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6 | 연재 [수요포럼]
명작의 조건으로 명곡의 조건을 이야기하다
문학으로 보는 음악사
윤희숙(2018-07-13 12:02:26)



고등학교 시절이다. 한옥마을에 있는, 내가 다닌 여고의 음악선생님은 학교건물 꼭대기에 삼면이 유리창문으로 된 뷰가 좋은 음악교실을 갖고 있었다. 그 교실엔 내 키 만한 스피커가 두 대 자리하고 있다. 50대 독신 남선생님은 체구가 아담하고 언제나 깔끔하게 콤비를 걸쳤던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모양이 꼭 블란서 배우 같았다. 손에 언제나 손잡이가 둥근 하얀 지휘봉을 들고 다녔다. 그 선생님이 나를 클래식의 세계로 인도했다. 고교시절 3년 내내 음악수업이 시작되면 먼저 교향곡을 한 곡 감상하고 그 의식이 끝난 후에 비로소 교과서를 펼치고 수업을 했다. 어느 때는 정작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긴 연주곡만 감상한 채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음악이라면 귀가 번쩍 틔이는 것은 아마도 그 선생님의 탁월한 교육방식 덕분인 것 같다.
미술사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되고 회자되는 반면, 음악사에 대한 스펙트럼은 그리 넓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문학을 통해 서양음악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더듬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가와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번 강의에 기대가 컸다.


나는 왜 쓰는가 VS 명작의 조건
유주환 대표가 처음 소개한 작품은 조지오웰이 1930~40년 사이에 썼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 다. 창작 시기와 범주가 서로 다른 이 두 작품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와 '명작의 조건'이라는 다른 표현으로 결국 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과 미학적 열정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주고 변화시키려는 정치적인 목적'을 글을 쓰는 이유로 꼽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책을 통해 역시 명작을 조건을 언급한다. 책에 '초상화작가가 있는데 모델의 에고보다는 작가 자신의 에고를 더 솔직하게 그린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조지오웰이 말한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과 같다.  명작의 조건 두 번째는 미학적 열정으로 자기표현의 단계를 승화의 단계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미학적 열정에 대한 사례로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 사례를 소개했다. 브람스는 전업작가 임에도 매번 곡을 쓸 때마다 '다시는 곡을 쓰지 않겠다'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 이유는 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마치 병적으로 끝까지 붙들고 버티는 열정과 집착 때문이다.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일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세 번째 조건은 '없으면 섭섭했을 작품' 이다. 유 대표는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바로 그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제 마음에서 쇼팽을 없애버리면 은주가 사라집니다." 은주는 학창시절 서로 '썸을 타던' 여자친구다. 은주를 만나거나 그녀와 편지 주고 받을 때 늘 듣던 '쇼팽'이 바로 그에게 '없으면 섭섭했을' 그런 의미의 음악이다'고 말했다. 그건 문학이나 시 그게 어떤 것이든 상관없는 그런 작품을 말한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없으면 섭섭할 것' 무언가가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네 번째 명작의 조건은 정치적인 목적이다. 하루키는 '내가 그것을 소설에 넣던 지워버리든 역사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유주환 대표는 '결국 스토리는 건드리지 않고 이 안에 은유적으로 집어넣은 작가적인 생각은 결국 주인공들의 이야기 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 안에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했다. 문득 나에게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명작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은둔형 꼴롱브 VS 은둔의 베토벤
유 대표는 베토벤을 등장시키기 위해 프랑스 국민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소개했다. 1991년에 쓰여진 이 책은 17세기 태양왕 루이 14세 때 '궁정음악가'라는 왕의 제안을 거부하고 평생 은둔한 음악가 콜롱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 대표는 이 책에 대해 "은거와 은둔자 음악가의 삶을 다루고 있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결코 녹록치 않다"며 "베토벤을 설명하기에 편리한 책"이라고 말한다. 비록 콜롱브는 의도된 은둔자였고 베토벤은 불가피한 은둔자라는 차이가 있지만 주인공 꼴롱브가 베토벤을 모델로 한 인물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유없이 분노에 휩싸이기 일쑤였고'는 책 속의 표현은 베토벤의 전기나 평전에서 수없이 봐온 내용으로 이 작품이 베토벤을 모델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작가는 '음악가나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세상에 나와서 과시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은둔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제 베토벤 이야기를 해보자 1802년, 당시 피아니스트로 잘 나가던 그는 청각을 잃고 커밍아웃을 한다. 오스트리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좌절한 베토벤은' 음악가로써 모든 것이 끝났으며 이제 세상을 정리하고 떠날 것'이라는 유서를 쓰는 도중 심경의 변화로 뒷부분에 가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다. 음악가로서 큰 시련에 부닥친 베토벤은 생활을 확 바꿔 작품에만 천착을 하게 된다. 그 안에 집착을 하며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누군가는 '베토벤이 귀가 멀은 것은 개인사적으로는 유감이지만 음악사적으로는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
1802년부터 1815년 무렵까지 베토벤 작품들은 열심히 연주하고 곡을 사 주는 사람이 많았는데 1815년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유럽은 전쟁이 본격화 되고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1804년을 거쳐 1809년 무렵이 되면서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고 1815년은 전쟁에서 완전히 패하고 몰락하자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나폴레옹 이전인 왕정으로 복고하자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 시절, 유럽은 복고를 꿈꾸고 귀족은 과거의 영화를 찾으려 하고 왕은 다시 자기 자리로 올라가려고 했다. 공교롭게 이 시기의 베토벤은 철저하게 추락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귀가 먹는' 불운에도 불구하고 후기인 1815년부터 죽음을 맞는 1827년까지 지속적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간다.  지적인 깊이와 형식적인 혁명성 그리고 집중성과 인간적인 표현에 집중했다.
"이 시기의 베토벤의 내면과 사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교향곡 9번 '합창'입니다" 그 옛날 클래식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던 선생님처럼 유주환 대표는 우리를 베토벤의 음악속으로 초대했다. 이 곡은 당시 여러 이유로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 '환희의 송가'라 이름 붙여진 4악장 합창곡은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좌파시인 쉴러의 시를 가사로 붙인 작품으로 당시 굉장히 충격적인 작품이었을 뿐 아니라 구조주의를 표방하던 당시 형식을 파괴한 파격적인 연주곡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교향곡은 반드시 악기로만 연주해야 되는데 교향곡 4악장에 성악과 합창이 들어가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오페라야? 오라토리오야?'라고 수군댔다.  게다가 가사가 달리지 않은 악장에도 굉장히 위험한 요소가 있었다. 유대표가 들려주는 교향곡 9번 2악장을 들으며 머리에 딱 떠오르는 건 지난해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촛불집회 장면. 무능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적폐를 청산을 외치고 승리를 자축하는 촛불집회 시위대의 모습이었다. 베토벤 감상에 유주환 대표의 해설이 더해지니 그 곡은 내가 지금껏 들어왔던 곡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곡을 듣는 것처럼 새로운 감동을 경험했다.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비크
슈만하면 바늘의 실처럼 따라다니는 이름 '클라라' 피아노의 천재라 불렸으면서도 남편인 슈만의 그늘에 가려 음악가로서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다. 존 워든은 『로베르트 슈만-한 음악가의 삶과 죽음』에서 천재적인 음악가 슈만을 그리는 게 아니라 매우 솔직한 태도로 슈만이라는 개인을 들여다 보고 있다. 400쪽에  달하는 책은 슈만의 개인사 가운데 장인인 프리드리히 비크와 아내인 클라라 이야기에 전체의 2/3를 할애한다. 비크와 클라라는 슈만의 음악적인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슈만을 만날 당시 43세였던 비크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수성가한 엄격한 교육자이자 악기상이었다. 비크는 슈만에게 '유행이나 세간의 평에 관심을 갖지 말라' 고 한다. 음악에 관련해서 비크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것이 없었다. 슈만도 비크의 교육에 의해서 자신이 거듭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슈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비크 역시 슈만의 뛰어난 음악성 만큼은 인정했다.
비크는 그의 교육방식으로 클라라를 위대한 여성 피아니스트로 만들어 세상에 보이고 싶어 했다. 그래서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클라라는 이런 비크를 두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음악가로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7살이었던 그때도 피아노만큼은 성인급으로 연주해 이미 뛰어난 음악가였고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저리 비껴보라고 자신이 치곤 했다'고 슈만이 말할 만큼 클라라의 피아노 연주실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슈만의 삶에서 클라라는 희생자였다. 결혼 후, 슈만은 작업에 방해된다고 클라라가 피아노 연습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돈은 벌어오라고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슈만과 클라라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데 클라라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슈만은 피아노 옆에 서서 해설을 한다.  유주환 대표는 '그 모습에서 해설이 있는 연주회의 원형을 봤다'고 말하며. 또한 슈만의 악보에 관해 "다른 사람은 악보를 보면서 곡의 분위기를 읽는다는 걸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슈만의 어떤 악보들은 악보 자체가 그냥 그림 같다"고 하고 아마도 "슈만은 악보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해석을 덧붙였다.
슈만은 연주를 하기 전에 이번 곡이 무엇에 해당하는지 그것이 작곡가의 어떤 표상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하는가를 설명한 뒤 그 다음엔 클라라라는 유럽 최고의 연주자가 연주하면 이렇게 해설이 있는 음악회의 원형 형태가 만들어 진다. 그 방식대로 유주환 대표 역시 '인문학과 클래식음악'을 주제의 토크콘서트나 강연에 연주자를 동행, 실제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