훌륭했다. 현지인의 삶의 질도 상당히 높아 보였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그 무엇보다 자연. 그 자체였다.
장가계는 산으로 둘러 싸인 도시였다. 그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이 쪽 산, 저 쪽 산, 앞산과 뒷산, 옆산을 훑어보고 오는 여행이 바로 장가계 관광이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개성이 다르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기암 절벽과 솟아나온 봉우리들,
위태롭게 켜켜이 쌓인 바위들, 그 바위산을 뚫고 돋아난 나무들, 그 압도적인 풍광에 누구나 사로잡혔다.
대표적 '효도'관광지라는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형태의 산과 강과 절벽과 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가족은 자연의 거대한 크리에이티브함에 여러 번 경건해졌다. 또한 나의 상상력이라는 게 얼마나 작고 좁은 것인지 확인을 하게 되었다. 나의 부모는 자녀를 모두 데려오지 못함을 아쉬워하셨다. 좋은 곳에 가서, 좋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여행이 주는 하나의 선물. 결국 외부의 환경으로 인해 나를 발견하는 것. 바로 이것이 여행의 미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산이 높다하여, 어르신들이 엄두를 못내는 상황도 아니다. 장가계는 산의 높이에 비해 제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팔순이 다 된 어르신도 내친 김에 산두어개를 반나절에 주름 잡을 수 있다. 난생 처음 보는 기가 막힌 절경 위에 바위산 자락을 뜷어 길을 내고, 구불구불 차로를 만들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케이블카, 리프트, 모노레일, 듣도 보도 못한 각종 다리 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고단하지 않아 편리했다. 시설 하나를 이용할라치면 그것이 세계 최고, 세계 최장, 세계 최대의 기록이라고 자랑하는 대륙의 허세도 왠지 그럴 듯 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어도 아름다웠을 그 곳들이 관광의 이름으로 잘리고, 뚫리고, 이어 붙어져 있어서 편리하게 오고가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꼭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면,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흘러가게 해주었으면...
장가계 여행 패키지도 패키지 여행이 거의 그렇듯 구경 반, 쇼핑 반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오전에 산 구경, 물 구경을 마치면, 오후에는 가게인 듯 가게 아닌 가게 같은 곳으로 관광버스들이 몰려간다. 방마다 관광객들이 십 여 명씩 앉아서 강의 같은 것을 듣고 있다.
이것을 두르거나 먹거나 덮거나 차게 되면 마치 영원불멸 불로불사 만병통치 할 것 같은
수없이 많은 물건들을 팔아 제낀다.
한방 공진단, 중국 보이차, 대나무섬유, 게르마늄 팔찌, 라텍스이불, 깨, 버섯,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 서핑을 약 오분만 해보면 얼마나 폭리인지 금방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계약했던 여행비용의 배가 넘는 옵션이 붙어 있었다. 맛사지며 공연이며 정말 멋있는 절경은 옵션에 묶여 있었다. 결국 부모들은 쌈짓돈을 꺼내 옵션을 돌고, 우리는 여행지에서 사소한 마찰을 겪었다. 때문에 여행상품의 후기에는 불만이 섞인 후기들이 올라오고 이것은 좋았던 여행의 얼룩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너나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그곳에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관광(觀光)이라고 하지 않던가. 빛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색채 뿐 아니라 향기와 소리와 느낌과 분위기, 그리고 주고 받는 공명에 이르기까지.
가슴 설레며 경험하는 빛! 가족이 함께 빛을 찾아 떠났던 이번 여행은 지금도 우리에게 작은 불빛으로 흔들리고 있다.  


아, 한가지. 개그맨 정형돈이 그 문제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유리로 만든 다리며 고산 가장자리를 따라 위험하게 만들어진 잔도(棧道)를 호들갑스럽게 울고 불며 건너는 것을 보고, PD의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 또한 그곳을 건너며 대단한 공포를 느꼈다. 못가겠다며 부모에게 몇 번을 떼를 쓰며 끌려갔는지 모른다.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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