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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 | 기획 [여름, 여행이 좋다]
대가야의 고장, 고령과 해인사를 만나다 - 고령, 합천
역사를 만나는 여행 ②
(2018-07-13 14:17:13)



한반도 고대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가야까지 4개의 나라였지만 삼국의 그늘에 가려 가야는 잊혀졌다.
해양무역으로 찬란한 철의 문화를 꽃피웠던 가야는 역사에 대한 기록이 적어 지난 1500년 동안 잃어버린 역사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고고학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어 문화상의 복원뿐 아니라 역사의 재구성이 시도되고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령 암각화', 대가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지산동 고분군'과 '대가야박물관',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 선사시대의 암각화부터 세계문화유산까지. 후기가야연맹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대가야의 도읍지 고령. 그들의 남아있는 자취를 찾아 사라진 역사속으로 떠나보자.


고령 암각화
알터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있는데, 동심원은 직경 18∼20㎝의 삼중원으로 총 4개가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상징과 기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들고 농경을 위해 태양신에게 소원을 빈 농경사회 신앙을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산 위에 대가야시대의 주산성이 있다. 그 산성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위에는 대가야가 성장하기 시작한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 사이에 만들어진 대가야 왕들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지산동44호와 45호 무덤을 비롯하여, 주변에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704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대가야 최대의 고분군이다.


대가야박물관
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에서의 박물관의 역사는 1977년과 1978년에 이루어진 지산리 고분에 대한 발굴 조사 성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발굴조사를 통해 대가야의 문화가 드러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80년 지금의 고령향교가 있는 언덕의 한쪽 기슭에 '대가야유물전시관'이라는 아담한 전시관을 열었던 것이 오늘날의 대가야박물관의 전신이다.
2005년 4월 문을 연 대가야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최대 규모의 대가야시대 순장무덤인 지산리44호 무덤을 복원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를 중심으로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시한 '대가야역사관', 악성 우륵과 가야금을 체계적으로 재조명한 '우륵박물관'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인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때 지어진 절로 의상의 맥을 잇는 제자인 순응과 이정 스님에 의하여 초당을 지은 데서 비롯된 화엄종 사찰이다. 해인사가 법보종찰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398년 조선 태조 때로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하던 고려팔만대장경판을 지금의 서울시청 부근에 있던 지천사로 옮겼다 다시 해인사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제9대 성종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주차장에서부터 일주문까지 오르는 길에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해인사의 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다양한 목판을 전시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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