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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기한 과학서적
이정모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휘현(2018-05-03 11:38:33)



지난 3월 14일의 늦은 밤이었다.
그 날 타계 소식이 전해진 스티븐 호킹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나는 우리 집 서재에서 그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를 꺼내 들었다. 20년 전 쯤 구입해 조금 읽다가 재미없어서 거의 내팽개쳐버린 책 중 하나인데, 이번에는 스티븐 호킹의 죽음이 개입되었으니 책을 대하는 느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 이렇게 또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인가….'
나는 괜한 미안함마저 머금고 한 위대한 물리학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다. 이번엔 완독의 열정을 보여주리라!
책 몇 페이지를 넘기니 알쏭달쏭한 그림들이 나왔다. 그래, 과학 분야의 서적을 대하는 데 이 정도쯤은 감수하고 넘어가자. 그런데…. 점점 읽는 페이지 수가 많아질수록 채 이해되지 않는 단어와 소화할 수 없는 이론과 문맥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음… 물리학자가 아닌 내가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모르는 것은 건너뛰면서 과감하게 돌파해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내 독서의 레이스는 스티븐 호킹이 설파한 블랙홀(Black Hole) 이론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려 하였지만, 그건 오로지 마음 뿐. 내 정신은 이미 잠의 블랙홀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2018년 3월 14일 스티븐 호킹이 떠나 간 그날 밤, 어쩌면 나는 꿈속에서나마 저 광활한 우주를, 그리고 내 마음을 한없는 경외감으로 끌어당기는 블랙홀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잠을 달게 잔 탓(!)인지 간밤의 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학문의 분야를 문과와 이과로 단순무식하게 나눠 보자면, 그간 내 독서의 내력은 매우 편향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읽고 또 소장하고 있는 책의 98퍼센트 정도는 문과로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머지 2퍼센트의 이과 계통 서적들 또한 완독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내 정규교육의 이력에서 수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은 도통 나와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 듯싶다. 아니, 궁합을 따질 게 아니라 그 분야에 관한 한 관심과 소질 둘 다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당연지사 성적이 좋게 나올 리는 없고, 그나마 기를 쓰고 문과 계통에서 올려놓은 점수는 이과 과목에서 팍팍 깎아 먹기 일쑤였다. 대한민국 학벌 피라미드 사회에서 이과 귀신에게 발목이 잡힌 나는 어중간한 지점에 주저앉아야 했고, 그렇게 해서 내 20대의 상당 기간은 대학교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내가 이 사회의 루저가 되어버렸다는 현실 인식에 부딪힐 때마다 이과 학문을 향하여 저주를 퍼붓고는 했다.


"수학이고 과학이고 다 필요 없다. 나는 그것들 없이도 잘 살아 볼 테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나이 먹도록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이과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직장생활에도 큰 지장 없다. 회사 승진 조건에 수리탐구 과학탐구 영역은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응어리가 있다. 나는 정말 수학치 과학치일까? 알고 보면 수탐 과탐의 천재인데 그 재능을 미처 깨우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수학 과학 모르고도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모르는 것보다는 좀 알아두는 게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이런 많은 어지러운 생각들을 접어 둔 채 여전히 문과 편식에 몰두하는 나에게 어느 날 흥미로운 책 한 권이 훅 들어왔다. '괜찮아, 괜찮아, 과학 문외한이라고 주눅 들지 마, 그냥 맘 편히 즐길 수 있으면 돼' 라고 속삭이며 내 이과 콤플렉스를 살살 어루만져 준 책의 제목은 바로 이것이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라는 저자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그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서울시립과학관'이라는 곳도 처음 들었다. '난 역시 문과체질인가 보다…' 라며 며칠 전 후배로부터 건네받은 이 책을 무심코 펼쳐들었는데, 이게 웬 걸! 글이 술술 내 머리와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아닌가.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정통 과학도서는 아니다(대체 그 '정통'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대신 지구의 환경, 물리, 동물, 인간 등을 둘러싼 다양한 과학 현상을 종횡무진 오가며 알아두면 우리 일상에 제법 쓸모 있는 지식들을 설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는 전자기파가 나온다는 이유로 작동 시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알고 보면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는 전자레인지 앞에 코 박고 받는 전자기파의 10배에 해당하고 이는 전기장판도 같은 수치를 보인다. 비데의 전자기파는 헤어드라이어나 전기장판보다 전자기파 방출량이 두 배에 가깝다. 쉽게 말해 비데의 전자기파는 전자레인지 전자기파의 20배란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의 엉덩이는 저 무시무시한(?) 전자기파 앞에서 천하무적이란 말인가?
이 흥미로운 정보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러니까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을 몽땅 다 집 밖으로 버리세요"라는 게 아니다. 편협한 한두 가지 정보를 침소봉대해서 괜히 쓸 데 없는 걱정 하지 말고 맘 편히 전자레인지 사용하시라는 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작용·남용·내성'을 염려하며 꺼리는 항생제 또한 의사가 처방해주는 대로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는 게 이정모 관장의 전언이다.


"일단 항생제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항생제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말라리아, 결핵, 폐렴, 콜레라, 이질 뿐만 아니라 가벼운 피부염으로도 죽는 사람 천지일 것이다. …… 내성이란 약을 오래 먹어서가 아니라 근절되기 전에 투약을 중단해서 생긴다. …… 뿌리를 뽑을 때까지 항생제를 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성균이 생기지 않는다. 끝까지 악랄하게 먹자."(64쪽)


구수한 외모만큼이나 구수한 글발로 세상의 쓸모 있는 과학상식을 설파하는 이 책은 나처럼 문과 편식이 심한 수리과학 공포환자들에게는 꽤 괜찮은 처방전이다. 과학이라는 게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기호와 숫자의 조합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잘 새겨둔 과학 상식 하나, 열 인문 이론 부럽지 않다"라는 사실을 깨우쳐 줄 것이니 말이다.
아울러 간명한 과학 이론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여러 현실과 접목 시키는 저자의 사회학적 센스는, 문과와 이과의 '통섭'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걸 쉽게 납득시킨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차치하고라도 우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책, 술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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