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3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소동극이 빚어낸 우정
Tangerine
김경태(2018-03-15 11:06:43)



션 베이커 감독의 <탠저린>(2015)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따뜻한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소외된 계층들이 벌이는 작은 소동극이다. 유색인종 트랜스젠더 여성이자 매춘부인 '신디'와 '알렉산드라'는 절친 사이이다. 마약 소지 혐의로 28일 간의 수감 생활 후에 출소한 신디는 알렉산드라로부터 남자친구인 '체스터'가 '다이나'라는 매춘부와 바람을 폈다는 얘기를 듣고 분노하며 그들을 찾아 나선다. 반면에, 알렉산드라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친구들에게 저녁에 클럽에서 예정된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은 잰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취약한'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일상적으로 감내해야하는 혐오와 위협의 시선 따위는 그들을 결코 움츠려들게 할 수 없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깊은 심도로 그들과 배경을 동시에 또렷하게 담아내며 그 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당당한 그들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다이나를 찾아낸 신디는 그녀를 거칠게 끌어내어 체스터와의 삼자대면을 위해 버스에 오른다. 그러나 그들은 알렉산드라의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그 만남을 잠시 미룬다. 앞서 열띤 홍보에 응한 친구는 결국 신디뿐이었다. 서로를 헐뜯던 신디와 다이나는 함께 관객이 되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알렉산드라의 모습을 집중해서 지켜본다. 그 와중에 신디와 다이나는 잠시 화장실에서 마약을 공유하며 화장을 고쳐주기도 한다. 어느새 서로에게 으르렁대던 모습은 사라지고 의도치 않은 자매애가 스며든다. 그 순간만큼은 치정극에서 벗어나, 같은 상처를 지닌 여성으로 서로를 응시한다.

한편, 알렉산드라는 공연비 마련을 위해 남자를 물색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때마침, 아르메니아에서 이민 온 택시기사 '라즈막'을 만난다. 그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택시에 태우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그는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을 향한 성적 욕망을 품고 있으며, 특히, 신디를 짝사랑하고 있다. 헤어지기 전, 알렉산드라는 그에게 '탠저린' 향의 방향제를 선물한다. 그들은 매춘부와 고객 관계를 넘어 우정을 나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서로에게 보다 관대하게 마음을 열도록 해주는 마법과도 같다.

마침내 도넛 가게에 저마다의 목적으로 모여든 등장인물들은 소란스러운 폭로전을 벌이며 서로의 진실과 마주한 뒤, 흩어진다. 다이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포주에 의해 문전박대 당하며 문 앞에 주저앉는다. 장모에 의해 성적 취향이 들통 난 라즈막은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들의 외면을 받으며 소파에 몸을 묻는다. 몸을 팔지 않으면 주거조차 불확실한 매춘부의 가난과 가부장적 가족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가장의 무게는 스스로를 짓누른다. 그들은 비로소 자신과 대면하는 외로움에 사무친다. 그리하여 뒤늦게 깨닫는다. 그 반나절의 한바탕 소동이 빚어낸 서툴고 성긴 관계가 그래도 너무나 따뜻했음을, 서로 다투고 부대낄지언정 그 순간이 너무나 솔직하고 인간적이었음을.

신디 역시 알렉산드라와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외면한 채 홀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알렉산드라는 신디를 달래려 뒤좇는다. 그때, 트랜스포비아들이 신디에게 오줌을 끼얹고 도망친다. 알렉산드라는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그녀를 재빨리 빨래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옷가지와 가발을 벗는 것을 도와준다. 가발이 없는 머리를 어색해하는 신디에게 기꺼이 자신의 것을 벗어 씌워준다. 그들은 언제나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약자들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겹겹이 쌓인 약자의 정체성으로 살아남고 또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간절하다. 따라서 다이아에게는 신디와 알렉산드라가 보여준 속 깊은 우정이 절실하고, 라즈막에게는 그들처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독려할 우정이 필요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