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잦다. 금방이라도매화가방울방울터질것처럼따뜻한날이계속되다가도비가오면다시추워졌다가금새또따뜻해지는나날들. 얼었던땅이녹자마자겨우내잠잠하던풀들이텃밭가득올라오기시작하고, 파란봄까치꽃이발에채인다. 성미급한농부들은그새를못참고감자를심기시작하였고, 나는 "뭐시급한디~" 이러다가도넘들다심고나니조급증이생겨꼼지락꼼지락감자와토종완두를심었다. 이불밖으론한치도나가고싶지않던그추웠던겨울이이제공식적으로가버렸다. 그래도움츠러들었던몸은쉽사리움직거릴생각을안하고, 마음은자꾸만놀고싶은그런날들이다.

작년부터우리동네청년들은특별한봄맞이를시작하였다. 이른바목매달러가는날, 옛날말로허드렛날을쇠기로한것이다. 어르신들께귀동냥으로들은옛풍습인데, 긴겨울농한기를마치고본격농사철이시작되는 2월초하루면마을청년들이뒷산으로올라가목을맸다고한다. 이무슨전설의고향같은소리인가하니, 짱짱한동아줄을들고올라갔으면마을청년들씨가말랐겠지만, 다행히도썩은동아줄을들고가서'이눔의지겨운농사일, 나는오늘만살고죽을라네!'하였단다. 요즘말로 YOLO(욜로-You Only Live Once) 정신이다. 썩은동아줄로목을매달고나서는겨울의게으름뱅이는영영보내버리고새로운봄을맞아맛있는것들을챙겨먹고부지런한농부로서일할준비를하는허드렛날.

올해는음력이늦어농사일은벌써시작을해버렸지만, 몸도찌뿌드하고핑계삼아놀거리를놓칠수없는지라며칠전부터뭘하고놀것인가궁리를시작했다. 벌써다들일을시작하셨으니놀자소리가안먹히면어쩌나하던차에풍물치는것을좋아하는석산마을정호형님이앞장서카톡에다가"허드렛날은뭐하시나요"하고운을떼었고, 내가잽싸게"뒷산으로소풍갑시다"하고댓글을달고, 상쇠석균형님이"좋은생각"이라재청을하니모임은일사천리로진행되었다.

소풍의구색을갖추고자나는전날저녁부터제법분주해졌다. 지난해빚어놓고차일피일거르는걸미루던술한말을이참에걸렀다. 그냥먹어도맛있는배를한박스나썰어넣어고두밥과함께발효시킨술이다. 달달한맛으로시작해시원한배향이잔잔하게남는다. 이런술엔담백한안주가어울릴것이다.

창고에쟁여둔, 작년에 20kg를심어딱 25kg 수확한메밀을꺼냈다. 모였다하면누가더농사를못지었는지경쟁을하는초보농부의초라한결실이지만, 그래서더값진메밀을빻았다. 씻을때제대로일지않으면메밀묵에모래가자글자글씹혀서영먹을수없게되어버리기때문에여러번씻고조리로일어서햇볕에말렸던것이다. 곱게가루를낸다음물을적당히섞고거름망에다걸러서묵을쑤었다. 불위에올려놓고계속저어주다보면어느새뽀글뽀글끓으면서엉겨붙는다. 예전에다니던회사앞에메밀전문점이있어가끔묵사발이니메밀국수따위를사먹긴했어도메밀묵을내가만들고있을줄을그땐상상이나하였을까. 메밀묵을틀에부어찬곳에식혀놓고, 귀리랑밀도도르르빻아서빵반죽을하였다. 반죽이적당히부풀어오르고나면냉장고에밤새숙성을시켜놓는다. 아침에일어나시간맞춰빵을구워내려고분주한중에며칠전캐둔냉이가생각나서냉이주먹밥도조금만들고, 바구니에묵이며, 주먹밥이며, 빵, 술을담고뒷산으로올라가는것이다.

모이기로한시간보다한시간이나일찍올라갔지만, 이미몇몇은올라가자리를잡고있다. 뒤이어생후 6개월아기를안고복길이네부부등장, 그리고이웃동네언니들이랑정호형님까지올라오셨다. 역시먹는것은아낌없이내어주시는민이장님이민어회, 민어지리, 복어무침까지푸짐하게해오시고, 다들술한잔두잔주거니받거니하다가전주에서오신손님이가야금을풀어낸다. 가야금소리가고요하게산을깨워내고나니상쇠가쇠를들고너도나도자연스레악기를하나씩둘러매었다. 깨갱깨갱깨갱깨깽깽깨으깽~ 덩덩덩더쿵이쇠, 징, 장구, 북을치면, 악기를안든이들은누구하나시키지않아도춤을추며논다. 여섯살진이도덩실덩실춤을춘다. 간만에장구를치려니팔도아프고, 다리도아프고, 아이고되다그러면서도재미지다고노는꼴이우스워서웃고, 한바탕그리놀았다. 해가뉘엇질무렵아쉬움에또한바탕놀고나니겨우내움츠려든근육이"이제일할준비되었남?"하고묻는다. 봄꽃처럼생기를한껏안았다. 

며칠새냉이는꽃대를올렸고, 이제그만치놀았으니일을하라고재촉을해댄다. 유난히봄비가서나흘걸러한번씩주룩주룩오는것이비는많이와도걱정이고안와도걱정이니올해농사가어찌될까괜한걱정을슬쩍했다가다시내려놓는다. 걱정이야하건말건하늘이하는일이니어쩌겠는가말이다.
"놀아도너무허망이하면, 늙어지면서후회되리니, 바쁠때일하고한가할때틈타서, 좋은승지도구경하며, 할일을허면서놀아보자."(사철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